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문화재자료 503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1호_충청수영 장교청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1호 _ 충청수영 장교청 (忠淸水營 將校廳) 수 량 : 1동 지정일 : 2010.12.30 소재지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602 ◦ 조선시대 충청수영성 안에는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진휼청, 장교청(객사), 내삼문만 남아있음. ◦ 장교청은 1833(순조 33년)에 만들어져 수영의 군간부들이 회의를 하던 장소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평면에 오른쪽 끝 한칸에는 온돌방을 두었고 나머지 세 칸은 넓은 대청으로 마루를 깔았으며, 큰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임 충청수영 장교청 표지 충청수영 장교청 전경 충청수영 장교청 전경 충청수영 장교청 전경 충청수영 장교청 .충청수영 장교청으로 전해져 오기도 하지만 객사로 추정되기도 한다. 객사는 수군절도사가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3호_충청수영 진휼청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3호 _ 충청수영 진휼청 (忠淸水營 賑恤廳) 수 량 : 1동 지정일 : 2010.12.30 소재지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658 ◦ 조선시대 충청수영성 안에는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진휼청으로 추정되는 이곳을 비롯해서 장교청과 삼문만이 남아있으며, 진휼청은 흉년에 충청수영 관내의 빈민 구제를 담당하던 곳이었음. ◦ 충청수영이 폐지된 이후 민가로 쓰이다가 1994년 토지와 건물을 매입하여 보존하고 있는데,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대청․온돌방․툇마루, 부엌 등이 있으며, 충청수영 고지도등에 나타난 건물 배치로 볼 때 진휼청으로 추정하고 있음 충청수영 진휼청 표지판 충청수영 진휼청 (忠淸水營 賑恤廳) 진휼청은 흉년에 충청수영 관내의 빈민 구제를 담당하던 ..

독립운동가 김복한 묘, 추양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9호 _ 김복한 묘 (金福漢 墓) 수 량 : 1기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홍성군 서부면 이호리 산70-4 시 대 : 1924년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인 지산(志山) 김복한(1860∼1924)의 묘소이다.1892년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 교리가 되었고 이후 여러 벼슬을 지냈다. 1894년 승정원 승지에 올랐으나 6월 갑오개혁으로 일본의 간섭이 시작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갔다. 8월에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고 이에 이설·이근주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나 홍주목사 이승우에게 체포되었다. 고종의 특사로 석방된 후 세상과 인연을 끊고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문하생이 수백 명에 이르렀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역신들을 참수하..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98호_고창향교 대성전, 고창향교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98호 _ 고창향교 대성전 (高敞鄕校 大成殿) 수량/면적 : 일원 지정일 : 1985.08.01 소재지 : 전북 고창군 고창읍 향교길 27-3 (교촌리) 시 대 : 1512년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들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고창향교는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월곡리에 있던 학당사을 옮겨온 것으로, 조선 중종 7년(1512)에 다시 지었다. 대성전은 선조 38년(1605)에 수리하였고, 1974년에 기와를 보수하였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5호_선운사 도솔암 내원궁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_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 (禪雲寺 兜率庵 內院宮) 수 량 : 1棟 지정일 : 1986.09.09 소재지 :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615번지 시 대 : 6년(1511) 선운사는 도솔암을 비롯한 4곳의 암자를 포함한 사찰이다. 도솔암 안의 내원궁은 험준한 바위 위에 세운 법당으로 상도솔암이라고 부른다. 조선 중종 6년(1511)과 숙종 20년(1694), 순조 17년(1817)에 다시 지었다. 이 건물은 거대한 바위 위에 세웠기 때문에 기단없이 편편한 곳에 자리잡아 원형 주춧돌만 두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기둥은 둥근기둥을 사용하였고, 벽선에 亞자형 2짝 여닫이문을 달았는데, 가운데 칸과 양 옆칸은 그 간격을 다르게 하여 예불 공..