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문화재자료 502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30호_당진 한갑동 가옥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30호 _ 당진 한갑동가옥 (唐津 韓甲東家屋) 수 량 : 2동 지정일 : 1993.12.31 소재지 : 충남 당진시 우강면 어리생이길 41-12 (원치리) 차령산맥과 덕숭산이 바라보이고 넓은 평야가 눈아래 있으며 야트막한 산으로 감싸있는 마을에 있는 이 건물은 1919년에 지은 것으로 ‘위례장’이라고도 부른다. 건물 구조는 ㄱ자형 안채와 ㅡ자형 사랑채로 전체 구성은 ㄷ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면천 관아 건물을 부재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ㄱ자형 안채는 중앙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안방과 윗방 왼쪽에는 건넌방을 두었으며 안방 전면에는 2칸 부엌이 있다. 一자형 사랑채의 평면은 오른쪽부터 툇마루·사랑대청·사랑방·중방·광이 있다. 비교적 부재가 건실하고 안채와 사랑채 평면 계획이 조선시대 주택 ..

보리섬의 최고운 유적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45호 _ 최고운 유적 (崔孤雲 遺蹟) 수량/면적 : 일원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월전리 813-8 ◦ 통일신라 말기 뛰어나 학자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이 선유(仙遊)한 곳으로 전해지는 유적으로 최치원은 신라 6두품 출신의 유학자로 당에 유학한 후 돌아와 신분 제약으로 자신의 뜻을 실현하기 어려워지자 관직에 미련을 버리고 전국을 유람하였는데, 경치가 아름다운 이곳에서도 머물면서 병풍처럼 둘러진 암벽에 한시(漢詩)를 새겼다고 전하나 지금은 마모되어 알아 볼 수 없음. ◦ 1955년 남포방조제 건설 전에는 맥도(麥島, 보리섬)로 불린 섬이었으나 지금은 유지가 되었음. 최고운 유적 표지판 고운 최치원 선생 선유지 표지판 이 곳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41호_용암 영당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41호 _ 용암 영당 (龍岩 影堂) 수 량 : 1동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보령시 보령호로 819 (미산면, 이제헌선생사당) 시 대 : 조선 ◦ 용암영당(三思堂이라고도 함)은 조선 영조16년(1740) 보령지역에 사는 경주이씨(慶州李氏)들이 자신들의 조상인 익재 이제현을 추모하며, 제사하기 위하여 세웠음. ◦ 1800년에는 웅천의 학자이자 이제현(益齋 李濟賢)의 17대손인 이예환(李禮煥)등이 중심이 되어 이제현의 영정을 봉안하고 향사하였음. ◦ 그 후 여러 번 고쳐오다가 최근 보령댐 수몰로 인하여 현재의 위치에 이전하였고, 매년 유림과 경주이씨 후손들이 제사를 지냄. ◦ 이 사당에 모셔진 익재 이제현은 고려 충렬왕 27년(1301) 나이 15세에 문과에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72호_보령 죽청리 고인돌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72호 _ 보령 죽청리 고인돌 (保寧 竹淸里 고인돌) 수 량 : 12기 지정일 : 2000.09.20 소재지 : 충남 보령시 웅천읍 죽청리 362번지 ◦ 웅천읍 죽청리 장터마을(기현부락)에 있는 12기의 고인돌임. ◦ 이곳은 장터마을의 중앙으로 많은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분포함. 장터마을에는 이곳 외에도 많은 고인돌이 있었으나 이곳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훼손되었음. ◦ 대부분의 고인돌은 편마암인데, 동북쪽 산지에는 많은 편마암 노두가 있어 이곳에서 옮겨다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됨. 보령 죽청리 고인돌 표지판 보령 죽청리 고인돌 보령 죽청리 고인돌 보령 죽청리 고인돌 보령 죽청리 고인돌 보령 죽청리 고인돌 보령 죽청리 고인돌 보령 죽청리 고인돌 보령 죽청리 고인돌 보령 죽청리 고인돌 보령..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33-1호_영식필 산신도 백운사본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33-1호 _ 영식필 산신도 백운사본 (永植筆 山神圖 白雲寺本) 수 량 : 1기 지정일 : 2014.09.01 소재지 : 충청남도 보령시 심원계곡로 259-200 (성주면, 백운사) 시 대 : 1869년 백운사는 주불전인 극락전과 요사로 이루어진 규모가 작은 사찰이다. 요사에는 불상과 불화를 봉안하는 감실이 마련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1694년에 조성된 목조보살좌상이 모셔져 있고 그 오른편에 1869년에 제작된 산신도가 걸려 있다. 산신도의 화기에는 “同治八年己巳十月十四日奉安于公忠右道藍浦北嶺聖住山白雲寺山神幀”이라 적혀있다. 