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충청남도 104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8호_보령 금강암 석불 및 비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8호 _ 보령 금강암 석불 및 비편 (保寧金剛庵石佛및碑片) 수량/면적 : 석불1구,비편1기/61.4㎡ 지정일 : 2000.09.20 소재지 : 충남 보령시 미산면 용수리 산59번지 시 대 : 조선시대 ◦ 조선3대 태종의 후비(后妃)였던 권씨의 소원을 빌기 위한 원당(願堂)으로 무학대사의 제자 영암(玲嵒)스님이 1412(태종12)에 건립하였는데, 건립을 주관한 사람은 후비 권씨의 아버지인 권홍(權弘)과 딸인 오주이씨였음. ◦ 이때 조성된 석불은 2단의 좌대 위에 양손을 가진런히 하여 연꽃 봉오리를 받쳐 들고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모습으로, 미륵불로 추정되며, 재료는 사암(砂岩)임. ◦ 이 금강암과 석불 조성사실을 기록한 비석은 현재 절반정보 파손된 상태의 비편(碑片)으로 남아있는데..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_보령 수부리 귀부 및 이수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 _ 보령 수부리 귀부 및 이수 (保寧水芙里龜趺및螭首) 수량/면적 : 1기/3.7㎡ 지정일 : 1974.09.01 소재지 : 충청남도 보령시 만수로 582-11 (웅천읍) 시 대 : 고려 ◦ 비신(碑身)이 없이 귀부(龜趺, 받침돌)와 이수(螭首, 머리돌)만이 주변 산기슭에서 발견된 어느 고승의 탑비이지만 비신이 없어 주인공을 알 수 없음. ◦ 다만 조각 수법․양식․크기, 그리고 옆에 있는 뛰어난 수법의 8각 원당형 승탑(부도) 파재(破材)로 보아 고려시대 어는 유명한 승려의 탑비와 부도로 추정됨. ◦ 이수의 중앙 정면 전액(篆額)에는 글씨가 없고, 다만 용과 구름 문양이 화려하고 섬세하며, 귀부에도 거북등 모양과 발 고리 턱수염 등이 생동감있게 조각되어 있음. 보령 수부리 귀부..

보령 남포읍성의 관아 건물, 남포 관아문<진서루.내삼문.외동헌>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5호 _ 남포관아문 (藍浦官衙門) 수량/면적 : 3동/365.3㎡ 지정일 : 1976.01.08 소재지 : 충남 보령시 남포면 읍내리 378번지 시 대 : 조선시대 ◦ 조선시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남포읍성의 관아 건물로서 객사(客舍), 동헌(東軒), 아사(衙舍), 향청(鄕廳), 작청(作廳), 현사(縣司) 등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것은 동헌, 내삼문 그리고 관아문 진서루임. ◦ 현감 집무실인 동헌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건물이며, 남포현 관아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던 관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문루 건물로 아래는 출입구, 위는 누마루를 설치하고, 팔작지붕이며, 조선왕조의 중앙 집권을 상징하기 위해 당시 전국에 똑같이 만들어진 관아문 양식을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33호_보령 백운사 목조보살좌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33호 _ 보령 백운사 목조보살좌상 (保寧 白雲寺 木造菩薩坐像) 수 량 : 1 지정일 : 2014.09.01 소재지 : 충청남도 보령시 심원계곡로 259-200 (성주면, 백운사) 시 대 : 조선 후기(17세기) 백운사 목조보살좌상은 전체높이 92.9cm, 어깨너비 35cm, 무릎폭 56.3cm 이며, 상체가 길고 넓은 무릎에서 오는 신체 비례와 근엄한 얼굴이 특징이다. 얼굴은 방형에 약간 긴 형상인데 옆으로 긴 큰 눈과 입 등에서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다. 복장물 중 묵서(墨書)로 된 조성기가 남아 있다. 묵서는 ‘강희23년 윤오월 오일 영흥사 영산전 우보처 제화갈라상을 완성하고 바로 명정을 세운다’ 라는 내용이며 화원(畵員)은 법녀(法女)와 삼우(參右)인데, 전라도 전주 안화사..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9호_대천 한내돌다리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9호 _ 대천한내돌다리 (大川한내돌다리) 수량/면적 : 1개소/211.9㎡ 지정일 : 1992.08.17 소재지 : 충청남도 보령시 동대동 809-1 시 대 : 조선시대 대천천 하류에 있었던 다리로, 예전에는 남포와 보령을 이어주는 중요한 교통로였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물살에 쓸려 떠내려 가거나, 하천 제방공사를 하면서 파손되어 얼마남지 않은 것을, 1978년 수습하여 옮겨 두었다가, 1992년에 대천천 강변에 옮겨 일부만 복원해 놓았다. 거대한 화강암으로 만들었는데, 근처에 있는 왕대산의 돌을 깎아내어 뗏목으로 운반해온 것으로 보인다. 