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문화재/문화재자료 528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9호 _ 장도포대 터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9호 _ 장도포대 터 (獐島砲臺 터) 수량/면적 : 포2, 포대1/2,275㎡지정일 : 2001.04.02소재지 : 인천 남동구 논현동 111-13번지시 대 : 조선말기 장도포대지는 조선 고종 16년(1879) 일본측이 서해안을 측량하면서 개항지를 탐색하는 것을 보고 인천을 개항 후보지로 요구할 것을 대비하여 어영대장 신정희와 강화유수 이경하가 인천과 부평 연안에 화도진을 설치하고 포대를 만들 때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서 1999년 "화도진도" 원본 확인을 통해 이곳에 3혈(穴)의 포대를 설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현재는 포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문헌에는 포좌 3기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장도포대 터 (獐島砲臺 터) 표지판 장도포대 터 (獐島砲臺 터)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2호_김거익의 묘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2호 _ 김거익의 묘 (金居翼의 墓) 수 량 : 1기지정일 : 1984.05.17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177 (중정리) 고려 후기 문신이었던 김거익 선생의 묘이다.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강직한 성품을 지녀 주위의 칭송이 자자했다. 태조와도 절친한 사이였으나 고려 왕조가 망하자 충남 부여에 내려와 숨어 살았다. 조선 건국 후 태조가 우의정으로 불렀지만 끝내 나아가지 않고 절의를 지키며 살다 세상을 떠났다.봉분 앞 오른쪽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당대의 학자인 이색과도 가까운 사이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묘 아래에는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우던 신도비(神道碑)가 있는데, 1922년 김복한이 글을 짓고 윤용구가 글씨를 쓴 것이다.김거..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1호_황일호의 묘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1호 _ 황일호의묘 (黃一晧의墓) 수 량 : 1기지정일 : 1984.05.17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 산3번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충절인 지소(芝所) 황일호(1588∼1641) 선생의 묘소이다.조수륜의 가르침을 받았고, 인조 13년(1635)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안전하게 모신 공으로 진주 목사에 올랐다. 인조 16년(1638) 의주 부윤으로 있을 때 청나라를 배척하고 명나라를 돕자는 모의를 하다가 청나라 병사에게 피살되었다.묘역 아래에는 정조 21년(1797)에 세운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우던 비)가 있는데, 송시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64호_거제현 관아 송덕비군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64호 _ 거제현 관아 송덕비군 (巨濟縣 官衙 頌德碑群) 수 량 : 철비 6기, 석비 8기지정일 : 2019.12.26소재지 : 경상남도 거제시 읍내로2길 22 (거제면, 거제기성관)시 대 : 조선시대 거제현 관아 송덕비군은 철비가 6기, 석비가 8기 총14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립연대는 17세기에서 18세기가 대부분이다. 거제지역에 산재한 비를 한 곳에 모아 비군을 만들어 관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며, 특히 17~18세기에 많이 세워졌다고 하나 석비에 비해 소수가 전해지고 있는 철비가 6기나 존재하는 것도 그 의미가 큼.거제현 관아 송덕비군 표지판 거제현 관아 송덕비군 (巨濟縣 官衙 頌德碑群) 현령최공운서청정애민비(縣令崔公雲瑞淸政愛民碑) _ 높이 86, 너비 47.5,..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6호_도강영당

충청남도 문화제자료 제116호 _ 도강영당 (道江影堂) 수 량 : 1동지정일 : 1984.05.17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40-1번지 홍가신·허목·채제공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사를 모시는 곳이다.홍가신(1541∼1615)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명종 22년(1567) 문과에 급제하여 강화부사, 형조참판, 강화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선조 37년(1604)에는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청난공신 1등에 책록, 이듬해 영원군에 봉해졌다. 후에 벼슬이 형조판서에 이르렀다.허목(1595∼1682)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과거를 거치지 않고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까지 벼슬이 이르렀다. 그림, 글씨, 문장에도 능하였으며 특히 전서에 뛰어나 동방 제1인자라는 찬사를 받았다.채제공(1720∼1799)..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4호_의열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4호 _ 의열사 (義烈祠) 수   량 : 1동지정일 : 1984.05.17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의열로29번길 11-33 (부여읍, 의열사) 이 고장 충신인 백제의 성충·흥수·계백과 고려 후기의 충신 이존오를 위해 부여현감 홍가신이 세운 사당이다.후에 조선 선조(재위 1567∼1608) 때 선비 정택뢰, 인조 (재위 1623∼1649)때 문신 황일호(1588∼1641)를 추가로 모셔 현재는 6명을 모시고 있는데, 해마다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조선 선조 8년(1575)에 처음 지어 인조 19년(1641)에 새로 고쳐 지었으며, 고종 3년(1866)에 헐렸다가 그 뒤 다시 지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원래 용정리의 망월산에 있던 것을 1971년 현 남령공원으로 옮긴 것이다..