이 화기를 통해 이 불화가 성주산 백운사 산신탱화로 조성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산신도를 조성한 영식(永植)은 알려지지 않은 화승(畵僧)이며 가 현재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74호_보령 백운사 부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74호 _ 보령 백운사 부도 (保寧 白雲寺 浮屠) 수 량 : 1기 지정일 : 2000.09.20 소재지 :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산35번지 시 대 : 조선 후기 ◦ 부도란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불교 조형물로 승탑(僧塔)이라고도 함. ◦ 이 백운사의 부도는 정면에 정연당(淨蓮堂)이라는 명문이 있어 주인공이 백운사에서 수도(修道)하다가 입적한 정연당 스님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으며, 지대석을 포함하여 높이가 약 170cm 정도로 비교적 규모가 큼. ◦ 석종(石鐘)형의양식으로 표현된 점과, 탑신석(몸체)에 주인공의 이름을 새겨 넣은 점에서 조선후기 부도의 양시을 표현하고 있으며, 특히 상륜부 보주가 이중으로 된 특이성과 전면을 납작하게 만든 형식, 비교적 균형이 잡힌 형태가 충남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42호_수현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42호 _ 수현사 (水鉉祠) 수 량 : 1동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보령시 판미로 884 (미산면) 시 대 : 조선 ◦ 수현사는 고려말의 명신 염제신(廉悌臣)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창건은 1873년(고종10)이며, 염제신의 후손들인 보령의 파주 염씨들이 향사를 목적으로 세웠음. ◦ 원래 목조 기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사당과 솟을삼문을 갖추었으나, 보령댐 수몰로 인하여 현재의 자리에 새롭게 옮겨 지어 졌음. ◦ 염제신은 고려말 원에 들어가 벼슬을 하기도 하고 국내에서도 요직을 거치며 나라에 많은 공헌을 하여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이 되었던 인물임. 수현사 (水鉉祠) 표지판 수현사 (水鉉祠) 솟을삼문 우측면 수현사 (水鉉祠) 솟을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91호_신경섭가옥, 청라 은행마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91호 _ 신경섭 가옥 (申慶燮 家屋) 수 량 : 1동 지정일 : 1987.12.30 소재지 : 충남 보령시 청라면 장밭길 62 (장현리) 시 대 : 1843년(현종 9년) ◦ 조선후기의 팔작지붕으로 된 ㄱ자형의 사랑채와 ㅡ자형의 안채가 어우러져 ㄷ자형의 구조를 이룸. ◦ 안채에는 안방․대청․건넌방․고방․부엌을 들였고, 사랑채에는 사랑방과 사랑대청으로 되었는데, 사랑방 옆에 높은 누마루를 들여 전원을 조망하는 공간으로 활용하였음. ◦ 상량문에 숭정기원후계묘라 씌어져 있어 1843년에 지어진 고택임을 알수 있으며, 가옥의 동족 대문에는 신석붕의 효자정문 현판이 걸려있음. 신경섭 가옥 표지판 신경섭 가옥 대문 효자 신석붕(申錫鵬) 정문각 대문에는 1868년에 만들어진 신석붕(申錫鵬)의..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17호_대천 왕대사 마애불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_ 대천 왕대사 마애불 (大川 王臺寺 磨崖佛) 수 량 : 1구 지정일 : 1990.09.27 소재지 : 충남 보령시 내항동 산97번지 ◦ 왕대사의 서쪽 화강암 암벽에 음각으로 새긴 불상벽화임. ◦ 심하게 풍화되어 잘 알아보기 어려우나, 머리부분과 어깨부분, 법의의 왼쪽부분이 남아있음. ◦ 불상은 하나이며, 머리 주변에 2줄의 두광을 나타내는 선이 뚜렷하며, 몸통부분에도 신광을 나타내었으며, 남아있는 부분의 높이는 386cm, 폭은 160cm이며, 선의 깊이는 1cm내외임. ◦ 전설에 의하면 신라 경순왕이 왕위를 버리고 이 곳에 와서 거처하면서 미륵불을 만들었다고도 하며, 바위가 떨어져 암벽이 될 때 자연적으로 미륵불이 되었다고도 함. 대천 왕대사 마애불 표지판 대천 왕대사 마애불 대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72호_보령경찰서 망루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72호 _ 보령경찰서 망루 (保寧警察署 望樓) 수 량 : 1개 지정일 : 1985.07.19 소재지 : 충남 보령시 대천로 33 (대천동) ◦ 1950년 6.25동란 당시 대천경찰서가 남으로 후퇴하였다가, 9.28서울 수복 후 돌아왔으나 지방의 불순분자와 공산군의 잔당들이 성주산 일대에 웅거하면서 치안질서를 위협하였으므로 경찰서를 방호하기 위하여 1950년 10월초 당시 경찰서장이던 김선호가 지역주민의 협조와 노력지원을 받아 성주산 일대의 자연석을 운반해 다가 1951년 2월에 완공한 건물로 야간 경계근무는 물론 관내 치안유지에 활용하던 전적물(戰蹟物)임. ◦ 자연석과 시멘트를 섞어 높이 10m, 둘레15m의 규모로 쌓았으며, 안에는 밖으로 사격할 수 있도록 총안(銃眼) 22개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