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유형문화재/충청남도 112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6호_의열사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6호 _ 의열사비 (義烈祠碑) 수   량 : 1기지정일 : 1976.01.08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석탑로남령길 36 (부여읍)시   대 : 1575 의열사의 건립과정과 그곳에 모신 인물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비이다. 의열사는 조선 선조 8년(1575) 부여현감 홍가신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선조 10년(1577)에 임금이 이름을 지어 현판을 내렸다.비의 형태는 네모진 바닥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비문의 내용에 의하면 이 고장 출신이었던 백제의 3충신(忠臣)인 성충, 흥수, 계백과 고려시대에 신돈을 탄핵하다가 물러난 이존오의 공로가 후대에 전해지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긴 홍가신이 사당을 지어 이들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후에는 조선시대의 정택뢰, 황일호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호_부여 석목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호  _  부여 석목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扶餘石木里石造毘盧蔗那佛坐像) 수   량 : 1구지정일 : 1973.12.26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논절로 25-6 (석목리)시   대 : 고려시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석목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옛 절터에 모셔졌던 주존불(主尊佛)로서, 현재는 절터만이 남아 있다. 부처의 얼굴이 눈병에 효험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서 얼굴이 많이 손상되었다.머리 위에는 넓은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있으며, 둥글고 풍만한 얼굴은 손상되어 세부기법은 알 수 없다. 양 손은 가슴에 모아 오른손이 왼손 검지를 감싸고 있는데, 손과 발의 세부수법이 형식화 되었다.옷은 몸에 밀착되어 간략한 옷주름으로 표현하여 무릎 앞에까지 덮여 있는데, 옷주름이 섬세하지 못..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7호_부산각서석, 대재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7호 _ 부산각서석 (浮山刻書石) 수   량 : 1기지정일 : 1976.01.08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 672 부여군 백마강가 암벽에 새긴 글씨로,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경여(1585∼1657 ) 선생의 의지를 후손에 알리고자 쓴 것이다.조선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내던 백강 이경여 선생은 효종 8년(1657)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자 이완·송시열과 함께 청나라를 쳐야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왕은 ‘경의 뜻이 타당하고 마땅하지만 진실로 마음이 아프나 뜻을 실현하기에는 너무 늦다’라는 답장을 내렸는데, 청나라에서 그를 벼슬에서 물러나게 하도록 간섭하여, 결국 그는 부여로 낙향하였다.그 후 우암 송시열이 이 내용을 여덟 자로 써서 후손에게 전하였고, 숙종 26년(1700)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3호_금성산 석불좌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3호 _ 금성산석불좌상 (錦城山石佛坐像) 수    량 : 1구지정일 : 1973.12.26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계백로 334-47 (부여읍)시   대 : 고려시대 금성산 남쪽 기슭의 옛 절터에 묻혀 있었던 것으로 치병과 득남에 영험하다하여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예배되다가 최근 조왕사(朝王寺)라는 법당을 짓고 주존불(主尊佛)로 모시고 있는 전체높이 1.27m의 석불좌상이다.몸체에 비하여 머리가 큰 편인데, 얼굴은 볼과 턱이 둥글고 풍만하며, 목은 짧게 표현되었다. 어깨는 곡선으로 처리되어 좁지만 둥근 배로 인하여 안정감이 있고, 신체 각 부분의 윤곽은 굵고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옷은 신체에 밀착되어 무릎까지 덮고 있으며 옷주름은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양 손은 가슴에 모아 오른손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4호_석성동헌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_ 석성동헌 (石城東軒) 수    량 : 1동지정일 : 1987.08.03소재지 : 충남 부여군 석성면 석성로 124 (석성리) 동헌은 조선시대의 지방 관아건물로 고을의 수령이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 공적일 일을 하던 곳이다.