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충청남도 109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1호_청양 정혜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1호 _ 청양 정혜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수 량 : 3구 지정일 : 2018.01.22 소재지 :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 상지길 165-10, 정혜사 시 대 : 17세기초 정혜사 대웅전에 봉안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중앙에 석가여래을 두고 좌우에 아미타여래과 약사여래를 배치한 삼세불의 형식이다. 나무로 만들고 그 위에 금을 입힌 목조불상으로 현재 파손된 부분이 거의 없어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그러나 삼세불상에 대해서는 관련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유래과정이나 조성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정혜사 대웅전 목조삼세불상은 얼굴표현이나 신체비례, 착의법 등에서 예산 수덕사 대웅전 삼세불(보물 제1381호)을 비롯하여 서산 문수사 극락보전 삼세불, 논산 쌍계사 대웅전 삼세불(보물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9호_청양 최익현압송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9호 _ 청양 최익현압송도 수 량 : 1폭 지정일 : 2019.01.30 소재지 : 충청남도 청양군 장곡길 43-24 (대치면, 백제문화체험박물관) 「청양 최익현압송도」는 구한말을 대표하는 문인지식인이자 항일지사인 면암 최익현선생이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부산에서 다시 대마도로 압송되는 과정을 재현한 기록화로 조선시대 기록화 제작 방식을 현대화한 새로운 구성방식이 흥미롭다. 「청양 최익현압송도」는 초상화와 마찬가지로 1910 ~ 1930년대 최익현의 행적을 기리는 추모사업의 일환으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대체로 압송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이 「면압집」에 등장하는 인물과 연계되어 의미가 있다. 「청양 최익현압송도」는 주인공의 역사적 지명도와 초상화가 채용신의 명성 그리고 회..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8호_청양 최익현초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8호 _ 청양 최익현초상 수 량 : 1폭 지정일 : 2019.01.30 소재지 : 충청남도 청양군 장곡길 43-24 (대치면, 백제문화체험박물관) 「청양 최익현초상」은 구한말을 대표하는 문인지식인이자 항일지사인 면암 최익현의 초상화이며, 그의 말년 행적을 담은「최익현 압송도」함께 보관된 점이 의미가 있다.「청양 최익현초상」은 현존하는 관복본 전신상 중 비교적 고식의 초상화법이 적용된 사례이며, 눈동자에 수정체가 표현되지 않은 점은 채용신의 초기화법에 해당된다.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인 채용신이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유학자이자 의병장 최익현의 풍모를 적절히 형상화해낸 작품으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청양 최익현초상 2023.09.01, 청양군 대치면, 백제문화체험박물관 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_이광임선생 고택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 _ 이광임선생 고택 (李廣任先生 故宅) 수 량 : 1구 지정일 : 1978.12.30 소재지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334-5 이광임(1784∼1857)이 조선 순조 20년(1820)에 지은 목조기와집으로 ㄱ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사랑채, 그리고 행랑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자 모양을 하고 있다. 경사진 곳에 여러 단으로 땅을 고르게 하여 지었는데, 건물기단과 마당의 높낮이가 심하여 변화있는 외부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사랑채는 앞면 7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왼쪽부터 방·대청·방·방·부엌으로 되어있다. 대청은 2칸이고 오른쪽 2개의 방은 필요에 따라 통칸으로 쓸 수 있게 되어있으며, 부엌은 뒤쪽에 들이고 앞쪽으로는 누다락을 두었다. 이러한 구조는 이 지역의 특색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4호_청양 영모재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4호 _ 청양 영모재 (靑陽 永慕齋) 수 량 : 3동 지정일 : 1998.12.29 소재지 : 충남 청양군 청양읍 장승리 73-1번지 소유자(소유단체 ) : 함평이씨 종중 현종 9년(1668)에 함평 이씨 문중회의를 통해 지어진 청양 함평 이씨 재사이다. 건립된 지 330여 년이 지났으나 초기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특색있는 건물이다. 