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튀르키예 23

튀르키예 이스탄불 블루모스크

블루모스크(술탄아흐멧 모스크)(Sultan Ahmed Mosque) 야야소피아 건너편에 위치한 술탄아흐메트 사원은 1609~1616년 사이에 술탄 아흐메트 1세에 의해서 건설되었다. 6개의 높은 첨탑과 여러 개의 모스크로 구성되어 있으며 튀르키예에서 최고의 규모를 자랑한다. 높은 첨탑과 엄청난 규모는 관광객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세계 유일의 6개의 첨탑은 이슬람교도가 지키는 1일 5회의 기도와 술탄의 권력을 상징한다. 블루모스크(술탄아흐멧 모스크)(Sultan Ahmed Mosque) 터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오스만 제국의 제14대 술탄 아흐메트 1세의 지시 아래 건축가 시잔의 제자인 메흐메트 아아(Mehmet Ağa)가 1609년 착공을 시작해 1616년 완공..

튀르키예 이스탄불 톱카프 궁전

톱카프 궁전 (Topkapi Palace) 오스만 술탕과 예니체리가 주둔한 이슬람 궁전 오스만 제국의 황제(술탄)들이 거주하였던 궁으로 19세기 중반에 돌마바흐체 궁전이 건설되기 약 400년 동안 많은 술탄들이 이 곳에 살았다. 전부 세 개의 문과 네 개의 중정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문은 황제의 문 또는 술탄의 문으로 불린다. 그 곳을 지나면 제 1중정이 나오는데 이곳은 오스만 군주를 지키는 예니체리가 있다고 하여 예니체리마당이라고 불린다. 두 번째의 문은 경의의 문이다. 이 곳을 지나면 제 중정이 나온다. 여기에는 대신들이 국사를 의논하던 디완건물과 황실 주방인 부엌궁전이 있다 2022.12.07, 튀르키예 이스탄불 톱카프 궁전 '청허(淸虛)'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튀르키예 이스탄불 돌마바흐체 궁전

돌마바흐체 궁전 프랑스 베르샤유 궁전을 모티브로 만든 유럽식 화려한 궁전 보스포루스 해협의 유럽 쪽 해안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 궁전이다. 19세기 중엽인 1843~1856년에 술탄 압뒬메지트 1세(Abdülmecit I)에 의해 지어졌다. 당시에는 원래 톱카프 궁전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너무 비좁고 시대에 뒤떨어진다며 새로 세운 것이다. 궁전에 들어가면 우아하고 장중한 모습에 놀라게 된다. 홀이 43개, 방이 285개, 발코니가 6개, 목욕탕이 6개나 되는 큰 규모를 자랑한다. 특히 접견실인 황제의 방은 56개의 기둥과 750개의 전등이 달린 4.5톤의 샹들리에로 장식되어 있어 대단히 화려하다. 계단의 손잡이 받침대가 베네치아제 크리스털로 된 계단의 방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인테리어와 장식은 모..

최고의 비잔틴 건축물, 이스탄불 성 소피아 성당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성소피아 성당(Saint sophia cathedral) 성 소피아 박물관 : 비잔틴 건축의 걸작으로 그리스 정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박물관 1453년 5월 29일부터 1931년까지는 모스크로 사용되었고, 1935년에 박물관으로 다시 개장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비잔티움 건축의 대표작으로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건축물로 여겨지고 있다. 비잔키움 제국의 건물이라고 하여, 기독교의 문화유산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스람교와도 관련이 크며, 500년 가까이 이슬람교 신자들의 예배당으로 상용되었다. 성당 옆에 있는 4개의 탑들은 미나레트라고 부른다. 성소피아 성당 전경 성소피아 성당은 현존하는 최고의 비잔틴 건축물이다. 그 위대한 예술적 가치는 모자이크, 대리석 기둥, 돔을 ..

튀르키예 이스탄불 피에르 로티 언덕

피에르롯띠(Piyer Loti kahvesi) 19세기말에 활약했던 프랑스 작가 피에르 로티는 세계각지를 여행했는데 그중에서도 이스탄불을 무척 좋아했다. 그는 '라비아 카둔 카흐베시'라고 불렸던 이 차이하네에서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면서 소설을 썼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이곳은 '피에르 로티의 차이하네'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가 당시에 집필한 소설은 처녀작인 "아지야데"다. 전망이 매우 좋기 때문에, 케이블카로 왕복 이동하여 시내의 아름다운 모습을 내려다 보기에 좋은 곳이다.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시내거리 풍광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서 바라본 공동묘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서 바라본 이스탄불 시내와 보스포러스 해협 피에르롯띠(Piyer Loti kahvesi)에서 바라본 보스포러스 해협 사랑하는 여인을 그..

