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가보고 싶은 곳 53

비오는 날, 강화 볼음도 은행나무를 찾아서(2022.10.09)

천연기념물 제304호 _ 강화 볼음도 은행나무 (江華 乶音島 銀杏나무) 수 량 : 1주 지정일 : 1982.11.09 소재지 : 인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리 산186번지 외 1필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강화 볼음도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800살 정도이고, 높이는 24m, 가슴높이의 둘레는 8.96m이다. 마을의 언덕 위에서 정자나무의 구실을 하고 있으며, 마을을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신성스런 나무로 여겨지고 있다. 800년 전..

강화 하도리 아랫말 고인돌군

하도리 아랫말 고인돌 군(下道里 아랫말 支石墓 郡)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송해면 하도리 187-3번지 하도리 아랫말 고인돌 군은 북서쪽의 부근리 고인돌 군과 평야를 사이에 두고 약 400m떨여져 있으며, 강화도 대부분의 고인돌 입지와는 달리 평지에 위치한 것이 특색이다. 이 고인돌 군은 일제강점기에 조사 보고된 바 있어 강화군에서는 가장먼서 알려진 곳이다. 총 5기가 군집을 이루고 있으나 대부분의 고인돌은 무너져 원형이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하도리 아랫말 고인돌 군 표지판 하도리 아랫말 고인돌 군 전경 하도리 아랫말 고인돌 군 전경 5번 고인돌 5번 고인돌 5번 고인돌 6번 고인돌 6번 고인돌 6번 고인돌 7번 고인돌 7번 고인돌 7번 고인돌 8번 고인돌 8번 고인돌 8번 고인돌 9번 고인돌 9..

강화군 향토유적 제19호_함허대사부도

강화군 향토유적 제19호 _ 함허대사 부도(涵虛大師 浮屠) 지정일 : 1986.04.01 소재지 :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467 함허대사부도는 정수사를 다시 일으킨 함허대사의 승탑이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걸쳐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함허대사가 정수사에서 입적하자 그의 수도처였던 뒷산 중턱에 현 부도를 봉안한 것이라 한다. 부도의 구성은 기단 위에 탑신이 놓이고 그 위에 옥개석을 얹어 정상에 상륜을 장식하고 그 기본형은 팔각원당형을 따르면서 사각의 단순한 변형을 가미 하였다. 기단부는 상 · 하대로 형성되었으며 각 면에는 아무런 조식도 없다. 1석으로 조성된 4각의 지대석위에 역시 4각의 기단을 올려 받쳤고, 원형의 탑신을 상대 중앙에 고종시켜 놓았다. 6각의 옥개와 탑신 사이에 받침을 두었으며 상륜은..

사적 제130호_강화 삼랑성, 양헌수 승전비

사적 제130호 _ 강화 삼랑성 (江華 三郞城) , 남문 면 적 : 260,536㎡ 지정일 : 1964.06.10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산41번지 시 대 : 삼국시대 정족산성이라고도 하며 단군의 세 아들이 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있어 삼랑성이라 부른다. 이 성이 만들어진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고려가 1259년 삼랑성 안에 궁궐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 전에 이미 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곽이 쌓여져 있는 모습을 보면 보은의 삼년산성이나 경주의 명활산성처럼 삼국시대 성의 구조를 찾을 수 있으므로,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성으로 추측된다. 고려 때 보수공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영조 15년(1739)에 성을 다시 쌓으면서 남문에 문루를 만들고 ‘종해루’라고 하였다. 조선 현종 1년(166..

문화재/사적 2022.02.23

강화 오두돈대(鼇頭墩臺)