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0호_나한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0호 _ 나한전 (羅漢殿) 수 량 : 1동 지정일 : 1985.08.14 소재지 :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615번지 선운사의 산내암자인 도솔암에 있는 법당이다. 정면3칸 측면1칸에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건물은 건축수법으로 보아 조선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나한전 내부에는 흙으로 빚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가섭과 아난이 협시하였고, 1910년 용문암에서 옮겨온 16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도솔암은 선운사의 산내암자로서 대웅전 서쪽 150m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원래는 여섯 도솔암이 있었으나 현재는 상하 2개의 도솔암만 남아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조선시대 도솔암 용문굴에 이무기가 살면서 주민들을 괴롭혔는데, 이를 쫓아내기 위해 인도에서 나한상(羅漢像..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82호_암치리 선각석불좌상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82호 _ 암치리 선각석불좌상 (岩峙里 線刻石佛坐像) 수 량 : 1구(軀) 지정일 : 2002.11.15 소재지 : 전북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 산38번지 시 대 : 고려말선초 이 불상은 우림정 뒤의 암벽 아래, 높이 약 3m의 타원형 석판에 선각되어 있는데, 석불의 크기는 높이 250㎝, 폭 110㎝ 정도이다. 석판은 두께가 20㎝ 정도로 아래쪽이 약간 두꺼운데, 윗부분은 보주형(寶珠形)으로 다듬어 몸광배 형태로 만들고, 편평한 앞면에는 원형 머리광배을 지닌 석불좌상 1구를 선각하였다. 얼굴에서부터 신체 아래부분에 이르기까지 선각으로만 처리하여 마치 그림을 그린 듯이 보인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고, 얼굴은 마멸이 되어 확실치 않지만 갸름한 얼굴에 반..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81호_문수사 석조승상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81호 _ 문수사 석조승상 (文殊寺 石造僧像) 수 량 : 1구(軀) 지정일 : 2002.11.15 소재지 : 전북 고창군 고수면 칠성길 135 (은사리) 시 대 : 고려말-조선초 이 석상은 현재 문수사 문수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일명 문수보살상으로 알려져 있다. 규모는 높이 167㎝, 머리높이 53㎝, 머리폭 27㎝, 신체폭 55㎝ 정도이다. 「문수사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승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건너가 청량산에서 기도를 거듭한 끝에 문수보살의 계를 깨닫고 돌아와 우연히 이 곳을 지나다 보니 산세가 당나라의 청량산과 비슷하여 굴속에 들어가 7일 기도를 하자 문수보살이 나타나서 이곳에 문수도량을 개설하였다고 한다. 석상은 돌로 만든 대좌 위에 세워져 있으나 무릎 이하 부분이 절단되었..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21호_영랑사범종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21호 _ 영랑사범종 (影浪寺梵鐘) 수 량 : 1개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남 당진군 고대면 진관로 142-52 (진관리), 영랑사 법당 안에서 예불을 드릴 때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높이 76㎝, 입 지름 52㎝의 조선시대 종이다. 영조 24년(1748)에 주조된 것이라는 명문이 남아있으며, 종 아래쪽에는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이 빙 둘러 기록되어 있다. 이 종은 일본 침략 때 경찰에 빼앗겼던 것을, 그 당시 주지였던 취암스님의 의지로 결국 되돌려 받았다고 전해오고 있다. 영랑사범종 (影浪寺梵鐘) 2023.10.22, 수덕사 근역성보관 글 문화재청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02호_천장사 칠층석탑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02호 _ 천장사 칠층석탑 (天藏寺 七層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시 천장사길 100 (고북면) 천장사 천장사 인법당 앞뜰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기단은 밑돌이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그 위로 지붕 모양의 맨 윗돌을 덮어두고 있는데, 그 폭이 탑신의 1층 몸돌과 거의 같다. 탑신부의 각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으며,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비율이 그리 크지 않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새겨두었다. 4층 지붕돌에서부터 7층 몸돌까지 놓인 돌들은 제자리가 아닌 듯 어색한 모습이며, 꼭대기에 있는 머리장식 또한 아래의 7층 지붕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