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문화재자료 504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47호_계봉사 오층석탑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47호 _ 계봉사 오층석탑 (鷄鳳寺 五層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남 청양군 목면 본의리 675번지 시 대 : 고려시대 계봉사의 정원 가운데 서 있는 5층 석탑이다. 계봉사는 백제 성왕 때 지었다고도 하며, 통일신라 문성왕 때 지어졌다고 하나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 헌종 때 불에 타 버린 것을, 옛이름을 따서 작은 규모로 새로이 짓고 정원을 꾸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5층 석탑과 물을 받는 돌구유만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위층 기단의 앞면에는 탑의 이름을 새기고, 탑신의 각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 떠 새겼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1층부터 4층까지 4단이..

청양 정혜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51호_정혜사

청양 정혜사에 있는 지정문화재 1.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1호 _ 청양 정혜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2.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51호_정혜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51호 _ 정혜사 (定慧寺) 수량/면적 : 일원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남 청양군 장평면 상지길 165-10 (화산리) 칠갑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절로, 신라 문성왕 3년(841)에 혜조국사가 지었다고 전한다. 이후, 517년경 전각이 모두 불타고 삼존불상만 화를 면했다. 16년 후 마곡사의 인명선사가 다시 짓고 여러 차례 보수·중건하였다. 1907년 큰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1908년 월파스님이 다시 지었다. 현재 절 안에는 삼존불상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과 산신각, 석굴암, 중암, 서암 등 암자가 있다. 정혜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19호_강민첨장군묘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19호 _ 강민첨장군묘 (姜民瞻將軍墓) 면 적 : 147,174㎡ 지정일 : 1990.12.31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대술면 이티길 341 (이티리) 고려시대의 무신인 강민첨(∼1021) 장군의 묘이다. 목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현종 3년(1012) 안찰사로서 영일 등지에 쳐들어온 여진을 격퇴하였다. 현종 9년(1018)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강감찬 장군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흥화진에서 격파하였다. 그 공로로 1019년에 응양상장군주국·우산기상시가 되고 추성치리익대공신에 기록되었으며, 이듬해 병부상서가 되었다. 묘소는 예산군 대술면 이치리에 있는데, 반구형의 봉분 아랫부분에 잘 다듬은 둘레석을 둘렀다. 묘의 앞에는 상석·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세우..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4호_청양 평택임씨 재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4호 _ 청양 평택임씨 재실 (靑陽 平澤林氏 齋室) 수량/면적 : 1곽 / 1,316㎡ 지정일 : 2011.07.20 소재지 : 충청남도 청양군 산당로 459-3 (화성면) 시 대 : 조선후기 청양 평택임씨 재실은 안채, 아래채, 문간채, 헛간채가 모여 ㅁ자형 배치를 보여주는 이 지방 1800년대 전후의 전형적인 재실 건물로 건립년대는 확인되지 않지만 건물에 나타나는 전반적인 의장의 세부수법은 당시 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음. 안채와 부속건물들의 지붕이 누수로 인하여 일부 퇴락되긴 하였지만 원형을 유지하고 있고 안채와 문간채의 부엌상부에는 음식과 祭器를 보관했던 다락공간이 만들어져 재실의 기능을 잘 갖추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음 평택임씨 공적비군 평택임씨 재실인 산천재(山泉齋)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79호_방기옥가옥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79호 _ 방기옥가옥 (方基鈺家屋) 수 량 : 1동 지정일 : 1985.12.31 소재지 : 충남 청양군 남양면 봉암리 150번지 조선시대 조대감이 지었다고 전하는 가옥으로 ‘방기옥가옥’이라는 이름은 현 소유자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건물 형태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가 하나로 연결된 ㄷ자형이다. 안채는 앞면 6칸으로 왼쪽에서부터 부엌·안방·대청·건넌방 순으로 되어 있고 건넌방 앞에는 누마루를 설치하였다. 중앙의 사랑채는 방과 부엌을 두었고, 행랑채는 안채보다 길어 서로 어긋나게 자리잡고 있다. 방기옥가옥 표지판 방기옥가옥 전경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이 620년인 은행나무 방기옥가옥 앞에 위치한 한옥카페 지인 각종 드라마 촬영 장소로 활용된 방기옥 가옥 방기옥가옥 주출입구 방기..