석성동헌은 기록에 의하면 인조 6년(1628)에 세워졌으며, 후에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석성은 원래 백제의 진악산현이었는데 고려 초에 석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조선 태종 15년(1415)에 현이 설치되고 후에 군으로 되었으며, 1914년에 면이 되었다.앞면 4칸·옆면 3칸으로 홑처마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석성면사무소로 사용되던 한식 건물로 주변에 관아건물이 많이 있었으나, 현재는 이 건물 밖에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3호_임득의 초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3호 _ 임득의 초상 (林得義 肖像) 수    량 : 1점지정일 : 2010.07.30소재지 : 충청남도 홍성군  임득의(林得義, 1558-1612)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자는 자방(子房)이고 본관은 평택이다. 1596년에 일어난 이몽학(李夢鶴)의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1604년(선조 37) 청난공신(淸難功臣) 3등에 책록되었고, 충청수우후(忠淸水虞侯)와 경상우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함. 은 가전(家傳)되어옴임득의 초상 (林得義 肖像) 2024.08.29, 충남역사박물관글 문화재청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2호_김만증 초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2호 _ 김만증 초상 (金萬增 肖像) 수    량 : 2점지정일 : 2010.07.30소재지 : 충청남도 논산시시   대 : 조선시대 초상 2점으로 그 중 전신상(全身像)은 평상복 차림인 심의(深衣) (유학자들의 예복 중 하나)에 복건 福巾을 쓰고 공수(拱手) (두 손을 어긋매껴 마주 잡는 일) 자세를 취한 좌안팔분면 左顔八分面의 입상이다.후덕한 얼굴과 품이 넉넉한 심의에 감싸인 당당한 풍채 風采가 인상적이며, 흰 머리칼과 수염으로 미루어 노년기의 모습이다. 얼굴은 갈색 선으로 윤곽을 잡고 갈색 담채로 피부색을 표현했으며 이마와 코, 광대뼈 등에 약간 더 진한 채색을 가해 굴곡을 나타냈다. 이목구비와 주름살도 선으로만 그렸고 눈썹과 머리칼, 수염을 한 올 한 올 정성껏 표현했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_당진 영랑사 대웅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 _  당진 영랑사 대웅전 (唐津 影浪寺 大雄殿) 수    량 : 1동지정일 : 1973.12.26소재지 : 충청남도 당진시 진관로 142-52 (고대면, 영랑사)시   대 : 조선시대 중기 영랑사는 신라 진흥왕 25년(564)에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설과 백제 의자왕 8년(648)에 당나라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두 가지 설이 있으나 모두 신빙성이 없다. 고려 선종 8년(1091) 대각국사 의천이 크게 수리하면서 사찰의 면모가 갖추어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 숙종 4년(1678)에 보수하였고, 일제시대에도 대웅전을 수리하였다.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_예산 수덕사 소조삼존불상, 소조석가여래좌상 복장유물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_예산 수덕사 소조삼존불상, 중앙 석가여래좌상, 좌 문수보살입상, 우 보현보살입상 중앙의 석가여래좌상은 머리를 약간 앞으로 내밀고 있으며 15세기 불상에 비해 신체 비례가 얼굴이 둥글고 큰 편이다. 정수리 부위에 정상계주와 중앙계주가 있으며 항마촉지인의 수인에 편단우견의 착의법이 표현되었다.양옆의 협시보살인 문수 · 보현보살 입상은 등을 약간 뒤로 제치고 머리를 앞으로 숙여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있다. 머리에는 화문을 오려 만든 금속판을 끼운 나무로 된 보관을 쓰고 있으며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이나 귀의 형태는 본손의 여래상과 동일하여 같이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다.좌 문수보살입상, 우 보현보살입상 수덕사 소조석가여래좌상 _ 조선 16세기, 예산 수덕사 대웅전(수덕사 근역성보관) 예산..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8호_보령 금강암 석불 및 비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8호 _ 보령 금강암 석불 및 비편 (保寧金剛庵石佛및碑片) 수량/면적 : 석불1구,비편1기/61.4㎡ 지정일 : 2000.09.20 소재지 : 충남 보령시 미산면 용수리 산59번지 시 대 : 조선시대 ◦ 조선3대 태종의 후비(后妃)였던 권씨의 소원을 빌기 위한 원당(願堂)으로 무학대사의 제자 영암(玲嵒)스님이 1412(태종12)에 건립하였는데, 건립을 주관한 사람은 후비 권씨의 아버지인 권홍(權弘)과 딸인 오주이씨였음. ◦ 이때 조성된 석불은 2단의 좌대 위에 양손을 가진런히 하여 연꽃 봉오리를 받쳐 들고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모습으로, 미륵불로 추정되며, 재료는 사암(砂岩)임. ◦ 이 금강암과 석불 조성사실을 기록한 비석은 현재 절반정보 파손된 상태의 비편(碑片)으로 남아있는데..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