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충청남도 109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4호_석성동헌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_ 석성동헌 (石城東軒) 수    량 : 1동지정일 : 1987.08.03소재지 : 충남 부여군 석성면 석성로 124 (석성리) 동헌은 조선시대의 지방 관아건물로 고을의 수령이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 공적일 일을 하던 곳이다.석성동헌은 기록에 의하면 인조 6년(1628)에 세워졌으며, 후에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석성은 원래 백제의 진악산현이었는데 고려 초에 석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조선 태종 15년(1415)에 현이 설치되고 후에 군으로 되었으며, 1914년에 면이 되었다.앞면 4칸·옆면 3칸으로 홑처마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석성면사무소로 사용되던 한식 건물로 주변에 관아건물이 많이 있었으나, 현재는 이 건물 밖에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3호_임득의 초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3호 _ 임득의 초상 (林得義 肖像) 수    량 : 1점지정일 : 2010.07.30소재지 : 충청남도 홍성군  임득의(林得義, 1558-1612)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자는 자방(子房)이고 본관은 평택이다. 1596년에 일어난 이몽학(李夢鶴)의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1604년(선조 37) 청난공신(淸難功臣) 3등에 책록되었고, 충청수우후(忠淸水虞侯)와 경상우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함. 은 가전(家傳)되어옴임득의 초상 (林得義 肖像) 2024.08.29, 충남역사박물관글 문화재청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2호_김만증 초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2호 _ 김만증 초상 (金萬增 肖像) 수    량 : 2점지정일 : 2010.07.30소재지 : 충청남도 논산시시   대 : 조선시대 초상 2점으로 그 중 전신상(全身像)은 평상복 차림인 심의(深衣) (유학자들의 예복 중 하나)에 복건 福巾을 쓰고 공수(拱手) (두 손을 어긋매껴 마주 잡는 일) 자세를 취한 좌안팔분면 左顔八分面의 입상이다.후덕한 얼굴과 품이 넉넉한 심의에 감싸인 당당한 풍채 風采가 인상적이며, 흰 머리칼과 수염으로 미루어 노년기의 모습이다. 얼굴은 갈색 선으로 윤곽을 잡고 갈색 담채로 피부색을 표현했으며 이마와 코, 광대뼈 등에 약간 더 진한 채색을 가해 굴곡을 나타냈다. 이목구비와 주름살도 선으로만 그렸고 눈썹과 머리칼, 수염을 한 올 한 올 정성껏 표현했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_당진 영랑사 대웅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 _  당진 영랑사 대웅전 (唐津 影浪寺 大雄殿) 수    량 : 1동지정일 : 1973.12.26소재지 : 충청남도 당진시 진관로 142-52 (고대면, 영랑사)시   대 : 조선시대 중기 영랑사는 신라 진흥왕 25년(564)에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설과 백제 의자왕 8년(648)에 당나라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두 가지 설이 있으나 모두 신빙성이 없다. 고려 선종 8년(1091) 대각국사 의천이 크게 수리하면서 사찰의 면모가 갖추어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 숙종 4년(1678)에 보수하였고, 일제시대에도 대웅전을 수리하였다.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_예산 수덕사 소조삼존불상, 소조석가여래좌상 복장유물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_예산 수덕사 소조삼존불상, 중앙 석가여래좌상, 좌 문수보살입상, 우 보현보살입상 중앙의 석가여래좌상은 머리를 약간 앞으로 내밀고 있으며 15세기 불상에 비해 신체 비례가 얼굴이 둥글고 큰 편이다. 정수리 부위에 정상계주와 중앙계주가 있으며 항마촉지인의 수인에 편단우견의 착의법이 표현되었다.양옆의 협시보살인 문수 · 보현보살 입상은 등을 약간 뒤로 제치고 머리를 앞으로 숙여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있다. 머리에는 화문을 오려 만든 금속판을 끼운 나무로 된 보관을 쓰고 있으며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이나 귀의 형태는 본손의 여래상과 동일하여 같이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다.좌 문수보살입상, 우 보현보살입상 수덕사 소조석가여래좌상 _ 조선 16세기, 예산 수덕사 대웅전(수덕사 근역성보관) 예산..