튀르키예 에페소_하드리안 신전, 셀수스 도서관, 원형대극장, 크레테스 거리

셀수스 도서관 공용아고라와 주변 건물들 바리우스 목욕탕 신단 제단 주변 오데온 입구 오대온은 1세기경 바리우스 목욕탕 옆에 지어진 소극장으로서 원로원들의 회의장소나 콘서트 홀로 사용되었다. 도시는 원로원과 민회에 의해 통치되었는데 인원이 적었던 원로회는 일 년에 한 두번 회의가 있었던 반면 에페스 시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민회는 대극장에 모여 매일 도시의 문제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오데온 피온산 기슭의 오데온은 카베아라는 부채꼴 반원형 객석을 디아조마라는 분리 복도로 나누었고, 의원들이나 관람객들은 카베아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입장하였다, 오데온 무대가 위치한 건물은 이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쪽엔 폭이 좁은 무대가 있었으며 뒤쪽 중간에는 다섯 개의 문이 있다. 오데온 오데온 오데온 신전 제단 주변 신전 제..

튀르키예 안탈리아 파묵칼레의 히에라폴리스

파묵칼레의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페르가몬의 왕 에우메네스 2세가 기원전 190년경 건설하기 시작한 도시 유적지이다. 이 도시는 로마와 비잔틴 시대에 가장 번성했으며 주로 왕족과 귀족들의 휴양 도시로 번영했다. 12세기 셀주크 튀르크 시대에 도시 이름이 히에라폴리스에서 파묵칼레로 바뀌었다. 1354년 대지진으로 인해 도시가 사라졌지만, 1887년 독일의 고고학자들이 이곳을 발굴하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내부에는 신전이나 원형 극장, 목욕탕 등의 유적을 볼 수 있고, 이곳에서 발굴된 출토품들은 고고학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현재 수리와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천천히 다 둘러보기 위해선 하루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글 ENJOY 터키 파묵칼레의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로..

튀르키예 에페스 아야술룩 성과 사도요한 교회

에페스 아야술룩 성과 사도요한 교회 비잔틴 시대에 이 도시는 하기오스 테오고로스라불렀지만 셀주크인들은 이 곳을 아야술룩이라 하였고 1950년부터 셀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고대 아크로폴리스(도시국가 폴리스에 있는 높은 언덕)에 서있는 아야술룩 성채 동쪽 경사면에서는 선사시대의 흔적과 미케네시대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로마시대에는 이곳을 네크로폴리스(공동묘지)로 사용하였으나 비잔틴시대에는 성채를 세웠다. 성채안에는 예배당과 작은 모스크, 목욕탕, 많은 저수조등이 있었다. 13세기 투르크인들이 이곳에 와서 정착하면서 성벽을 수리하고 아크로폴리스에 새로운 도시를 만들었는데 성벽은 많은 탑으로 둘러싸여 요새화되었고 동쪽과 서쪽에 두 개의 문이 있었다. 서쪽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 사도요한교회는 비잔틴시대의 걸..

튀르키예 그리스 쉬린제 마을 및 와인시음

쉬린제 마을(Sirince) 셀축으로부터 9km 떨어진 산 위에 펼쳐져 있는 쉬린제 마을은 19세기의 전형적인 오스만 스타일의 시골마을 모습이다. 쉬린제 마을의 시작은 에페스에 기독교 인구가 가장 많던 14세기부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디도 소티리우(그리스 소설가)의 책에는 '내가 인사하는 아나톨리아"라고 쉬린제 마을을 표현하였다. 이곳에는 두 개의 교회가 있다. 하나는 마을 입구에 있는 나무로 만든 목조 교회이며 봉헌에 관한 비문은 남아 있지 않다. 서쪽의 나르텍스(배랑 혹은 현관)부분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측면의 벽에 있는 창문들 사이에는 12사도의 프레스코화가 있다. 두 번째 교회는 마을의 동쪽에 위치하였는 데 이곳은 세례자 요한에게 봉헌된 교회이다. 17세기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이 교회는 ..

튀르키예 이스탄불 예레바탄 사라이(지하저수조)

예레바탄 사라이(Yrebatan Sarayı) 이스탄불 최대 규모의 지하 저수지 공식명칭은 '예레바탄 사라이'로 '땅이 가라않다'라는 뜻이다. 이 지하저수조는 원래 콘스탄티우스 대제가 만들어 놓은 것을 유스타니우스 1세 때 확장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곳은 로만틴 제국시대에 물이 부족한 이스탄불 지역에 중요한 저수지로서의 역할을 했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도 톱카프 궁전의 저수지로서의 역할을 했지만 비잔틴 시대 만큼은 아니었다. 길이가 143m에 너비가64m에 이르며 4m 간격으로 높이 8m의 기둥들이 도리스 양식과 코린트 양식이 혼합되어 사용되었다. 가장 넓은 장소에는 9m 높이의 총 336개의 기둥이 이곳을 떠받치고 있는데, 저수지의 끝 쪽에는 1984년 보수공사때 발견된 인상적인 메두사 조각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