백마강변의 자온대 위에 세워진 정자, 수북정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0호 _ 수북정 (水北亭) 수   량 : 1동지정일 : 1984.05.17소재지 : 충남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147-2번지조선 광해군(1608∼1623) 때 양주목사를 지낸 김흥국(1557∼1623)이 이곳에 와 살면서 지은 정자로 이름은 김흥국의 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장식한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신흠이 쓴 팔경시판(八景詩板)이 걸려 있다.부여 백마강변의 자온대 위쪽에 서 있으며, 부여 팔경의 하나로 경치가 매우 뛰어나다수북정 (水北亭) 표지판 수북정 (水北亭) 조선 광해군(1608∼1623) 때 양주목사를 지낸 김흥국..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3호_팔각정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3호 _ 팔각정 (八角井) 수   량 : 1기지정일 : 1984.05.17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47 (쌍북리) 삼국시대의 백제 왕궁에서 이용하였다고 전해지는 우물이다.우물이 있는 곳은 조선시대에 부여 현의 관청 건물이 있던 자리로, 발굴 결과 백제의 도로나 연못터 유적을 확인할 수 있어, 백제 때에 중요하게 쓰였던 장소일 것으로 추정된다.우물의 바닥에는 길게 다듬어진 돌로 8각형의 우물을 짜고, 그 위에 깬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근처에서 건물에 쓰였던 주춧돌과, 집터를 만드는데 쓰였을 커다란 돌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우물의 주변에서 나오는 유물들이 백제의 문화를 반영하고 있어, 당시 왕궁터를 추정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팔각정 (八角井) 표지판 팔각정..

활짝 꽃이 핀 부여 동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22호 _ 부여 동매 (扶餘 冬梅) 수량/면적 : 1주/400㎡지정일 : 2024.10.21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진변로 140-5 (규암면)시 대 : 조선시대 매화나무는 추위가 덜 가신 초봄에 꽃이 피기 시작하므로 봄소식을 알려주는 나무로 아낌을 받아왔다. 특히,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운다 하여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삼아 많이 재배하였고, 시나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하였다. 부여 동매는 진변리 백강마을에 있는 부산서원 입구 왼쪽에 있으며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교류관계를 알려주는 나무로 백강 이경여(李敬與, 1585~1657) 선생이 중국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매화나무 3그루을 가져와 심었다고 전해지나 2그루는 죽고 나머지 한 그루마저 일제 강점기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7호 _ 서산 문수사 소조나한상 일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7호 _  서산 문수사 소조나한상 일괄 (瑞山 文殊寺 塑造 羅漢像 一括) 수    량 : 20점지정일 : 2011.07.20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시 문수골길 201 (운산면, 문수사) 문수사 극락보전의 오른쪽(향)에는 높은 단을 마련하여 여래좌상 1구, 보살상 1구, 보살상 2구, 16나한상, 제석천 2구를 안치하하고 있음. 그러나 여래상과 마치 본존불 처럼 중앙에 놓여 있는 보살좌상은 다른 상들과 양식 상 구별되는 점에서 함께 제작된 작품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원래의 본존불인 석가여래상은 현재 없어졌음두 구의 보살상은 두 손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 보관을 쓰고 변형편단우견에 편삼을 입은 착의법으로 거의 비슷함. 두 손의 위치에서 원래 좌 우협시상으로 판단되며 16나한..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