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튀르키예

튀르키예 에페소_하드리안 신전, 셀수스 도서관, 원형대극장, 크레테스 거리

기리여원 2022. 12. 27. 13:22

셀수스 도서관

 

 

공용아고라와 주변 건물들

 

 

바리우스 목욕탕

 

 

 

 

신단 제단 주변

 

 

오데온 입구

 

오대온은 1세기경 바리우스 목욕탕 옆에 지어진 소극장으로서 원로원들의 회의장소나 콘서트 홀로 사용되었다. 도시는 원로원과 민회에 의해 통치되었는데 인원이 적었던 원로회는 일 년에 한 두번 회의가 있었던 반면 에페스 시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민회는 대극장에 모여 매일 도시의 문제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오데온 

 

피온산 기슭의 오데온은 카베아라는 부채꼴 반원형 객석을 디아조마라는 분리 복도로 나누었고, 의원들이나 관람객들은 카베아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입장하였다,

 

오데온

 

무대가 위치한 건물은 이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쪽엔 폭이 좁은 무대가 있었으며 뒤쪽 중간에는 다섯 개의 문이 있다.

 

오데온

 

 

오데온

 

 

오데온

 

 

신전 제단 주변

 

 

신전 제단 주변

 

 

프레타네이온

 

 

프레타네이온

 

 

도미티안 신전

 

크로이소스산 끝자락 광장의 서쪽부분에는 높이 7미터에 달하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조각상을 받치고 있었던 대리석 제단을 불 수가 있다. 이 같은 조각상은 도시 곳곳에 세워져 있었는 데, 머리와 왼쪽팔의 일부분은 현재 에페스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그 테라스는 기둥과 조각상으로 장식된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도미티안 신전 광장을 화려하게 만들었다.

 

로마 시대에 황제를 기념하기 위한 신전이 있다는 것은 그 도시의 큰 특권이었다. 에페스는 도미티아누스 황제(81~96 A.D)에게 이 신전을 바치면서 그 영광을 가져왔다. 그러나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로마에서 자객에 의해 살해당하고 기록말살형을 받은 후 황제의 권한을 잃게 되어 신전은 그의 아버지 베시파니우스 황제에게 다시 바쳐졌다.

 

도미티안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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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비우스 기념비

 

도미티안 광장 모퉁이에 네 개의 단으로 되어있는 정육면체 기념비를 볼 수가 있는데 이것이 멤비우스 기념비이다. 사면은 아치로 연결되어 있고 벽면을 오목하게 벽감을 만들어 여신상들로 장식하였지만 석비들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고 윗부분만 복원 되어 있는 상태이다. 실제로 토가(로마의 전통 복장)을 착용한 군인들은 멤비우스와 그의 아버지 카이우스 그리고 할아버지 술라를 표현해 놓았는데 동쪽 정면은 4세기경 분수로 바꾸어서 사용하였다.

 

멤비우스 기념비

 

 

나이키 부조

 

 

트라이안 분수

 

크레테스거리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는 트레이안 분수는 예전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도록 작게나마 재건축되어 있다. 장식틀에 새겨진 비문에 따르면 이 분수는 트리아누스 황제(97~117 A.D.)에게 바치는 건축물로서 두 연못 사이에 세면(U자 형태)은 이층으로 구성되어 기념비적인 기둥들이 있었으며 기둥 사이에는 호색가 디오니소스, 아프로디테와 왕실 일원들의 석상들이 위치하고 있다. 이 조각상들은 현재 에페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트라이안 분수

 

 

크레테스 거리

 

마그네시안 입구에서 시작하는 신성한 도로는 피온산을 밑쪽으로 도시를 가로질러 다시 마그네시안 입구로 연결되었다.

도미티안 광장과 셀수스 도서관 사이의 길을 크레테스 거리라 부른다

 

하드리안 신전


도미티안 신전이후 두 번째로 로마 황제를 위해 만들어진 신전이다.
2세기 경에 지어진 이 건물은 하드리안 황제와 에페소의 시민, 아르테미스 여신을 위해 지어졌다. 건물은 다른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부분 손실되었지만 남아있는 부분만이라도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첫번째 문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운명의 여신 니케의 조각이 있고 두번쨰 문에는 메두사가 조각되어 있다. 메두사의 얼굴은 부적과도 같이 여겨져 그리스나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것들에는 조각으로 남겨져 있기도 한다

 

하드리안 신전

 

 

하드리안 신전

 

 

하드리안 문

 

 

셀수스 도서관

 

에페소 유적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135년 줄리우스 이퀼라가 그의 아버지인 셀수스를 위해 지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고고학자들에 의해 중요한 유물들이 전부 오스트리아로 옮겨져 현재는 복제품만 존재하고 있다. 도서관은 많은 부분이 무너졌지만 외벽은 아직도 굳건히 서 있으며 벽에는 화려한 문양과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발견 당시 12,000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던 대형 도서관이었으며, 만들어 질 당시에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페르가몬 도서관과 같이 세계 3대 규모의 도서관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셀수스 도서관

 

 

셀수스 도서관

 

 

셀수스 도서관

 

 

마제우스와 미트라다테스 문

 

셀수스 도서관 옆 상업아고라 남쪽에 기념비적인 문이 있다. 전승을 기념하는 여느 문과 같이 3개의 통로로 이루어진 이 문의 아치는 흰색과 검은 대리석판으로 덮여있었다. 가운데 문은 양쪽의 문보다 약간 뒤에 있어 단조로움의 깊이를 주었다. 

 

마제우스와 미트라다테스 문

 

페디멘트의 가장자리에는 왕관을 상징하는 모양이 장식되어 있다. 페디먼트의 청동 벽에 새겨진 비문에는 라틴어로 "마제우스와 미트라다테스의 사람들이 시저의 아들이자 대제사장, 12번의 집정관과 20번의 호민관을 지낸 아우구투스 황제와 그의 아내 리비아, 또한 루시우스의 아버지이자 3번의 집정관과 6번의 호민관을 지낸 마르쿠스 아그리파와 시저의 딸 율리아에게 이 문을 바친다"라고 새겨져 있다.

마제우스와 미트라다테스는 자신들을 노예에서 해방시켜준 아우구트스 황제와 황실에 대한 충성을 보여주기 위하여 이 문을 세웠다. 아고라로 드나들던 다른  두 개의 문은 아직 공사 중에 있다.

 

상업아고라 전경

 

 

상업아고라

 

 

대리석 도로의 광고

 

 

원형대극장

 

돌로 만들어진 야외극장으로 로마시대에 현재의 모습으로 증축되어 연극과 같은 공연 혹은 시민회의 등이 열린 곳이다. 약 25,000명정도를 수용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야외 극장처럼 산기슭의 경사와 높이를 이용해 반원형으로 지어졌다. 만들어진 당시 초기에는 공연을 위한 곳으로만 이용되었지만 이후 검투사 혹은 맹수와의 결투가 벌어지기도 하였다고 한다. 또한 기독교적으로는 사도 바울이 선교 중에 이곳에서 수난을 받았다고 한다.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절부터 로마식 극장으로 만들어졌다

 

원형대극장

 

 

원형대극장 무대

 

 

원형대극장

 

 

답사를 마치고 나갑니다.

 

2022.12.05.튀르키예 에페소_하드리안  신전, 셀수스 도서관, 원형대극장, 크레테스 거리

일부 롯데관광, '청허(淸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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