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전라남도 92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60호_나주 운흥사지 금동여래입상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60호 _ 나주 운흥사지 금동여래입상 (羅州 雲興寺址 金銅如來立像) 수 량 : 1구 지정일 : 2003.05.27 소재지 : 전남 나주시 다도면 암정리 965번지 시 대 : 통일신라시대(9세기) 나주 운흥사지 금동여래입상은 운흥사지 발굴조사(발굴조사기관:전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1년 9월 16일 출토된 불상이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 광배와 몸체와 대좌가 함께 주조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육계는 비교적 두텁고 높게 솟아 있으며 머리는 언뜻 보면 소발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오랜 세월동안 마모상태가 심한 편이긴 하나 나발의 흔적이 역력하다. 더구나 이 나발은 육계부분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상호는 호형의 예리한 눈썹과 일자형의 눈모습인데 눈두덩이 두툼하게 돋아난 행인형 모..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1호_신안 읍리 삼층석탑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1호 _ 신안읍리삼층석탑 (新安邑里三層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78.09.22 소재지 : 전라남도 신안군 팔금면 읍리 350-1 들판 한 가운데 서 있는 탑으로, 탑이 속했던 절의 구체적인 역사는 전하고 있지 않다. 탑은 1층 기단(基壇) 위에 탑신부(塔身部)를 세우고 머리장식을 갖춘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의 모서리마다 기둥조각을 가지런히 새겨 넣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 한돌로 이루어졌으며 위로 오를수록 크기가 알맞게 줄고 있어 안정감을 준다. 두꺼워 보이는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약간 치켜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보이는 파손된 석재가 놓여있다. 기단이 1층인 점과 가운데기둥조각이 생략된 점, 두꺼운 지붕돌..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1호_정수사 대웅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1호 _ 정수사 대웅전 (淨水寺大雄殿) 수 량 : 1동 지정일 : 1985.02.25 소재지 : 전남 강진군 대구면 정수사길 403 (용운리) 정수사는 천개산에 있는 절로 기록에 의하며 통일신라말 애장왕 6년(805)에 도선국사가 세웠다고 한다. 세울 당시에는 계곡을 중심으로 양쪽에 묘덕사와 쌍계사 두 절이 있었는데 후에 쌍계사는 수정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한동안 폐허가 되었던 것을 중종 19년(1524)다시 지으면서 정수사라 이름을 바꾸었고, 이후 여러 차례 다시 짓거나 수리를 하였다. 정수사 대웅전은 절의 중심에 있는 법당으로 석가모니를 모시고 있으며 4번에 걸쳐 수리한 기록이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겹처마로 가장 단순한 맞배집이다. 자연석 기단 위에 기둥을 세웠으며,..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16호_강진 고성사 목조 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16호 _ 강진 고성사 목조 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康津 高聲寺 木造 三佛坐像 및 腹藏遺物) 수 량 : 불상 3구, 복장유물 24점 지정일 : 2013.12.19 소재지 : 전라남도 강진군 고성길 260 (강진읍, 고성사) 강진 고성사 목조 삼불좌상 및 복장유물은 조선시대에 제작해 1751년 개금(改金)한 작품으로 3구가 원형대로 전하고, 조각 양식이 뛰어나 불교미술 연구에 중요하다. 개금당시 발원문과 전적도 중요한 복장 유물이다. 강진 고성사 목조 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강진 고성사 글 문화재청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8호_목포 달성사 목조여래삼존불상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8호 _ 목포 달성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木浦 達聖寺 木造阿미陀三존佛坐像) 수 량 : 3구 지정일 : 2000.12.13 소재지 : 전남 목포시 죽교동 317번지 달성사 시 대 : 조선 숙종4년(1678) 달성사는 목포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유달산의 동남쪽 중턱에 있다. 목포시에서 발행한 『내고장전통가꾸기』(1981년간) 및 목포시사(1987년간, 인문편) 등에 의하면, 1913년 음 4월8일, 노대연(盧大蓮)선사가 창건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현재 달성사의 건물로는 아미타삼존불을 봉안한 법당 1동과 지장보살 및 시왕상을 모신 명부전 1동, 요사채 2동, 산신각 및 종각 각1동과 3층석탑(3년전 조성) 1기가 있다. 적색의 필사본인 조성발원문(14㎝×25㎝)에 따르면 16..