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전라남도 92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_ 보리암 목조아미타삼존상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_ 조선 1630년, 나무, 보리암(백양사 성보박물관) 담양 보리암( 菩提庵 )의 은 아미타부처님을 본존으로 좌우에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로 구성되어 있다. 「조성발원문 (造成發願文) 」을 통해서 소요 태능(逍遙太能, 1562~1649) 스님이 증명(證明) 법사로, 나균(懶筠) 스님이 주조각승으로 뇌형(雷迥), 법란(法蘭) 스님과 함께 1630년 2월에 조성을 시작하여 4월에 봉안하였다는 정확한 조성 연대를 알 수 있다. 조성 연대 및 증명, 조각승에 대해서 알 수 있기 때문에 17세기 불상 연구에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아미타부처님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 2023.10.07, 불교중앙박물관_백암산 백양사 글 전시자료 ▼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08호_영광 불갑사 지장시왕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08호 _ 영광 불갑사 지장시왕도 (靈光 佛甲寺 地藏十王圖) 수 량 : 1점 지정일 : 2011.08.26 소재지 : 불갑면 모악리 8번지 불갑사 영광 불갑사 지장시왕도는 지장을 본존으로 하여 도명존자, 무독귀왕, 시왕, 범천, 제석천, 사자, 판관, 사천왕 등을 배열한 형식을 지니고 있다. 화기의 기록으로 1777년 영산회상도와 함께 제작되었다. 밝고 선명한 색조, 가늘고 섬세한 필법, 안정적이면서 원근감이 느껴지는 화면 구성, 다양한 모습의 시왕 및 권속들의 표현 등 우수한 회화적 기법을 구사하고 있다. 또한 당시 조계산 선암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불화승 비현, 복찬, 쾌윤 등에 의하여 제작되었다. 하단의 부분적 손상이 있으나 전반적인 바탕화면과 색상의 보존상태가 좋고, 불화의..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07호_영광 불갑사 팔상전 영산회상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07호 _ 영광 불갑사 팔상전 영산회상도 (靈光 佛甲寺 八相殿 靈山會上圖) 수 량 : 1점 지정일 : 2011.08.26 소재지 : 불갑면 모악리 8번지 불갑사 영광 불갑사 팔상전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행한 설법광경을 도설한 것이다. 화기의 기록으로 제작자와 제작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작품으로 1777년에 비현 등 15인의 불화승에 의해 제작되었다. 영산회상도는 안정된 구도와 화면의 변화, 양록· 선홍· 양청과 같은 선명한 색조의 사용, 등장인물들의 상호의 표정묘사, 가늘고 섬세한 세필의 선묘 등 18세기 후반의 회화양식을 구사하고 있으며 회화적으로도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작품의 제작에 참여한 화승들은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까지 활동한 비현,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58호_영광 연흥사 목조삼세여래좌상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58호 _ 영광 연흥사 목조삼세여래좌상 (靈光 烟興寺 木造三世如來坐像) 수 량 : 3구(軀) 지정일 : 2002.07.13 소재지 : 전남 영광군 군남면 육창로 2 (용암리) 시 대 : 조선시대(17세기 중반) 영광군 연흥사에 모셔져 있는 3구의 목조여래좌상이다. 연흥사는 각진국사(覺眞國師)가 처음 지었으며, 정유재란(1597) 때 화재로 소실되었고, 조선 현종 8년(1667)에 다시 지은 뒤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앙의 석가여래좌상은 매우 안정되고 삼매경에 빠진 듯한 고요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육계가 자그마하게 솟아있고, 머리 중간에는 반월형의 계주가 있다. 사각형의 얼굴에 눈,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90호_장성 백양사 각진국사 복구 진영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90호_ 장성 백양사 각진국사 복구 진영 (長城 白羊寺 覺眞國師 復丘 眞影) 수 량 : 1폭 지정일 : 2008.04.11 소재지 :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120 백양사 성보박물관 시 대 : 1825년 장성 백양사를 세 번째로 중창한 각진(覺眞)국사 복구(復丘)의 진영으로 조선시대 후기, 1825년에 제작되었다. 각엄(覺儼, 1270-1355)은 휘(諱, 法名)는 복구(復丘), 자호(字號)는 무언수(無言叟), 시호는 각진(覺眞)국사이다. 월남사와 송광사에도 40여년간 주석하며 수선사 제13세 조사로서 대중을 지도하였고 정토사를 중창하였다. 이 진영은 화기에 따르면 1825년(道光 5년)에 선운사 내원암에서 조성하여 백양산 정토사(현재 백양사)로 이안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전라남도 기념물 제149호_구례 봉서리 지석묘군