다리의 몸체를 받치는 기둥은 거칠게 손질한 2∼3개의 돌을 쌓아 이루게 하여, 모두 6개의 기둥이 불규칙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 위로 넓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0호_보령 관아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0호 _ 보령 관아문 (保寧 官衙門) 수량/면적 : 1동/71.1㎡ 지정일 : 1976.01.08 소재지 : 충청남도 보령시 보령읍성길 87-37 (주포면, 보령중학교) 시 대 : 1430 ◦ 조선시대 보령읍성의 남문(南門)임. 장초석(長礎石) 위에 기둥을 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 건물이며, 조선왕조의 중앙집권을 상징하기 위해 당시 전국에 똑같이 만들어진 관아문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정면에는 해산루(海山樓)라는 현판이 걸려있는데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李山海)의 친필로 전해옴. ◦ 보령현(保寧縣)은 고려초부터 붙여진 이름이며 1413년(태종13)부터 현감이 파견되었고, 1652년(효종3)에는 보령부(保寧府)로 승격되기도 했으나 다시(1655) 보령..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6호_보령 선림사 목조석가여래좌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6호 _ 보령 선림사 목조석가여래좌상 (保寧 禪林寺 木造釋迦如來坐像) 수 량 : 1구 지정일 : 2011.07.20 소재지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산 5-1 시 대 : 조선후기 ○ 선림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은 제작시기와 조각승은 알 수 없지만 상호 표현과 신체 비례, 안정감 있는 자세 등에서 조선 후기의 조형감이 반영된 작품임. ○ 왼쪽어깨의 맞주름, 높은 무릎과 부챗살로 퍼지는 옷자락과 오른쪽 발아래의 삼각형 옷자락 등에서 조선 후기 불상의 세부표현이 잘 드러나 있어 시대성과 예술성이 뛰어난 불상임 보령 선림사 목조석가여래좌상 표지판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선림사 글 문화재청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5호_보령 선림사 목조관음보살좌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5호 _ 보령 선림사 목조관음보살좌상 (保寧 禪林寺木造觀音菩薩坐像) 수 량 : 1구 지정일 : 2011.07.20 소재지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산 5-1 시 대 ; 조선후기 ○ 선림사는 신라 진평왕대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사찰 주불전인 원통전에는 근대에 조성된 석조여래좌상, 조선 후기에 조성된 목조석가여래좌상과 목조관음보살좌상이 불단 위에 모셔져 있다. ○ 선림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조성시기와 불상을 만든 조각승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상호와 신체, 자세 등에서 조선 후기의 불상 양식이 잘 나타나고 있는 작품으로, 특히 무릎 밑의 갑대 는 조선 후기 보살상에서도 드물게 나타나는 표현으로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보이는 특징이다. ○ 선림사 목조관음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0호_충청수영 내삼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0호 _ 충청수영 내삼문 (忠淸水營 內三門) 수량/면적 : 35 지정일 : 2010.12.30 소재지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596 충청수영의 북동측에 있는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3칸 중 가운데 한칸을 높여 솟을지붕형태로 건축되었다. 작은 규모의 건축물임에 비해 기둥과 보, 도리 등이 모두 견실한 부재로 건축되어 건물의 품격이 당당하고 육중해 수영성내 중요한 영사(營舍)의 출입문이었던 듯 하다. 충청수영 내삼문 표지판 충청수영 내삼문 전경 충청수영 내삼문 공해관 삼문 건물은 원래 수사의 집무실이었던 공해관의 출입문 역할을 하던 내삼문이다. 현재 공해관은 없어지고, 삼문만 남아오고 있다. 삼문 뒤의 객사 건물과 함께 오천고등학교 자리에서 옮겨져서 현판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9호_보령 유격장군청덕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9호 _ 보령 유격장군청덕비 (保寧遊擊將軍淸德碑) 수 량 : 1기 지정일 : 2000.09.20 소재지 :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661-12번지 ◦ 1598년 4월에 세운 유격장군(遊擊將軍) 계금(季金)의 청덕비로, 유격장군 계금은 중국 명나라 절강성(浙江省) 수군장으로 임진왜란 때 3000명의 수군을 이끌고 이곳 오천(충청 수영)으로 상륙하고 전라도로 이동하여 왜군을 토벌하였음. ◦ 비문은 장군의 덕(德)을 칭소하고 왜적을 빨리 무찌르기를 기원하였으며, 장군의 위엄을 빌려 바다에서의 안녕을 기도(祈禱)하자는 내용으로 임진왜란 대 명나라 수군이 상륙한 지점을 알려주고, 당시의 민속을 엿볼 수 있는 비로써, 비문은 안대진(安大進)이 지었음. 보령 유격장군청덕비 표지판 보령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