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95호_순천 선암사 불조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95호 _ 순천 선암사 불조전 (順天 仙巖寺 佛祖殿) 수 량 : 1동 지정일 : 2008.09.19 소재지 : 순천시승주읍 죽학리 802번지 순천 선암사 불조전은 정면 3칸의 익공계 팔작집으로 사역내의 여러 전각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건립된 조선후기 건물로 건립 연대에 관한 자료가 확인되고 가구는 보조가구재를 채용하여 구조적 안정성을 증대시켰고, 공포는 출목익공의 중요한 사례로써 사내 다른 전각의 것과 함께 건축학적으로 충분한 연구가치가 있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순천 선암사 불조전 원통전은 1660년(현종 1)에 경준, 경잠, 문정대사가 처음 지었고, 1698년(숙종 24) 호암대사가 고쳐 지었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3칸 · 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팔(八..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60호_선암사 팔상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60호 _ 선암사팔상전 (仙岩寺八相殿) 수 량 : 1동 지정일 : 1976.09.30 소재지 :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죽학리) 조계산에 위치한 선암사는 통일신라 헌강왕 5년(875)에 도선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절의 서쪽에 높이가 10여 장(丈)이나 되고 면이 평평한 돌이 있는데 신선들이 바둑을 두던 곳이라고 하며, 절의 이름도 이곳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정유재란(1597) 때 대부분 불타 없어진 것을 숙종 24년(1698)에 약휴대사가 다시 지은 후, 순조 24년(1824) 해봉대사·눌암대사 등이 다시 지었는데 팔상전도 이때 지은 것이다. 선암사 팔상전은 석가여래의 생애를 묘사한 그림인 팔상도를 모시고 있는 법당이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며,지붕 옆..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09호_나주 심향사 석조여래좌상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09호 _ 나주 심향사 석조여래좌상 (羅州 尋香寺 石造如來坐像) 수 량 : 1구 지정일 : 2011.12.20 소재지 : 전남 나주시 건재로 41-1, 심향사 (대호동) 나주 심향사 석조여래좌상은 길쭉한 신체와 넓은 어깨, 네모난 넓은 무릎에서 안정감을 보여주며 편단우견의 대의를 입은 위에 오른쪽 어깨에 별도의 편삼을 걸친 착의법, 항마촉지인의 수인 등의 특징은 통일신라 후기에서부터 고려 전기에 유행한 형식이다. 그러나 장방형의 얼굴 모습과 편평한 가슴으로 볼 때 지역성에 강한 고려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조선시대에 후기에 용화전의 주불로서 미륵불로 신앙된 점 또한 주목되며 월출산 마애불과 더불어 후대에 변형된 미륵신앙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전남지방의 고려전기 불..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10호_나주 다보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시왕상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10호 _ 나주 다보사 명부전 목조 지장보살삼존상·시왕상 일괄 (羅州 多寶寺 冥府殿 木造 地藏菩薩三尊像·十王像 一括) 수 량 : 일괄 22구 지정일 : 2011.12.20 소재지 : 전라남도 나주시 금성산길 83 (경현동, 다보사) 나주 다보사 명부전 목조 지장보살삼존상·시왕상은 복장물에서 조성 발원문과 개금 중수발원문이 확인되었다. 조성은 1659년 4월, 개금 중수는 1903년 11월에 이루어졌다. 지장보살좌상 조성 발원문에 등장하는 조각승인 화원은 지견(智堅), 신관(信寛), 삼우(三愚), 성보性寶), 성안(性安, 性眼), 행근(行斤, 幸根), 성화(性花), 심일(心一), 삼인(三認, 三忍) 등 모두 9인으로 17세기 중후반에 전라 경상 충청도의 사찰에 조각상으로 활약한 조각..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8호_나주 송제리 오층석탑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8호 _ 나주 송제리 오층석탑 (羅州 松堤里 五層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80.06.02 소재지 : 전남 나주시 세지면 화탑길 32 (송제리) 2층 기단(基壇)을 쌓고 그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석탑이다. 기단은 아무런 조각 장식이 없는 단조로운 모습이다. 홀쭉하고 높아 안정감이 없어 보이는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돌로 쌓아 올렸다. 1층 몸돌은 지나치게 크고, 2층은 급격히 낮아졌다. 지붕돌은 밑면에 1층에서 4층까지는 3단, 5층은 2단의 받침을 두었고, 윗면에는 급한 경사가 흐르며, 네 귀퉁이는 높이 치켜 올라갔다. 간결하면서 단정한 이 탑은 지붕돌받침이 4∼2단으로 일정하지 않고, 처마의 네 귀퉁이가 많이 올라간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