기념물/인천광역시 35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8호_봉천대, 봉천산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8호 _ 봉천대 (奉天臺) 수량/면적 : 1기 / 231.3㎡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고려산로463번길 30-6 (하점면) 봉천산 꼭대기에 설치하여 하늘에 나라의 태평과 백성들의 평안을 빌었던 곳으로, 벽돌을 쌓아올려 위로 갈수록 좁아드는 사다리꼴 형식을 하고 있다. 『강도지』에 의하면, 고려 때에는 나라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의식을 거행하였던 곳이었으나, 조선시대 중기에 와서는 봉화를 켜두는 봉화대로 사용하였다 한다. 봉천대 표지판 봉천대 안내 표지판 봉천대 가는 산행로는 장정리 오층석탑 좌측으로 가도 오를 수 있습니다. 우측은 장정리 오층석탑, 좌측은 봉천대 가는 산행로 좌측으로 올라갑니다. 장정리 오층석탑 전경 이 곳에서 봉천대까리의 ..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7호_강화 정족산사고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7호 _ 강화 정족산사고지 (江華 鼎足山史庫地) 면 적 : 94.22㎡ 지정일 : 2014.04.16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44 정족산사고지(鼎足山史庫址)는 정족산성 안 전등사 서쪽 높이 150m에 위치하며, 사고지의 보호철책 안쪽에는 주춧돌들이 놓여져 있다. 또한, 성내에는 수호사찰(守護寺刹)인 전등사가 사고를 보호해왔으므로 1910년 조선총독부 학무과 분실로 실록과 서적들이 옮겨질 때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 사고 건물이 언제 없어졌는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1931년에 간행된 ≪조선고적도보 朝鮮古蹟圖譜≫에 정족산사고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때를 전후해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고 건물에 걸려 있었던 ‘장사각(藏史閣)’과 ‘선원보각(璿源寶閣..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5호_삼거리 고인돌군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5호 _ 삼거리 고인돌군 (三巨里 고인돌群) 수량/면적 : 9기 / 177,577㎡ 지정일 : 1999.04.26 소재지 : 인천 강화군 하점면 삼거리 산120번지 일원 시 대 : 청동시대 삼거리 진촌마을 앞산인 고려산 서쪽 능선 상에 북방식 고인돌무덤 9기가 일렬로 분포되어 있다. 어떤 고인돌무덤은 덮개돌 위에 작은 구멍이 여러 개 패여 있는데 이러한 모양을 남한에서는 성혈이라고 하고 북한에서는 별자리와 연관 짓고 있다. 작은 구멍이 고인돌무덤의 크기는 굄돌을 높이 2.80m, 너비 0.90m, 두께 0.38m이다. 고인돌무덤 가까이에는 돌을 떼낸 흔적이 남아 있는 채석장이 있다 삼거리 고인돌군 표지판 이 곳에서 삼거리 고인돌군까지는 700m입니다. 이 곳에 주차를 하고 삼거리 고..

강화도 덕산,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4호_강화 망산봉수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4호 _ 강화 망산봉수 (江華 望山熢燧) 면 적 : 3,074㎡ 지정일 : 2011.12.28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산 131 봉수(烽燧)는 횃불인 봉(烽)과 연기인 수(燧)로 변방의 급한 소식을 중앙에 전하는 통신 방법으로 조선시대까지 쓰였다. 밤에는 횃불을 올리고 낮에는 연기를 올려 신호를 보냈다. 대개 봉수는 해발 100m~300m의 너무 높지 않은 산 정상부, 주변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설치됐다. 망산봉수는 덕산봉수라고도 불린다. 덕산은 해발 240m이다. 조선 초에는 진강산 봉수의 신호를 받아서 별립산 봉수로 전달했고, 조선 후기에는 진강산 봉수의 신호를 받아 교동 화개산 봉수로 전했다. 망산봉수는 사방 8.3m 내외의 정방형 기단에 원형 연..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6호_강화 정족산성진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6호 _ 강화 정족산성진지 (江華 鼎足山城陣地) 면 적 : 5,821㎡ 지정일 : 2014.04.16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44 정족산성진은 정족산 사고를 수호할 목적으로 조선중기 이후 설치된 국방시설이다. 1907년 방화로 전체 소실되어 평탄지로 있던 곳을 2008년 발굴조사하여 11개소의 건물지를 포함 대규모 유구가 발굴되었다. 1870년대 이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족산성진」 지도에 표현되어 있는 내사, 진사, 포량고 등의 건물지와 담장시설, 문지 등을 대부분 확인하였다. 발굴된 일부 건물지의 경우 정족산성진 설치 이전인 1784년(정조 8년)에 건립된 정족창과 관련된 건물지로 파악된다 강화 정족산성진지 표지판 위 안내 표지판 뒤편이 전족산성진지임...