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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장아찌 만들기

해드린청허하우스 들깨 및 고추밭 해드린청허하우스 들깨밭 오늘 해드린청허하우스 들깨밭에서 깻잎을 440개를 수확했습니다. 깻잎장아찌는 들깨꽃이 피기 전에 깻잎을 수확해야 제일 맛있는 깻잎장아찌가 됩니다. 이 때가 가장 향이 짙어지는 시기라 이 때 담으면 훨씬 깊은 향이 배어듭니다.수확한 깻잎을 흐르는 물에 3번 깨끗이 씻습니다. 3번 흐르는 물에 닦은 후 깻잎을 30개씩 묶음으로 만들어 바구니에 담습니다. 물이 빠진 다음 즉시 깻잎장아찌를 담급니다. 물이 다 빠진 깻잎을 센불에 3분 찝니다.깻잎이 아주 연해서 3분을 넘지 않도록 주위! 3분을 찐 깻잎 깻잎장아찌 황금비율 양조간장 1컵, 갈색설탕 1컵, 일반 식초 1컵, 소주 1컵, 물 1컵을 냄비에 넣고 저으면서 팔팔 끊입니다.식은 후에 깻잎장아찌를 ..

엄흥도의 행적이 기록된 '충의공실기'

_ 엄익재 편, 석판본, 군위:봉망재, 1936, 국립중앙도선관 엄흥도의 행적이 기록된 ' 충의공실기(忠毅公實記)' 엄흥도의 행적에 관한 기록들을 모아 엮은 책으로 1936년 경북 군위에서 석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와 내용상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_ 엄익재 편 서(序) - 송준필(1869~1943) 찬 단종|께서 왕위에서 물러나 영월에 머무르실 때, 영월 사람들은 모두 두려뤄하며 감히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하였다. 엄흥도는 밤에 별궁에서 매우 슬프게 곡하는 소리를 듣고서, 청령포(淸泠浦)를 걸어서 건너 별궁 계단 앞 가까운 곳에 이르니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단종께서 이르기를"차가운 궁에 혼자 있으니 근신과 적막함이 더욱 심하였는데, 네가 지금 나를 보러 와주니 이런 시골에도 선인이 있다는 것을..

단종의 사후 행적이 기록된 '단종애사'

_ 이광수 저, 필사본[1930년경 필사 ], 국립중앙도서관 단종의 사후 행적이 기록된 '단종애사' 1928년 11월 30일부터 1929년 12월 11일까지, 춘원 이광수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로 단종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1930년대 옛한글소설의 형식으로 필사한 것으로 보이며, 단종애사 뒷 부분에 양녕대군, 성삼문 등의 내용이 추가 기록되어 있다 _ 이광수 저 혈루편(단종 유배 ~ 죽음) 노산군의 시체가 물에 들어가 둥둥 떠서 흘러가지 않고, 열 손가락이 물 위로 떠 올랐다 잠겼다 하는 모습을 보고 시녀들과 종자들이 모두 통곡하며 사랑하는 임금의 뒤를 따라 물에 뛰어 들어갔다.밤에 영월 호장 엄흥도가 몰래 시체를 건져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미리 짜두었던 관에 넣어 북쪽 5리 되는 곳에 봉분..

단종이 유배된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단종실록, 세조실록>

_ 춘추관 편 : 경성제국대학법문학부 교정, 석판본, 경성[서울 ]: 경성제국대학법문학부, 1933, 국립중앙도서관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서 태백산사고 조선왕조실록을 저본으로 삼아 1933년에 간행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을 일반인에게 공개, 보급한 의미있는 문헌이다.단종이 유배된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세조실록 8권, 1457년(세조 3) 6월 21일 왕이 교지(敎旨)를 내리기를.'전날 성삼문 등이 말하기를, '단종대왕도 그 모의에 참여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이에 종친과 관리들이 모두 말하기를, '단종도 종사(宗社)에 죄를 지었으니, 편안히 서울에 머물게 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하고, 여러 달 동안 간청하였으나, 내가 허락하지 아니하고, 처음에 먹은 망음을 지키려고 하였다.그러나 지금에 이르..

