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문화재자료 504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96호_충주 한남군 사당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96호 _ 한남군 사당 (忠州 漢南君 祠堂) 수 량 : 1동 지정일 : 2020.10.08 소재지 : 충청북도 충주시 용관동 258-4 시 대 : 일제강점기(1933) 한남군 사당은 단종 복위운동을 펼친 여섯명의 종친(六宗英, 안평대군 이용 · 금성대군 이유 · 화의군 이영 · 한남군 이어 · 영풍군 이천 · 하령군 이양) 가운데 한남군 이어를 기리는 건물이다. 사당에는 한남군의 어머니 혜빈양씨, 한남군과 군부인 안동권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주변에 있는 충주 박팽년 사당(도 기념물 제27호)과 더불어 단종 복위운동이라는 동일한 역사적 사건으로 연결된 충절의 문화재이다 世宗王子漢南君祠堂史錄(세종왕자한남군사당사록) 표지판 한남군 사당 전경 한남군 사당은 단종 복위운동을 펼친 여섯명의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54호_예천 함취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54호 _ 예천 함취정 (醴泉 咸聚亭) 수량/면적 : 1동, 37.74㎡ 지정일 : 2017.03.13 소재지 : 경상북도 예천군 맛질길 123-1 (용문면) 취정이 소재한 맞질마을은 영남지역의 대표적인 同姓村이며, 함취정은 정자이면서 조선 초·중기 영남사림을 대표하는 權檥, 權檣, 權旭 3인을 향사하는 제향적 기능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과 초기 건립의 목적과 별개로 후대로 가면서 제향 공간으로 기능이 확장되어가는 중·후기 조선시대 누정 건축의 특징적인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예천 함취정 표지판 예천 함취정 함취정은 1643년(인조 21년) 매당(梅堂) 권욱(權旭, 1556~1612)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조선초 · 중기 영남 사림을 대표하는 인물인 권의..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56호_충주 창룡사 다층청석탑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56호 _ 충주 창룡사 다층청석탑 (忠州 蒼龍寺 多層靑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2006.06.30 소재지 : 충청북도 충주시 고든골길 63-89 (직동, 창룡사) 시 대 : 고려시대로 추정 높이 35센티미터의 화강암 탑신석 위에 9층의 점판암제 옥개석이 올려져 있다. 평면 정사각형이며 초층 및 2층 옥개석 하면에는 연판문이 장식되어 있으며 그 이상은 각형 층급받침을 새기고 있다. 충주 지역에서는 다른 예가 없으며 전국적으로도 몇 기 안되는 청석탑으로 규모는 작으나 공예품과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충주 창룡사 다층청석탑 표지판 충주 창룡사 다층청석탑 충주 창룡사 다층청석탑 충주 창룡사 다층청석탑충주 창룡사 다층청석탑 충주 창룡사 다층청석탑 충주 창룡사 다층청석탑 충주 ..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48호_충주 문주리 석조여래좌상, 오층석탑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48호 _ 충주 문주리 석조여래좌상 (忠州 文周里 石造如來坐像) 수 량 : 1구 지정일 : 2005.05.06 소재지 :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 487-2 머리는 나발이며 육계는 표현되지 않았다. 얼굴에 비해 코는 크고 입은 작으며 눈은 반개한 모습이다. 양귀는 짧고 어깨는 다소 약간 위로 치켜진 모습이며 삼도가 표현되었다. 법의는 우견편단이며 수인은 항마인을 결하고 있다. 대좌는 8각의 하대석과 중대석만 남아 있으며 불상 근처에 광배가 놓여 있다. 충주 문주리 석조여래좌상 표지판 이 도로에서 우측으로 20m가면 문주리 석조여래좌상을 볼 수 있습니다. 문주리 오층석탑과 석조여래좌상 보호각 문주리 오층석탑과 석조여래좌상 보호각 좌 · 우측면 문주리 오층석탑과 석조여래좌상 보호..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53호_충주 강천리 석조여래입상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53호 _ 충주 강천리 석조여래입상 (忠州 江泉里 石造如來立像) 수 량 : 1구 지정일 : 2006.03.03 소재지 :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강천리 산 2-1 시 대 : 고려후기- 조선초기 전체적으로 팔과 손은 몸체에 비하여 작게 표현되고 옷주름의소략화된 표현 등이 보이나 풍만한 상호와 눈두덩을 도독하게 표현하였다. 어깨가 약간 왜소해졌으나 당당함이 남아있고 비교적 단아한 모습이며 手印과 衣紋의 표현이 단정하고 깔끔하게 조각된 불상이다 충주 강천리 석조여래입상 표지판 이 도로에서 200m 직진해서 가면 강천리 석조여래입상 볼 수 있습니다. 파란색 지붕 건물이 서음경로당 입니다. 경로당 뒤쪽에 강천리 석조여래입상이 위치해 있습니다. 충주 강천리 석조여래입상 전경 충주 강천리 석조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55호_함포재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55호 _ 함포재사 (咸浦齋舍) 수 량 : 4동 지정일 : 2003.12.15 소재지 : 경북 예천군 용문면 맛질길 101 (제곡리) 시 대 : 1772년 전후로 추정 소유자(소유단체) : 제곡안동권씨함포문중 안동권씨 제곡 입향조(入鄕祖)인 야옹 권의(野翁 權檥, 1475-1558)와 심언(審言, 1502-1574), 시(時, 1552-1612)․ 욱(旭 1556-1612)․ 담(曇, 1558-1631)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하여 건립된 재사로, 건립년대는 망와(望瓦)의 명문에 나타난 건륭(乾隆)37년 임진년(1772)을 전후한 시기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어진다. 현재의 재사는 여러 차례 보수를 거듭 하여 초창(初創) 당시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으나, 이 지역 재사건물의 민속자료적 ..