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8호_보령 금강암 석불 및 비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8호 _ 보령 금강암 석불 및 비편 (保寧金剛庵石佛및碑片) 수량/면적 : 석불1구,비편1기/61.4㎡ 지정일 : 2000.09.20 소재지 : 충남 보령시 미산면 용수리 산59번지 시 대 : 조선시대 ◦ 조선3대 태종의 후비(后妃)였던 권씨의 소원을 빌기 위한 원당(願堂)으로 무학대사의 제자 영암(玲嵒)스님이 1412(태종12)에 건립하였는데, 건립을 주관한 사람은 후비 권씨의 아버지인 권홍(權弘)과 딸인 오주이씨였음. ◦ 이때 조성된 석불은 2단의 좌대 위에 양손을 가진런히 하여 연꽃 봉오리를 받쳐 들고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모습으로, 미륵불로 추정되며, 재료는 사암(砂岩)임. ◦ 이 금강암과 석불 조성사실을 기록한 비석은 현재 절반정보 파손된 상태의 비편(碑片)으로 남아있는데..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_보령 수부리 귀부 및 이수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 _ 보령 수부리 귀부 및 이수 (保寧水芙里龜趺및螭首) 수량/면적 : 1기/3.7㎡ 지정일 : 1974.09.01 소재지 : 충청남도 보령시 만수로 582-11 (웅천읍) 시 대 : 고려 ◦ 비신(碑身)이 없이 귀부(龜趺, 받침돌)와 이수(螭首, 머리돌)만이 주변 산기슭에서 발견된 어느 고승의 탑비이지만 비신이 없어 주인공을 알 수 없음. ◦ 다만 조각 수법․양식․크기, 그리고 옆에 있는 뛰어난 수법의 8각 원당형 승탑(부도) 파재(破材)로 보아 고려시대 어는 유명한 승려의 탑비와 부도로 추정됨. ◦ 이수의 중앙 정면 전액(篆額)에는 글씨가 없고, 다만 용과 구름 문양이 화려하고 섬세하며, 귀부에도 거북등 모양과 발 고리 턱수염 등이 생동감있게 조각되어 있음. 보령 수부리 귀부..

보령 남포읍성의 관아 건물, 남포 관아문<진서루.내삼문.외동헌>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5호 _ 남포관아문 (藍浦官衙門) 수량/면적 : 3동/365.3㎡ 지정일 : 1976.01.08 소재지 : 충남 보령시 남포면 읍내리 378번지 시 대 : 조선시대 ◦ 조선시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남포읍성의 관아 건물로서 객사(客舍), 동헌(東軒), 아사(衙舍), 향청(鄕廳), 작청(作廳), 현사(縣司) 등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것은 동헌, 내삼문 그리고 관아문 진서루임. ◦ 현감 집무실인 동헌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건물이며, 남포현 관아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던 관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문루 건물로 아래는 출입구, 위는 누마루를 설치하고, 팔작지붕이며, 조선왕조의 중앙 집권을 상징하기 위해 당시 전국에 똑같이 만들어진 관아문 양식을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33호_보령 백운사 목조보살좌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33호 _ 보령 백운사 목조보살좌상 (保寧 白雲寺 木造菩薩坐像) 수 량 : 1 지정일 : 2014.09.01 소재지 : 충청남도 보령시 심원계곡로 259-200 (성주면, 백운사) 시 대 : 조선 후기(17세기) 백운사 목조보살좌상은 전체높이 92.9cm, 어깨너비 35cm, 무릎폭 56.3cm 이며, 상체가 길고 넓은 무릎에서 오는 신체 비례와 근엄한 얼굴이 특징이다. 얼굴은 방형에 약간 긴 형상인데 옆으로 긴 큰 눈과 입 등에서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다. 복장물 중 묵서(墨書)로 된 조성기가 남아 있다. 묵서는 ‘강희23년 윤오월 오일 영흥사 영산전 우보처 제화갈라상을 완성하고 바로 명정을 세운다’ 라는 내용이며 화원(畵員)은 법녀(法女)와 삼우(參右)인데, 전라도 전주 안화사..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9호_대천 한내돌다리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9호 _ 대천한내돌다리 (大川한내돌다리) 수량/면적 : 1개소/211.9㎡ 지정일 : 1992.08.17 소재지 : 충청남도 보령시 동대동 809-1 시 대 : 조선시대 대천천 하류에 있었던 다리로, 예전에는 남포와 보령을 이어주는 중요한 교통로였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물살에 쓸려 떠내려 가거나, 하천 제방공사를 하면서 파손되어 얼마남지 않은 것을, 1978년 수습하여 옮겨 두었다가, 1992년에 대천천 강변에 옮겨 일부만 복원해 놓았다. 거대한 화강암으로 만들었는데, 근처에 있는 왕대산의 돌을 깎아내어 뗏목으로 운반해온 것으로 보인다. 다리의 몸체를 받치는 기둥은 거칠게 손질한 2∼3개의 돌을 쌓아 이루게 하여, 모두 6개의 기둥이 불규칙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 위로 넓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