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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金正喜)·초의선사(草衣禪師)의 <해붕대사영찬첩>

_ 김정희(金正喜, 1786~1856) · 초의(草衣, 1783~1866), 김정희 글씨 조선 1856년(71세), 초의 글씨 조선 1861년, 종이에 먹, 개인 소장 불교와 승려에 대한 깊은 인연을 보여주는 명작 김정희는 1815년 수락산 학림암으로 해붕대사(?~1826)를 찾아가 불교에 대해 토론했고 그날 초의선사를 만났다. 이처럼 김정희는 여러 승려와 깊이 사귀었고 불교에 조예가 깊었다.해붕대사의 초상화를 제자 호운(浩雲) 스님이 완성하고 그에게 글을 요청했다.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 김정희는 이를 수락하는 답장을 보냈다. 해붕대사의 사상을 전하는 찬문은 단정하면서도 부드러움을 잃지 않았다. 그의 해서체 글씨 중 최고의 명작이다. 이 찬문을 보고 감회에 깊이 젖은 초의선사가 지은 글과 김정희가 호..

주학년(朱鶴年)의 <소동파입극도>

_ 주학년(朱鶴年, 1760~1834), 중국 청(淸) 1811년, 비단에 먹과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김정희와 청나라 문인의 교유 김정희는 24세 1809년 부친을 따라 연경에 가서 옹방강(翁方綱, 1733~1818), 주학년 등의 청나라 학자들과 만나 견문과 학식을 넓혔다. 주학년은 조맹견(趙孟堅, 1199~1267년경)이 소유했던 벼루 뒷면에 그가 그린 동파 소식(蘇軾, 1036~1101) 초상화를 다시 그려 김정희에게 보냈다. 해남도 유배 시절 폭우를 피하고자 삿갓과 나막신을 빌려 신은 소식을 그린 그림을 '소동파입극도'라 한다. 이 그림 주변으로 김정희를 아는 옹방강, 완원(阮元, 1764~1849), 이임송(李林松, 1770~1827), 옹수곤(翁樹崐, 1786~1815)이 지은 글이 덧붙여..

이대원(李大源)의 <산>

_ 이대원(李大源, 1921~2005, 경기도 파주), 1963, 캔버스에 유화 물감, 73×50cm, 국립현대미술관 은 1963년 12월 6일부터 11일까지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열린 《제3회 2·9동인전 》에 출품된 작품이다.2·9동인회는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에서 일본인 미술교사 사토 구니오에게 배운 유영국, 이대원, 김창억, 임완규, 장욱진이 1961년 결성한 동인회이다. 화면에는 구름 위로 뾰족한 암봉들이 솟아 있다. 산과 구름은 세부 묘사를 줄인 간결한 형태로 정리되었으며, 전통 수묵의 농담 대신 색체의 미묘한 변화로 산의 부피와 공간의 깊이를 드러냈다. 기암과 준봉을 중심으로 한 산형은 전통 산수화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지만, 이를 단순화된 형태와 색면으로 재구성한 점에서는 이대원 특유의 현대적 ..

작가미상의 <소동파입극도>

_ 그림 작가모름(作家未詳), 글 김정희(金正喜, 1760~1834), 조선 19세기 중반, 종이에 먹과 엷은색, 국립중앙박물관 소동파입극도의 확산 1811년 주학년(朱鶴年, 1760~1834)이 옹방강 서재에 있던 조맹견(趙孟堅, 1199~1267년경) 벼루 뒷면의 동파 소식(蘇軾, 1036~1101)이 갓 쓰고 나막신 신은 소동파입극도를 모사해 김정희에게 보내주었다. 소식을 숭배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조선에서 주학년의 소동파입극도를 모사한 그림이 여러 점 제작되었다. 이 그림도 그러한 사례 중 하나이다. 그림 위쪽에는 소동파입극도 그림의 유래에 관해 김정희가 쓴 글이 있다. 글에 찍힌 「고연재(古硯齎) 」는 와 같이 김정희가 말년에 제작한 서화에 주로 보이는 인장이다 _ 그림 작가모름(作家未詳)..