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7호_강화 인산리 석실분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7호 _ 강화 인산리 석실분 (江華 仁山里 石室墳) 수량/면적 : 1기 / 402.6㎡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인산리 산 71 고려시대의 석실분으로, 혈구산 서쪽 퇴모산 남쪽 8부 능선에 있다. 이 무덤은 구릉의 경사진 면에 반지하식으로 축조된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돌과 깬 돌을 이용하여 직사각형의 네모상자 형태로 돌방(석실)을 만들고 그 앞에는 경사면을 따라 3단의 축대를 쌓아 묘역을 구성했을 것으로 짐작되나 현재는 축대가 모두 붕괴되어 묘역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석실을 중심으로 넓은 지역에 돌무지가 형성되어 이곳이 인산리 석실분의 묘역이었음을 짐작할 따름이다. 천장은 크고 납작한 판돌을 덮은 납작천장(평천장..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4호_천제암(궁)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4호 _ 천제암(궁)지 (天祭菴(宮)址) 면 적 : 1,025.2㎡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 강화군 화도면 문산리 산64-2번지 천제암궁지는 참성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제사그릇(제기)과 제사물건(제물)을 준비하던 재궁(齋宮)이 있던 곳이다. 만들어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 때 목은 이색(李穡)이 지은 시를 쓴 현판이 있었고, 조선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곳에 머물며 하늘에 제를 지냈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고려 때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천제암궁터는 삼단의 석축으로 되어 있으며, 넓이는 약 70평 정도로 부근에는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표시인 금표와 우물들이 남아 있다. 『여지도서』등 옛 문헌에는 ‘천재암(天齋庵)..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7호_오상리 고인돌군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7호 _ 오상리 고인돌군 (鰲上里 고인돌群) 수량/면적 : 12기 / 44,622㎡ 지정일 : 1999.04.26 소재지 : 인천 강화군 내가면 오상리 산125번지 일원 시 대 : 청동시대 오상리 고인돌은 1972년에 1기가 알려져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나 그 이후에 자세한 보고는 없다가 1990년대 초에 『강화도 고인돌무덤(지석묘)조사연구』를 통해 이 고인돌이 있는 오상리 산125번지 일대를 자세하게 조사하여 잡목과 잡초가 우거진 사이에서 10기에 가까운 고인돌을 더 찾아냈다. 이 지역의 고인돌은 덮개돌은 부분적으로 손질한 흔적이 있고, 평면 형태는 모두 판돌형(板石形)이다. 덮개돌의 크기는 기념물로 지정된 내가 고인돌이 길이 335㎝로 가장 크고 나머지는 길이가 130∼260..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8호_교산리 고인돌군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8호 _ 교산리 고인돌군 (橋山里 고인돌群) 수량/면적 : 11기 / 보호구역 287,625㎡ 지정일 : 1999.04.26 소재지 : 인천 강화군 양사면 교산리 산108번지 등 총34필지 시 대 : 청동시대 별립산(해발 340m) 북쪽 구릉에 11기의 고인돌무덤이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무덤은 굄돌과 덮개돌의 일부만 훼손되었을 뿐 대체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굄돌과 마감돌 및 덮개돌을 갖춘 북방식 고인돌무덤이 있으며 간혹 크기가 3∼4m나 되는 덮개돌을 갖춘 남방식 계통의 고인돌무덤도 있는데 이들은 굄돌 없이 땅위에 덮개돌만 놓은 이른바 개석식 고인돌무덤이다 교산리 고인돌군 표지판 이 곳 주차장에서 400m지점에 교산리 고인돌군이 위치헤 있습니다. 이 곳에 주차를 하고 데크계단으로 ..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7호_망양돈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7호 _ 망양 돈대 (望洋 墩臺) 수량/면적 : 1곽 / 2,026.0㎡ 지정일 : 1999.03.29 소재지 : 인천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680번지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쌓은 소규모 관측·방어시설이다. 병사들이 돈대 안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외적의 척후 활동을 비롯한 각종 수상한 정황을 살피고 대처한다. 적이 침략할 때는 돈대 안에 비치된 무기로 방어전을 펼친다. 1679년(숙종 5) 5월에 완성된 48돈대에 이후 5개 돈대가 추가로 지어졌다. 48돈대는 황해도·강원도·함경도 승군 8,900명과 어영청 소속 어영군 4,262명이 80일 정도 걸려서 쌓았다. 돈대 축조를 기획하고 감독한 이는 병조판서 김석주였고 실무 총괄은 강화유수 윤이제였다. 망양돈대는 1679년(숙종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