오두돈대(鼇頭墩臺)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온면 오두리 산1 외적의 침입이나 척후활동을 사전에 관찰하고 대비할 목적으로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에 흙이나 도로 쌓은 소규모의 방어 시설물을 돈대라고 한다. 강화 지역에는 숙종 5년(1679) 강화 전해안을 하나의 방위체제하에 운영하고자 돈대를 설치 · 운영하게 되었다. 오두돈대는 지형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자라의 머리와 같은 지형에 설치되어 있으며, 평면형태는 원형으로 지름이 32m에 달한다. 돈대 동남쪽으로는 오두정지(鼇頭亭址)와 강화전성이 위치한다 오두돈대 표지판 천천히 올라갑니다. 오두돈대 오두돈대 오두돈대 오두돈대 오두돈대 오두돈대 오두돈대 오두돈대 오두돈대 오두돈대 오두돈대 오두돈대 포좌 오두돈대 오두돈대에서 바라본 강화도해안 오두돈대에서 바라..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7호_강화 정족산사고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7호 _ 강화 정족산사고지 (江華 鼎足山史庫地) 면 적 : 94.22㎡ 지정일 : 2014.04.16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44 정족산사고지(鼎足山史庫址)는 정족산성 안 전등사 서쪽 높이 150m에 위치하며, 사고지의 보호철책 안쪽에는 주춧돌들이 놓여져 있다. 또한, 성내에는 수호사찰(守護寺刹)인 전등사가 사고를 보호해왔으므로 1910년 조선총독부 학무과 분실로 실록과 서적들이 옮겨질 때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 사고 건물이 언제 없어졌는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1931년에 간행된 ≪조선고적도보 朝鮮古蹟圖譜≫에 정족산사고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때를 전후해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고 건물에 걸려 있었던 ‘장사각(藏史閣)’과 ‘선원보각(璿源寶閣..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5호_삼거리 고인돌군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5호 _ 삼거리 고인돌군 (三巨里 고인돌群) 수량/면적 : 9기 / 177,577㎡ 지정일 : 1999.04.26 소재지 : 인천 강화군 하점면 삼거리 산120번지 일원 시 대 : 청동시대 삼거리 진촌마을 앞산인 고려산 서쪽 능선 상에 북방식 고인돌무덤 9기가 일렬로 분포되어 있다. 어떤 고인돌무덤은 덮개돌 위에 작은 구멍이 여러 개 패여 있는데 이러한 모양을 남한에서는 성혈이라고 하고 북한에서는 별자리와 연관 짓고 있다. 작은 구멍이 고인돌무덤의 크기는 굄돌을 높이 2.80m, 너비 0.90m, 두께 0.38m이다. 고인돌무덤 가까이에는 돌을 떼낸 흔적이 남아 있는 채석장이 있다 삼거리 고인돌군 표지판 이 곳에서 삼거리 고인돌군까지는 700m입니다. 이 곳에 주차를 하고 삼거리 고..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4호_전등사 약사전 후불탱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4호 _ 전등사 약사전 후불탱 (傳燈寺 藥師殿 後佛幀) 수 량 : 1폭 지정일 : 2002.12.23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전등사로 37-41 (길상면, 전등사) 시 대 : 조선 고종 21년(1884) 전등사 약사전(보물 제179호)에 보존되어 있는 후불탱인데,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려 액자나 족자 형태로 만들어지는 불화를 말한다. 조선 고종 21년(1884)에 제작된 그림으로 정사각에 가까운 화폭 중앙에 약사여래좌상과 좌우협시인 일광·월광보살을 배치하고 상하 좌우에는 사천왕을, 약사불 뒤에는 가섭과 아난을 그린 병렬식 구도를 보이고 있으며, 색채는 18세기 후반의 색 배합을 계승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전통적인 도상을 계승하고 안정된 화면 구성, 꼼꼼한 필력을 갖..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8호_전등사 대웅보전 수미단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8호 _ 전등사 대웅보전 수미단 (傳燈寺 大雄寶殿 須彌壇) 수량/면적 : 1식 지정일 : 2002.12.23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전등사로 37-41 (길상면, 전등사) 시 대 : 17세기 추정 수미단은 불상을 안치한 일종의 대좌와 같은 형식으로 대웅전 내의 천개와 더불어 장엄한 불교세계를 아름답게 묘사한 것이다. 전등사 수미단은 가로 480㎝, 세로 118㎝, 폭 200㎝로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맨 하단 받침부 몰딩 사이에 불법(佛法) 수호신격인 도깨비와 같은 문양이 익살스럽게 조각되어 있고, 중간부분 장판에는 꽃·나무·새·당초문·보상화문·상상의 동물 등이 화려하게 투각되어 있는 등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전등사 대웅보전 수미단 표지판 전등사 대웅보전 수미..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7호_강화 인산리 석실분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7호 _ 강화 인산리 석실분 (江華 仁山里 石室墳) 수량/면적 : 1기 / 402.6㎡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인산리 산 71 고려시대의 석실분으로, 혈구산 서쪽 퇴모산 남쪽 8부 능선에 있다. 이 무덤은 구릉의 경사진 면에 반지하식으로 축조된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돌과 깬 돌을 이용하여 직사각형의 네모상자 형태로 돌방(석실)을 만들고 그 앞에는 경사면을 따라 3단의 축대를 쌓아 묘역을 구성했을 것으로 짐작되나 현재는 축대가 모두 붕괴되어 묘역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석실을 중심으로 넓은 지역에 돌무지가 형성되어 이곳이 인산리 석실분의 묘역이었음을 짐작할 따름이다. 천장은 크고 납작한 판돌을 덮은 납작천장(평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