충신 박신용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53호_유의각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53호 _ 유의각 (遺衣閣) 수 량 : 1동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청양군 유의각길 11 (운곡면) 소유자(소유단체) : 죽산박씨 종중 조선 인조(재위 1623∼1649) 때의 충신 박신용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지금도 그의 충의 정신을 길이 빛내기 위하여 관복을 소장하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박신용 장군은 선전관이 되어 군사들을 이끌고, 몸을 던져 싸우다 죽었다. 이 때 조정에서 내린 관복이 있어 후손이 보호 관리하여 오다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 관복을 보관할 건물을 짓고 유의각이라 부르고 제사를 드렸는데, 그 내용을 석비로 만들어 새겨 놓았다. 건물은 사당 형식으로 만들었고, 문은 가운데 칸을 높여 세운 삼문(三門)형식으로 주변은 담장..

양지장군의 사당,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54호_표절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54호 _ 표절사 (表節祠) 수 량 : 1동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청양군 표절사길 40-23 (운곡면) 소유자(소유단체) : 남원양씨 종중 조선 전기 무신인 양지(1553~1592) 장군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양지 장군은 선조 16년(1583)에 무과에 급제하고 벼슬에 올라 적성현감을 지냈다. 임진왜란(1592)이 발발하자 삭녕군수(현 경기도 연천 이북 지역)로서 왜군과 용전하다 순절하였다. 그가 죽은 뒤 정조 20년(1796) 이조판서로 증직되고 충민이란 시호를 받았다. 표절사는 부조묘(不祧廟)로서 나라에서 정한 국불천위 사당이다. 이같이 불천위와 그 제사를 위한 사당을 두는 것은 국가나 유림, 문중에서 정..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3호_일락사 대웅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3호 _ 일락사 대웅전 (日樂寺大雄殿) 수 량 : 1동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시 일락골길 501 (해미면, 일락사) 시 대 : 1487 일락사는 상왕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의현선사가 세웠다. 이 절은 성종 18년(1487) 이후 여러 차례 보수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은 기록으로 미루어 일제시대 초기인 1919년에 고쳐 세운 건물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명부전’이란 현판이 달려있는 대웅전은 1993년에 건물을 해체하여 원래 자리 오른편에 세웠는데, 이전 자리에는 대적광전을 새로 지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08호_일락사 철불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08호 _ 일락사 철불 (日樂寺 鐵佛) 수 량 : 1구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시 일락골길 501 (해미면, 일락사) 철불의 육계는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넓적하고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인 상태이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게 있으며 가슴은 평평하고 풍만한 느낌을 주며 아랫배 바로 위에 대위가 지나며 승각기 매듭이 가지런하다. 불상의 특징은 결가부좌한 오른쪽 발로 즉 왼쪽 무릎 위에 올려놓은 오른쪽 발이 약간 두드러지게 위에 얹혀져야 정상인데 본 불상에서는 매우 밋밋해서 왼쪽 무릎위로 내려오는 대의자락이 거의 발가락 끝을 슬쩍 덮고 내려온 상태로 생동감이 적어 보인다. 현재 일락사 미타전(구 대웅전)에 보관중이며, 불상 높이는 80cm이며 좌폭은 6..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00호_일락사 삼층석탑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00호 _ 일락사삼층석탑 (日樂寺三層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시 일락골길 501 (해미면, 일락사) 시 대 : 고려시대로 추정 일락사·대적광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있다. 위층 기단은 네 면마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그 위 지붕모양의 덮개돌은 윗면에 비스듬한 경사가 있는데, 두 모서리가 크게 부서진 상태이다. 탑신부는 1층 몸돌이 아래의 기단과 거의 같은 크기이고, 2층 몸돌은 그에 비해 크게 줄어들어 있으며, 3층의 몸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3층 지붕돌 위로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낮은 받침돌이 남아있고, 그 위에는 머리장식 대신 막돌이 하나 놓여있다. 기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