400년 된 두 그루의 해송, 형제송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_ 형제송 (兄弟松) 수 량 : 2그루지정일 : 2024.10.21소재지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해암리 산 63-1시 대 : 조선시대 선조 형제송은 해암리 뒷산 위에서 아산만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400여 년 된 두 그루의 해송이다. 나무의 높이는 16m, 둘레는 3.5m이고, 나뭇가지가 수평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줄기가 꼬여 있다. 이 나무에는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두 가지 전설이 있다. 하나는 임진왜란 때 마을에 살던 장사 형제가 아산만에 쳐들어온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하여 마을 사람들이 이들의 묘지를 만들어 주었는데, 이 묘지에서 형제의 영혼이 소나무로 다시 태어나 마을을 지키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 소나무를 베면 큰 화를 겪는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

이대원(李大源)의 <과수원>

_ 이대원(李大源, 1921~2005, 경기도 파주), 1976, 캔버스에 유화 물감, 65.2×162.2cm, 개인 소장 은 꽃이 만개한 과수나무들이 화면 가득 펼쳐진 작품이다. 전경의 초록빛 풀섶과 주황빛 언덕 위로 과수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늘어서며, 분홍과 흰색의 꽃은 수많은 색점으로 표현되어 화면 전체를 촘촘히 채운다. 개별 나무의 세부를 묘사하기보다 반복되는 수형과 색체의 병치를 강조하며, 봄 과수원의 풍경을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화면으로 구성하였다. 꽃과 나뭇가지, 들판을 가로질러 이어지는 색점과 짧은 색선은 대상 사이의 경계를 느슨하게 하면서 화면 전체를 하나의 색체 표면으로 연결한다. 1973년 파주 농원에 화실을 마련한 이후 이대원은 주변의 과수원과 들판, 산과 연못을 지속해서 그렸..

<완당탁문첩> 제1면

제1면 _ 글 김정희(金正喜, 1786~1856), 그림 허련(許鍊, 1808~1893), 조선 1840년 이후, 중이에 목판인쇄, 1981년 이홍근 기증, 국립중앙박물관 김정희 지향점김정희 초상화(金正喜 肖像畵) 김정희가 존경한 인물과 지향점을 보여주는 그림과 글이다. 청나라 고증학자 담계(覃溪) 옹방강(翁方綱, 1733~1818)과 완원(阮元, 1764~1849)을 평생의 스승으로 삼은 김정희는 존경하는 마음에서 '보담재(寶覃齋)'와 '완당(阮堂)'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옹방강은 불세출의 문장가인 북송의 소식(蘇軾, 1037~1101, 호 동파東坡)이 섬에 유배 중 삿갓을 쓰고 나막신을 신은 모습의 초상화를 모셔두고 제를 올렸다. 김정희와 지인들은 이를 따라했으며, 제주 유배 중 제자 허련은 김정희 ..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간찰>

_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조선 1818년(33세) 7월 7일,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인생의 동반자 아내와 가족을 향한 마음 33세 김정희는 부인과 떨어져 지냈다. 부친 김노경(金魯敬, 1766~1837)이 경상감사로 부임하자 그의 안내 예안이씨를 비롯해 식구들이 대구로 갔다. 아내를 위한 한글 편지에서 그는 부인의 병환을 염려하고 부친과 서모(부친의 첩), 동생 등 가족의 안부를 살피고 서울에 남은 가족 소식도 살뜰히 전했다. 소식을 자주 전하지 않은 부인에게 서운함을 편지로 마무리했다. 34년을 함께 한 부인이 그의 나이 57세에 세상을 떠났다. 제주 유배 중인 그에게 27일 뒤에야 소식이 닿았다. 그는"놀라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마음을 진정할 수 없다"며 황망해 했..

충청남도 기념물, 아산 향교

충청남도 기념물, 아산 향교 (牙山 鄕校) 면 적 : 2,033㎡지정일 : 1997.12.23소재지 : 충남 아산시 영인면 여민루길 82 (아산리)시 대 : 년(1575)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아산향교는 처음 지은 연대는 알 수 없고, 조선 선조 8년(1575) 아산리 동쪽 향교골에서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지었고, 고종 1년(1864)에 수리하였다.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내삼문, 외삼문 등이다.대성전은 제사지내는 공간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고,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인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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