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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미상의 <문방도>

_ 작가 모름(作家未詳), 조선 19세기, 비단에 먹과 색, 국립중앙박물관 책과 문방구, 골동품과 진귀한 장식물을 그린 그림이다. 지그재그로 쌓아 올린 책갑(冊匣)과 각종 도자기와 청동기, 수선화 화분, 인장함, 벼루, 필통 등 문인의 방에 놓이기를 바라는 여러 기물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그림은 문방구를 감상하고 옛 물건을 수집하던 18세기 이후 조선 문인들의 취향을 반영한다. 화면에 놓인 여러 기물은 학문과 교양, 부귀와 출세에 대한 염원이 반영되어 있다. 특히 산호와 같은 귀한 장식물은 문방도에서 높은 관작과 출세를 상징하는 길상적 소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_ 작가 모름(作家未詳) 2026.08.14,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애춘(靄春) 신명연(申命衍)의 <화조도>

_ 애춘(靄春) 신명연(申命衍, 1809~1886), 조선 19세기, 비단에 먹과 색, 국립중앙박물관 꽃과 새 신명연은 문인화가 신위(1769~1847)의 둘째 아들로 화조, 호훼를 즐겨 그렸다. 산뜻한 채색과 섬세한 묘사가 특징이다. 이 화조화 병풍에는 봄에서 가을에 이르는 꽃과 새가 그려져 있으며, 각 폭에 새에 대해 읊은 글이 장식성이 강한 예서(隸書)로 쓰여 있다. 새의 생태를 인간사에 빗대어 표현한 글로, 화면의 계절감과 조화를 이룬다. 특히 배꽃과 모란 아래 앉아 있는 비둘기를 그린 제3폭은 섬세한 채색과 정교한 필선이 돋보인다. 이 작품은 문인적 정취와 장식성이 어우러진 19세기 화조화의 면모를 잘 보여 준다. _ 애춘(靄春) 신명연(申命衍, 1809~1886) 2026.08.14, ..

자하(紫霞) 신위(申緯)의 <묵죽도>

_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5), 조선 19세기 전반,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신위는 문인 관료이자 시인, 서화가로, 시 · 서 · 화에 모두 뛰어났으며, 청나라 문인들과 교유하며 19세기 문예계를 이끌었다. 대나무 그림을 잘 그렸는데, 절벽 위아래로 뻗은 대나무를 그린 이 작품은 탄력 있고 경쾌한 필치와 능숙한 먹의 농담 변화가 돋보인다. 그림 곳곳에 19세기 동아시아 문인들이 흠모했던 소식(蘇軾, 1037~1101)을 기리는 글이 적혀 있다. 화면 왼쪽 위 "벼랑에 쌓인 수많은 돌로 그 절개를 밝힌다"라는 글은 소식의 「묵군당기(墨君堂記) 」의 구절이다.이 그림에 찍혀 있는 「소재묵연(蘇齎墨緣)」은 청나라 학자 옹방강(1733~1818)의 인장을 모작한 것이다. '소재'는 '소동파..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의 <강상야박도>

_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 조선 1747년, 비단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한밤에 배를 대어놓고 어둠이 내려앉은 강가에 한 사공이 조각배를 대고 잠들어 있는 고요한 분위기를 잘 살린 작품이다. 화면 오른쪽 위의 글은 중국 당(唐)의 시인 두보(杜甫, 712~770)의 「춘야희우(春夜喜雨) 」에서 가져온 구절로, 가뭄 끝에 내린 봄비로 만물이 되살아나는 기쁨을 노래한 시이다. 어둡고 습윤한 산수 풍경이 시구의 정취와 잘 어울린다. 작품 속 화면에 짜임새를 주는 지그재그로 상승하는 구도로 먹의 농담을 자유롭게 조절한 표현에서 심사정의 능숙한 필력을 확인할 수 있다. 들길은 온통 구름으로 어둑한데, 강에 뜬 배 등불만 밝구나. 野逕雲具黑 江船火觸明정묘년(1747) 정월에 현재(심사정의..

