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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3년 됐습니다.

해드린청허하우스 귀촌, 6개월도 못있어! 제가 귀촌한다고 하니 6개월도 못있고 다시 서울로 온다고 반대한 분이 많았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지나 3년이 되었습니다.건강할 때 귀촌하여 새로운 주민들과 어울려 잘 적응하고, 주변 예당저수지와 황새둥지, 봉수산 휴양림 등 자연과 더불어 2도 5촌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교촌리 주민의 일원으로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서울에 가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없어집니다.해드린청허하우스 표지석 2023.05.23일 입주를 시작했습니다. 2024.07.03일 해드린청허하우스 표지석에 '청허(淸虛)' 호를 새겼습니다.언제 오셨나고 물어보시는 분이 많이 이 표지석으로 대신합니다.해드린청허하우스에서 바라본 일출 광경 해드린청허하우스에서는 예당저수지와 차령산맥..

<선문사변만어>

_ 초의 스님, 일제강점기 1913년, 선운사 성보박물관 소장 초의 의순(草衣意恂) 스님이 백파 긍선(白坡亘璇) 스님의 「선문수경 」을 비판하며 저술한 책입니다.선의 본질을 구분하여 등급화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이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였습니다. 이 책은 조선 후기 불교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학술 논쟁인 선 논쟁의 핵심을 담고 있으며, 당시 교단 내에서의 깊이 있는 철학적 고민과 지적 역동성을 잘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2026.04.25, 불교중앙박물관_도솔산 선운사_선(禪)에 들고 구름에 눕다.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문화재/고문서 2026.06.09

<선문수경>

_ 백파 스님, 조선 1827년, 종이에 인쇄,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백파 긍선(白坡亘璇) 스님이 수행자의 역량에 따라 선(禪)의 단계를 세 가지로 체계화한 저술입니다. 이에 대해 초의 의순(草衣意恂) 스님이 「선문사변만어 」를 통해 선의 본질에는 차별이 없음을 주장하며 반박하였습니다. 이후 추사 김정희와 여러 스님들이 논쟁에 가세하며 100여년 간 이어진 이 선 논쟁은 조선 후기 불교계의 지적 역동성과 사유의 지평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2026.04.25, 불교중앙박물관_도솔산 선운사_선(禪)에 들고 구름에 눕다.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문화재/고문서 2026.06.08

유영국(劉永國)의 <작품(Work)>

_ 유영국(劉永國, 1916~2002, 경북 울진), 1964, 캔버스에 유채, 129×161cm, 개인 소장 (Work)> _ 유영국(劉永國, 1916~2002, 경북 울진), 1964, 캔버스에 유채, 136×194cm, 개인 소장 (Work)> _ 유영국(劉永國, 1916~2002, 경북 울진), 1963, 캔버스에 유채, 130×162cm, 개인 소장 (Work)> _ 유영국(劉永國, 1916~2002, 경북 울진), 1964, 캔버스에 유채, 130×194cm, 개인 소장 2026.05.23, 서울시립미술관_유영국 : 산은 내 안에 있다 '청허(淸虛)'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선운사 대웅보전 소조약사불좌상 복장유물>

<선운사 대웅보전 소조약사불좌상 복장유물> _ 저고리/개금중수기/후령통/황초폭자, 선운사 성보박물관 선운사 대웅보전의 약사부처님 복장에서 발견된 「개금중수기(改金重修記)> 」에 따르면, 1632년 화주 법정(法淨) 스님이 불상의 조성을 시작하여 이듬해에 마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의 본존불 대좌에 남아있는 묵서에는 1633년 조성을 시작해 1634년에 완성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연대에 차이를 보입니다. 불사를 총괄한 증명은 지훈(智訓) 스님이며 참여 인원은 40여명에 이릅니다.복장에 넣은 짙은 녹색의 는 붉은색 고름과 곁마기, 끝동을 갖춘 삼회장저고리로, 16세기 중엽에서 17세기 중엽 여성 저고리의 전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고리의 안쪽에는 '경거고창현감심씨양위(京居高敞縣監深氏兩位)'라는 기..

이삼이 맡았던 주요 군직의 사명(司命)을 모은 첩. <사명첩>

_ 1727년(영조 3) 이삼이 맡았던 주요 군직의 사명(司命)을 모은 첩 1714년(숙종 41) 평안도 · 함경남도병마절도사, 1721년(경종 1) 충청도병마절도사, 1722년(경종 2) 총융사 · 경기도병마절도사, 1724년(경종 4)어영대장 ·금위대장, 1727년(영조 3) 훈련대장 등 중앙 군영과 각 도의 병마절도사를 역임하며 사용한 야전 지휘용 수기(手旗)를 모아 제작한 첩이다. 첩에는 '삼군사명(三軍司命, 훈련대장), 어영군사명(御營軍司命, 어영대장), 금위군사명(禁衛軍司命, 금위대장), 총융제군사명(摠戎諸軍司命, 총융사), 관서병마사명(關西兵馬司命, 평안도병마절도사), 남관병마사명(南關兵馬司命, 함경남도병마절도사), 호서병마사명(湖西兵馬司命,충청도병마절도사), 기보좌군사명(畿輔左軍司命,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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