정윤목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사설학원, 예천 삼강 강당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04호 _ 삼강강당 (三江講堂) 수 량 : 2동 지정일 : 1988.09.23 소재지 :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길 53-14 (삼강리) 청풍자 정윤목(1571∼1629)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정윤목은 서원부원군 정탁의 아들로 초서에 뛰어난 학자이다. 광해군의 실정에 불만을 품고 지방으로 내려와 후진양성에 힘썼다. 삼강마을 동쪽 낙동강변에 자리잡은 이 강당은 앞쪽으로 둥근기둥을 세우고 옆면과 뒤쪽으로는 네모기둥을 세워 건물을 지었다. 가운데에 개방된 구조의 마루를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는 현판 글씨는 정윤목이 선조 22년(1589)에 부친을 따라 중국에 가서 백이숙제의 묘를 참배하고 돌아올 때 베껴온 것이다. 경내에는 자연석..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38호_예천 향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38호 _ 예천향교 (醴泉鄕校) 수 량 : 4동 지정일 : 1985.08.05 소재지 : 경북 예천군 예천읍 백전리 199-1번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지방에 세운 교육기관이다. 한국전쟁 때 기록을 분실하여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조선 태조 7년(1398) 서본리에 처음 지었고 태종 18년(1418)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운 것으로 보인다. 보수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건축 당시의 여러 건물은 불타 없어졌다. 현재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 교육 공간인 명륜당, 대문 격인 외삼문과 음식을 준비하는 곳인 주사가 남아 있다. 대지를 3단으로 나누어 앞면에는 교육 공간을 두고 뒤편에는 제사 공간을 배치하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30호_병암고택(사랑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30호 _ 병암고택(사랑채) (甁菴故宅(사랑채)) 수 량 : 1동 지정일 : 1985.08.05 소재지 : 경북 상주시 외서면 채릉산로 918-3 (우산리) 시 대 : 조선시대 정종로 선생의 동생 정재노 공이 조선 영조 46년(1770)에 지은 집이다. 사랑채만 남아 있던 것을 80년 전에 안채를 고쳐 짓고 70년 전에 별채를 고쳐 지어 현재 안채, 사랑채, 별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앞면 6칸 규모의 一자형 평면구조를 이룬다. 왼쪽 부엌 1칸을 제외하고는 앞뒤로 반 칸 폭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사랑채는 여러 칸을 터 놓은 통칸방과 마루방 2칸으로 꾸몄다. 별채는 一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방 앞쪽으로 반 칸 폭의 툇마루를 건물 길이대로 설치하였다. 병암의 평면은 부엌..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41호_미산학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41호 _ 미산학사 (眉山學舍) 수 량 : 2동 지정일 : 1985.08.05 소재지 : 경북 예천군 보문면 미호리 123-1번 소유자(소유단체) : 김해김씨문중 미산 김이도의 덕을 추모하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사설 학원이다. 김이도는 경당 장흥효의 문인으로 학문이 뛰어나 사림들의 존경을 받았다. 선생은 ‘학사가 없으면 뜻을 펼 수 없다.’는 홍학 이념으로 후진을 양성하였다. 미산학사는 현종 11년(1670)에 세웠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건물은 평범한 평면구성이나 앞쪽 큰마루는 난간을 돌려 다락집으로 꾸며 매우 단아한 모양을 지니고 있다. 큰마루 위에는 ‘미산학사’와 ‘삼경당’이라고 쓴 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