마룻대에 쓰여진 축문과 중수기록이 적힌 현판을 통해 고종 18년(1881)에 다시 수리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재실 4칸·협문 1칸·곳간 2칸·행랑채 9칸의 규모로, 곳간과 행랑채 사이에 대문이 있는 ㄱ자집의 형태이다 영모재 (永慕齋) 표지판 청양 영모재의 행랑채 영모재 주출입문 'ㄱ'자 형태의 행랑채 청양 영모재의 행랑채 청양 영모재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4호_예산 천방사 금동여래좌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4호_ 예산 천방사 금동여래좌상 (禮山 千方寺 金銅如來坐像) 수 량 : 1구 지정일 : 2010.07.30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대술면 상항방산로 327 시 대 : 고려후기 의 육계는 크고 낮으며, 정상계주와 중간계주가 표현되었다. 타원형의 얼굴은 눈, 코, 입 등이 두꺼운 도금으로 인해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으나 단정한 인상은 잘 남아 있다. 신체 상체는 어깨가 둥글고 허리는 길고 반듯하며, 하반신은 비록 잘못된 주조로 인해 밑부분이 들떴지만 결과부좌한 다리의 표현이 자연스럽고 안정감있다. 신체에는 두꺼운 대의를 걸치고 노출된 가슴에는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내의와 군의를 묶는 띠매듭이 표현되었으며, 왼쪽어깨에서 팔꿈치로 떨어지는 옷주름은 삼각형 골주름으로 처리하였다. 안정감 있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164호_예산 성당

충청남도 기념물 제164호 _ 예산성당 (禮山聖堂) 수 량 : 본관 1동, 사제관 1동 지정일 : 2004.04.10 소재지 : 충남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 664번지 시 대 : 1934년 예산성당은 전형적인 삼랑식(三廊式) 성당 건축이며 외관의 전체 구성은 단순하나, 처마돌림 띠, 창둘레 아치 장식 등의 비례가 뛰어난 근대 성당 건축물로서 1933년에 착공하여 1934년에 준공하였다. 한국인 신부에 의해 건립된 건축물로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보존가치가 매우 높으며, 일본의 건축문화를 수용·혼재하지 않고 서양의 건축문화를 직접 수용하여 토착화한 건축양식으로서 근대건축사 연구의 중요자료이다. 예산성당 (禮山聖堂) 표지판 . 예산성당 (禮山聖堂) 전경 교육관 측면 교육관 정면과 사무소 충청남도 기념물 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3호_포정사문루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3호 _ 포정사문루 (布政司門樓) 수 량 : 2동 지정일 : 1980.12.29 소재지 : 충남 공주시 관광단지길 30-8 (웅진동) 조선시대 충청도 관찰사가 공무를 집행하던 선화당 앞에 서있던 정문이다. 공주는 충청도 전체를 관장하던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감영에는 50여 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선화당과 포정사 및 삼문, 부속건물 1채 만이 남아있다. 원래는 공주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옆에 있었는데, 옛 공주군청 옆으로 옮겨지어 공주 제2감리교회 등으로 사용되어 왔다. 1993년 선화당 앞 지금의 위치에 복원하였다. 포정사는 앞면 5칸·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문루건물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우진각지붕집이다. 우진각 지붕은 지붕면이 4면으로 경사진 지붕을 말하며, 이 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_선화당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 _ 선화당 (宣化堂) 수 량 : 1동 지정일 : 1980.12.29 소재지 : 충남 공주시 관광단지길 30-8 (웅진동) 조선시대 충청도 관찰사가 공무를 집행하던 곳이다. 도내의 일반 행정·군사·조세 및 중요한 재판이 행해졌다. 원래 태조 4년(1395)에 충주에 설치되었으나 선조 35년(1602)에 공주로 옮겨와 충청도 전체를 관장하는 지방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여지도서』에는 선화당을 비롯하여 50여 채의 건물과 칸수를 기록하고 있으나, 지금은 선화당과 포정사 및 삼문, 부속건물 1채만 남아있다. 지금의 선화당 건물은 순조 33년(1833)에 지은 것으로, 원래는 공주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자리에 있었으나 1932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앞면 8칸·옆면 4칸의 규모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6호_포저유서 및 송곡문집판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6호 _ 포저유서 및 송곡문집판각 (浦渚遺書 및 松谷文集板刻) 수 량 : 633매 지정일 : 1987.12.30 소재지 : 충청남도 공주시, 마곡사 조선시대의 문신인 포저 조익(趙翼,1579∼1655)과 그의 셋째 아들 송곡 조복양(趙復陽,1609∼1661)의 시문집을 새긴 목판으로, 모두 633매이다. 조익은 조선시대 문신으로 음서로 정포만호가 되고 선조 35년(1602) 별시과에 내과로 급제한 이래 여러 벼슬을 거친 후 대사헌, 좌의정까지 올랐다. 그러나 이이, 성혼의 문묘종사가 받아 들여지지 않자 사직했다. 성리학의 대가로 예학에 밝았다. 조복양은 김상헌의 문인으로, 인조 11년(1633) 사마시에 합격하고 여러 직을 거쳐 부교리로 붕당의 폐를 한탄하여 사직하려 했으나 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