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충청남도 105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4호_청양 영모재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4호 _ 청양 영모재 (靑陽 永慕齋) 수 량 : 3동 지정일 : 1998.12.29 소재지 : 충남 청양군 청양읍 장승리 73-1번지 소유자(소유단체 ) : 함평이씨 종중 현종 9년(1668)에 함평 이씨 문중회의를 통해 지어진 청양 함평 이씨 재사이다. 건립된 지 330여 년이 지났으나 초기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특색있는 건물이다. 마룻대에 쓰여진 축문과 중수기록이 적힌 현판을 통해 고종 18년(1881)에 다시 수리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재실 4칸·협문 1칸·곳간 2칸·행랑채 9칸의 규모로, 곳간과 행랑채 사이에 대문이 있는 ㄱ자집의 형태이다 영모재 (永慕齋) 표지판 청양 영모재의 행랑채 영모재 주출입문 'ㄱ'자 형태의 행랑채 청양 영모재의 행랑채 청양 영모재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4호_예산 천방사 금동여래좌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4호_ 예산 천방사 금동여래좌상 (禮山 千方寺 金銅如來坐像) 수 량 : 1구 지정일 : 2010.07.30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대술면 상항방산로 327 시 대 : 고려후기 의 육계는 크고 낮으며, 정상계주와 중간계주가 표현되었다. 타원형의 얼굴은 눈, 코, 입 등이 두꺼운 도금으로 인해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으나 단정한 인상은 잘 남아 있다. 신체 상체는 어깨가 둥글고 허리는 길고 반듯하며, 하반신은 비록 잘못된 주조로 인해 밑부분이 들떴지만 결과부좌한 다리의 표현이 자연스럽고 안정감있다. 신체에는 두꺼운 대의를 걸치고 노출된 가슴에는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내의와 군의를 묶는 띠매듭이 표현되었으며, 왼쪽어깨에서 팔꿈치로 떨어지는 옷주름은 삼각형 골주름으로 처리하였다. 안정감 있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164호_예산 성당

충청남도 기념물 제164호 _ 예산성당 (禮山聖堂) 수 량 : 본관 1동, 사제관 1동 지정일 : 2004.04.10 소재지 : 충남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 664번지 시 대 : 1934년 예산성당은 전형적인 삼랑식(三廊式) 성당 건축이며 외관의 전체 구성은 단순하나, 처마돌림 띠, 창둘레 아치 장식 등의 비례가 뛰어난 근대 성당 건축물로서 1933년에 착공하여 1934년에 준공하였다. 한국인 신부에 의해 건립된 건축물로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보존가치가 매우 높으며, 일본의 건축문화를 수용·혼재하지 않고 서양의 건축문화를 직접 수용하여 토착화한 건축양식으로서 근대건축사 연구의 중요자료이다. 예산성당 (禮山聖堂) 표지판 . 예산성당 (禮山聖堂) 전경 교육관 측면 교육관 정면과 사무소 충청남도 기념물 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3호_포정사문루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3호 _ 포정사문루 (布政司門樓) 수 량 : 2동 지정일 : 1980.12.29 소재지 : 충남 공주시 관광단지길 30-8 (웅진동) 조선시대 충청도 관찰사가 공무를 집행하던 선화당 앞에 서있던 정문이다. 공주는 충청도 전체를 관장하던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감영에는 50여 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선화당과 포정사 및 삼문, 부속건물 1채 만이 남아있다. 원래는 공주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옆에 있었는데, 옛 공주군청 옆으로 옮겨지어 공주 제2감리교회 등으로 사용되어 왔다. 1993년 선화당 앞 지금의 위치에 복원하였다. 포정사는 앞면 5칸·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문루건물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우진각지붕집이다. 우진각 지붕은 지붕면이 4면으로 경사진 지붕을 말하며, 이 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_선화당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 _ 선화당 (宣化堂) 수 량 : 1동 지정일 : 1980.12.29 소재지 : 충남 공주시 관광단지길 30-8 (웅진동) 조선시대 충청도 관찰사가 공무를 집행하던 곳이다. 도내의 일반 행정·군사·조세 및 중요한 재판이 행해졌다. 원래 태조 4년(1395)에 충주에 설치되었으나 선조 35년(1602)에 공주로 옮겨와 충청도 전체를 관장하는 지방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여지도서』에는 선화당을 비롯하여 50여 채의 건물과 칸수를 기록하고 있으나, 지금은 선화당과 포정사 및 삼문, 부속건물 1채만 남아있다. 지금의 선화당 건물은 순조 33년(1833)에 지은 것으로, 원래는 공주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자리에 있었으나 1932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앞면 8칸·옆면 4칸의 규모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6호_포저유서 및 송곡문집판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6호 _ 포저유서 및 송곡문집판각 (浦渚遺書 및 松谷文集板刻) 수 량 : 633매 지정일 : 1987.12.30 소재지 : 충청남도 공주시, 마곡사 조선시대의 문신인 포저 조익(趙翼,1579∼1655)과 그의 셋째 아들 송곡 조복양(趙復陽,1609∼1661)의 시문집을 새긴 목판으로, 모두 633매이다. 조익은 조선시대 문신으로 음서로 정포만호가 되고 선조 35년(1602) 별시과에 내과로 급제한 이래 여러 벼슬을 거친 후 대사헌, 좌의정까지 올랐다. 그러나 이이, 성혼의 문묘종사가 받아 들여지지 않자 사직했다. 성리학의 대가로 예학에 밝았다. 조복양은 김상헌의 문인으로, 인조 11년(1633) 사마시에 합격하고 여러 직을 거쳐 부교리로 붕당의 폐를 한탄하여 사직하려 했으나 이루..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0호_예산 송림사부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0호 _ 예산 송림사부도 (禮山松林寺浮屠) 수량/면적 : 일원 지정일 : 2006.10.30 소재지 :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대률리 산 53-9 시 대 : 고려 초기의 부도로 추정 2006년 10월 3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0호로 지정 예산 송림사 부도는 통일신라 말기 팔각원당형 부도를 계승한 고려 초기의 부도로 추정된다. 예산 송림사 부도는 고려시대의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 부도(浮屠)로서, 통일신라 말기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의 것으로 전해져 도선의 부도라고도 불린다. 예산 송림사 부도는 높이가 2.4m이고,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그림이 양각되어 있으며 팔각원당형의 전형적인 부도 양식을 따르고 있다. 팔각의 지댓돌 ..