<해동금석원>

_ 유희해(柳喜海, 1794~1852) 편찬, 유승간(劉承幹, 1882~1983) 교감재편, 중국 청(淸) 1832년 초간, 1922년 교감재편, 종이에 목판인쇄, 국립중앙박물관 중국에서 발행된 조선 금석문 해설서 1817년 김정희와 함께 북한산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고증한 조인영|(趙寅永, 1782~1850)은 그해 겨울 이 비의 탑본을 청나라 고증학자 유희해에게 보냈다. 유희해는 자신이 소장한 금석문 탑본과 김정희 · 김명희 형제, 조인영 등이 전해 준 금석문 탑본을 판독하여, 고려의 금석문을 모은 『 해동금석원 』을 편찬하였다. 이 책은 상세한 교주와 고증을 갖춘 최초의 금석문 해설서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김정희가 이룬 비문 연구의 성과는 청나라 금석학자들에게 전해져 금석문이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문화재/고문서 2026.09.05

<이기홍 교지와 화첩>

_ 조선 1782~1807년, 종이에 색(화첩), 57.7×77.1cm, 27.1×17.8cm(화첩), 14043~14046, 14049~14052, 14054~14055, 이정수 기증(2020), 경기도박물관 조선시대 프로 일잘러의 '회사 브이로그' 이기홍(李基弘. 미상)은 조선시대 후기의 관리이다. 교지에 따르면 그는 1782년 정 5품 '통덕랑'이라는 명예직을 받았고, 이후 과거에 합격해 1796년 종9품 참봉으로 첫 발령을 받았다. 벼슬길에 오른 지 25년 만인 1807년에는 정3품의 높은 벼슬에 오르면서,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인 석성현 현감(사또)를 맡게 되었다. 이기홍은 자신이 근무했던 곳의 풍경을 그림으로도 남겼다. 이 화첩에는 이기홍의 근무처인 선릉, 의금부 사헌부, 석성현 등의 풍..

<신영 효자 정려>

_ 조선 1892년, 신지현 · 신동철(평산신씨 문화공종중) 기증(2008) 조선의 공식 효자 인증서 효자 정려란 부모에게 효도한 이들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세운 기념물이다. 신영(申榮, 1816~1891)은 기증자의 할아버지로, 그가 세상을 떠나고 1년 뒤 효자 정려를 받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영이 부모를 어떻게 지극히 모셨는지 자세한 이야기는 남아 있지 않다. 효자정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孝子 贈 資憲大夫 戶曺判書 兼 知義禁府 行嘉善大夫 同知 中樞夫事 申榮之門" (효자 증 자헌대부 호조판서 겸 지의금부 행가선대부 동지 중추부사 신영지문) 지극한 효성으로 세상을 떠난 뒤 호조판서 관직을 명예로이 받은 효자 신영의 정문(현판) 2026.08.01, 경기도박물관_혼자 보긴 아까워서전..

이대원(李大源)의 <과수원>

_ 이대원(李大源, 1921~2005, 경기도 파주), 1974, 캔버스에 유화 물감, 65.1×90.9cm, 개인 소장 은 붉은 감이 달린 나뭇가지와 과목 사이에 초가집을 배치해 농촌 풍경을 구성한 작품이다. 작가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 나전칠기의 자개 조각과 화각공예의 채색 문양을 떠올리게 하는 짧은 붓질과 색점을 화면 곳곳에 새기듯 놓았다. 크고 작은 색면과 길고 짧은 색선은 색동과 조각보처럼 서로 다른 색을 나란히 드러내며 나무와 들판, 초가의 형태를 이룬다. 전통적인 농촌 풍경에 공예의 색체와 구성 방식을 결합한 작품으로, 이대원 회화의 장식성과 평면성이 잘 드러난다. _ 이대원(李大源, 1921~2005, 경기도 파주) 2026.08.21,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_이대원 : 당신을 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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