이징(李澄)의 <금니산수도>

_ 이징(李澄, 1581~1653 이후)의 작품으로 전해짐, 조선 17세기 중반, 비단에 금니, 국립중앙박물관금으로 근린 산수검게 물들인 비단 위에 금니(泥金)로 산수를 그린 작품이다. 금니는 금박을 곱게 갈아 아교를 녹인 물에 섞어 만든 안료로, 점성이 있어 먹처럼 농담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절벽과 산봉우리의 굽이치는 형태와 강가와 구름의 잔잔한 표현이 무척 섬세하다. 화가가 금니를 다루는 기량이 뛰어남을 알 수 있다. 17세기 조선 왕실을 중심으로 금니를 사용한 서화가 유행하였다. 어두운 바탕 위에 금빛으로 그린 빛나는 이 산수는 밝고 고귀한 이상향의 세계를 편쳐 보이는 듯하다. 이 그림 어디에도 작가를 밝히는 글이나 인장이 남아 있지 않지만 금니를 능숙하게 사용한 점과 ..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석노시>

_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조선 1853년경(68세),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옛 돌화살촉 연구 김정희는 함경도 북청 유배 시기(1851~1852)에도 북방 지역의 역사와 지리, 금석학에 대한 연구를 이어 갔다. 그는 북청 인근의 청해토성에서 돌화살촉인 석노(石䃕)와 돌도끼인 석부(石斧) 등을 발견했다. 이를 귀신의 조화 또는 약재로 보던 당시의 견해와도 달리 그는 문헌을 검토해 이를 숙신(肅愼)의 유물로 판정했다. 숙신은 기원전 약 6세기부터 만주 북동부에 살던 종족으로 고조선과 발해의 기원으로 여겨졌다. 그는 「석노시 」를 짓고 북방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석노시 」가 여러 점 전해지는데, 이 첩은 경북 은해사 주지 혼허(混虛)에게 행서로 써..

오숭량(吳崇梁)의 <김정희에게 보낸 감사 편지, 간찰>

_ 오숭량(吳崇梁, 1766~1864), 중국 청(淸) 1828년(김정희 43세), 종이에 먹, 2003년 나카무라 긴야(中村欽哉) · 이케다 온(池田溫) 기증, 국립중앙박물관 김정희와 오숭량 오숭량이 자신이 선물한 《기유십육도첩(紀遊十六圖帖) 》에 김정희가 시 「기유도가영16수(紀遊圖佳詠十六圖) 」시를 지어 보내 감사하다며 이 편지를 썼다. 또한 자신의 근황을 알리며 한 폭을 함께 보낸다고 적었다. 오숭량은 김노경 · 김정희 · 김명희 삼부자를 중국 송나라의 소동파 삼부자에 비유하며 높이 평가하였다. 김정희 집안에서도 매화를 사랑한 오숭량을 기리기 위해 매감(梅龕, 매화를 감상하는 작은 감실)을 만들어 그의 시를 소중히 놓고 그 주위에 매화를 둘러 존경의 마음을 표하였다. _ 오숭량(吳崇梁, 1766..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기유십육도시>

_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조선 1847년경(62세) 일, 종이에 먹, 2015년 이동 기증, 국립중앙박물관 김정희와 청 문인의 교유오숭량 그림에 지은 김정희의 시 1823년 봄 부친 김노경(金魯敬,1766~1837)과 동생 김명희(金命喜, 1788~1857)는 연경에 갔을 때 오숭량을 만나 깊은 교유 관계를 이어갔다. 옹방강의 제자인 오숭량은 자신의 육순을 자축하고자 평생 유람한 명승지 16곳을 그려 《 기유십육도첩(紀遊十六圖帖) 》을 만들어 김정희에게 전했다. 김정희는 그림마다 시를 지어 보냈다. 이를 감사해 하는 오숭량의 1828년 1월 편지가 있어, 김정희가 시를 지은 시기가 1827년으로 파악된다. 20년 뒤 아들 상우(尙佑, 1817~1884)의 요청으로 쓴 이 시첩..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두 동생에게 보낸 편지, 간찰>

2번째 편지, _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조선 1845년(60세) 6월 12일,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제주 유배 시절 이별의 고통 정치적 모함으로 1840년, 55세에 제주도 유배를 간 김정희는 8년 4개월의 긴 시간을 가족과 지인의 도움에 기대 견뎌냈다. 그는 뭍으로 가는 인편이 생길 때마다 가족과 지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수십 통의 편지에 유배지에서 겪은 고통과 그리움, 가족에 대한 염려가 절절히 담겨 있다. 서울과 예산에 있던 두 동생에게 보낸 이 편지에 누이의 사망 소식으로 애통해하는 심정이 묻어나온다. 그는 앞서 보낸 편지들이 아직 포구에 묶여 출발하지 못했다는 소식과 함께, 누이의 장례 절차조차 돌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그의 유배 생활이 정치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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