충청남도 기념물 제139호_태안 향교

충청남도 기념물 제139호 _ 태안향교 (泰安鄕校) 수량/면적 : 1동/3,047㎡ 지정일 : 1997.12.23 소재지 : 충청남도 태안군 백화1길 7 (태안읍) 시 대 : 1407년(태종 7)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태안향교는 조선 태종 7년(1407)에 처음 지었는데, 훗날 지금의 태안중학교 자리로 옮겨 지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불타 없어진 것을 숙종 46년(1720) 지금의 자리로 다시 옮겨 지은 것이다. 제사지내는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서무, 교육 공간인 명륜당,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 내삼문과 외삼문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대성전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8호_태안 목애당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8호 _ 태안 목애당 (泰安 牧愛堂) 수 량 : 1동 지정일 : 1992.08.17 소재지 : 충청남도 태안군 백화로 54 (태안읍) 시 대 : 조선시대 동헌은 조선시대의 지방 관아건물로 고을의 수령이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 공적일 일을 하던 곳이다. 백성을 잘 다스리고 사랑한다는 뜻의 ‘목애당’은 조선조 태안현의 동헌으로 광무 8년(1904)에 오병선 군수가 서문을 썼다. 잘 다듬은 긴 돌로 쌓은 2단의 받침대 위에 네모난 주춧돌을 놓고 네모난 기둥을 세운 앞면 6칸·옆면 3칸의 건물이다. 오랫동안 태안군청의 민원실로 사용되면서 뒤편으로 건물을 새로 지었고, 내부도 많이 변경되었던 것을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태안 목애당 표지판 태안 목애당 표지석 태안 목애당 전경 주변환경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3호_경이정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3호 _ 경이정 (憬夷亭) 수 량 : 1동 지정일 : 1986.11.19 소재지 : 충청남도 태안군 경이정2길 1 (태안읍) 시 대 : 조선시대 경이정은 태안읍성 밖에 지어진 관아 건물로 안흥항에 들어온 중국의 사신이 휴식을 취하거나 방어사가 군사 명령을 내리던 장소이다. ‘경이憬夷’라는 이름은 “오랑캐를 경계하라”라는 뜻으로 고려 말부터 왜구에 의한 피해가 극심했던 태안지역의 상황을 반영하여 지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왜구의 침략이 점차 줄어들고 경이정이 중국 사신의 휴식 장소로 이용되면서 “항해하는 사신의 평안을 빈다”라는 뜻으로 의미가 바뀌어 전해진다. 매년 정월 보름날에 주민들과 방어사가 함께 평안과 태평을 비는 제사를 지냈으나 1907년에 중단되고, 일제강점기인 1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