전라남도 기념물 제149호 _ 구례봉서리지석묘군 (求禮鳳西里支石墓群) 수 량 : 12기 지정일 : 1994.01.31 소재지 : 전남 구례군 구례읍 봉서리 1144-1번지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봉서리 고인돌은 섬진강 강변에 자리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원삼국시대의 유물들이 흩어져 있다. 가장 큰 고인돌을 중심으로 12기의 고인돌이 타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가장 큰 고인돌은 길이 3.1m, 너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2호_해남 대흥사 천불상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2호 _ 대흥사 천불상 (大興寺 千佛像) 수 량 : 1000구 지정일 : 1974.09.24 소재지 : 전남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구림리) 전라남도 해남에 있는 대흥사 천불전(千佛展)은 순조 11년(1811)에 화재로 없어진 것을 1813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천불전에는 중앙에 나무로 만든 삼존불상과 뒤쪽에 옥돌로 만든 천불이 모셔져 있다. 천불이란 과거에도 천불·현재에도 천불·미래에도 천불이 있다는 것으로, 언제 어디서나 부처님이 존재하며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고 부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상을 나타낸 것이다. 대흥사 천불상 대흥사 천불상 대흥사 천불상 (大興寺 千佛像) 표지판 _ 현정(賢正,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활동)등 44명, 조선 1817년, 돌..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4호_창평향교

담양 창평향교에 있는 지정문화재 1. 보물 제2099호_창평향교 대성전 2. 보물 제2100호_창평향교 명륜당 3.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4호_창평향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4호 _ 창평향교 (昌平鄕校)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창평?교는 정종 1년(1399)에 지어졌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성종 10년(1479)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으며,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진 것을 그 후에 다시 지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내삼문 등이 있다. 건물은 경사지에 위치하여 내삼문을 경계로 공부하는 공간인 명륜당과 제사공간인 대성전을 두고 있어 전학후묘의 배치형식을 따르고 있다. 내삼문 뒤쪽에..

전라남도 기념물 제45호_담양 후산리 은행나무

전라남도 기념물 제45호 _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 (潭陽 后山里 銀杏나무) 수 량 : 1주 지정일 : 1980.06.02 소재지 : 전남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485-1번지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의 나이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높이는 30m에 이른다. 일명 ‘인조대왕의 계마행수’라고 부른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조선시대 인조(재위 1623∼1649)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호남지방을 돌아보던 중 이곳 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4호_담양 몽한각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4호 _ 담양 몽한각 (潭陽 夢漢閣) 수 량 : 1동 지정일 : 1974.12.26 소재지 : 전라남도 담양군 대조동1길 22-14 (대덕면) 시 대 : 순조3년(1803) 조선 태종(재위 1400∼1418)의 5대 후손인 이서(1482∼?)를 추모하기 위하여 순조 3년(1803) 담양부사 이동야와 창평현령 이훈휘가 지은 것이다. 이서는 모반을 꾀한다는 이유로 중종 2년(1507)에 창평으로 유배되었다가 15년 만에 풀려난 뒤 한양으로 돌아가지 않고 담양 골짜기에서 서적을 편찬하며 자손과 제자를 가르치는데 전념하였다. 몽한각은 제사를 지내기 위한 건물로,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이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담양 몽한각 표지판 담양 몽한각 주출입문 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