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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문화재자료 528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10호_정충신 묘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10호 _ 정충신 묘 (鄭忠信 墓) 수 량 : 1기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시 대요한우물길 186-3 (지곡면) 조선 중기의 무신인 만운(晩雲) 정충신(1576∼1636) 장군의 묘소이다.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7세에 권율 장군의 휘하에서 종군하였으며, 병조판서 이항복에게 학문을 배워 같은 해 가을에 무과에 합격하였다. 1624년에 일어난 이괄의 난을 평정하여 진무공신 1등으로 금남군에 봉해졌으며,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팔도부원사로 중국 청나라 군대를 철군시켰다. 1630년 평안도에서 일어난 유흥치의 난을 평정한 후 오위도총관, 포도대장 등을 거쳐 경상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천문·지리·의술 등 다방면에 걸쳐 능통하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06호_정충신사당(진충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06호 _ 정충신사당(진충사) (鄭忠信祠堂(振忠祠)) 수 량 : 1동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시 진충사길 103 (지곡면, 진충사) 조선 전기 무신인 정충신 장군(1576∼1636)의 영정과 유품을 보관하고 있는 사당이다. 장군은 임진왜란(1592) 때 17세의 나이로 권율 장군을 도와 싸웠으며, 인조 2년(1624)에는 이괄의 난을 평정하고 정묘호란 때는 팔도부원사(八道副元師)로 참전하였다. 그 뒤 포도대장, 병마절도사 등을 지냈다. 이곳은 인조 14년(1636) 왕명으로 세운 이후 영조 13년(1737) 고쳐 지었다. 정조 24년(1800)에는 당시 곡성 현감으로 있던 그의 5대 손인 정세환과 9대 손인 정재칠이 각각 정미면 신시리와 현 13세손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67호_담양 호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67호 _ 담양 호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潭陽 護國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 수 량 : 1구 지정일 : 2008.04.11 소재지 : 전라남도 담양군 완동길 24-43 (담양읍, 호국사) 담양 호국사에 소장된 조선후기의 목조 아미타 여래좌상이다. 2005년 2월 확인된 복장물의 발원문(28.5cm×131cm)을 통하여 1660년 5월 15일 담양 용구산 회적암에서 아미타불 1구를 조성하여 봉안(順治十七年庚子五月十三日造成彌陀一軀畢功安于龍龜山晦迹庵)했음을 알 수 있다. 불상의 형식은 촘촘하게 밀집된 나발에 상단 계주와 하단계주가 선명하며, 얼굴은 사각형이지만 턱 부분이 약간 좁으며 이마 중앙에는 백호가 돌출해 있고 예리하게 뻗은 가는 눈썹과 정면 아래쪽을 향하고 있는 일자형의 눈, 뭉뚝..

최익현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52호_모덕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52호 _ 모덕사 (慕德祠) 수 량 : 1동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남 청양군 목면 나분동길 12 (송암리) 조선 후기 애국지사인 최익현(1833∼1906)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최익현은 이학로의 제자로 문학과 도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철종 6년(1855)에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현감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나라를 걱정하며 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여러 차례 올리고 흑산도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또한 1905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 5적을 처단할 것을 주장하였고 같은 해 일본의 죄상을 16개 항목에 적어 항쟁하며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병을 모집, 일본군과 싸웠다. 그러나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대마도에 유배되었고 적군이 주는 음..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47호_계봉사 오층석탑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47호 _ 계봉사 오층석탑 (鷄鳳寺 五層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남 청양군 목면 본의리 675번지 시 대 : 고려시대 계봉사의 정원 가운데 서 있는 5층 석탑이다. 계봉사는 백제 성왕 때 지었다고도 하며, 통일신라 문성왕 때 지어졌다고 하나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 헌종 때 불에 타 버린 것을, 옛이름을 따서 작은 규모로 새로이 짓고 정원을 꾸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5층 석탑과 물을 받는 돌구유만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위층 기단의 앞면에는 탑의 이름을 새기고, 탑신의 각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 떠 새겼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1층부터 4층까지 4단이..

청양 정혜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51호_정혜사

청양 정혜사에 있는 지정문화재 1.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1호 _ 청양 정혜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2.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51호_정혜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51호 _ 정혜사 (定慧寺) 수량/면적 : 일원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남 청양군 장평면 상지길 165-10 (화산리) 칠갑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절로, 신라 문성왕 3년(841)에 혜조국사가 지었다고 전한다. 이후, 517년경 전각이 모두 불타고 삼존불상만 화를 면했다. 16년 후 마곡사의 인명선사가 다시 짓고 여러 차례 보수·중건하였다. 1907년 큰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1908년 월파스님이 다시 지었다. 현재 절 안에는 삼존불상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과 산신각, 석굴암, 중암, 서암 등 암자가 있다. 정혜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19호_강민첨장군묘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19호 _ 강민첨장군묘 (姜民瞻將軍墓) 면 적 : 147,174㎡ 지정일 : 1990.12.31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대술면 이티길 341 (이티리) 고려시대의 무신인 강민첨(∼1021) 장군의 묘이다. 목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현종 3년(1012) 안찰사로서 영일 등지에 쳐들어온 여진을 격퇴하였다. 현종 9년(1018)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강감찬 장군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흥화진에서 격파하였다. 그 공로로 1019년에 응양상장군주국·우산기상시가 되고 추성치리익대공신에 기록되었으며, 이듬해 병부상서가 되었다. 묘소는 예산군 대술면 이치리에 있는데, 반구형의 봉분 아랫부분에 잘 다듬은 둘레석을 둘렀다. 묘의 앞에는 상석·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세우..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4호_청양 평택임씨 재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4호 _ 청양 평택임씨 재실 (靑陽 平澤林氏 齋室) 수량/면적 : 1곽 / 1,316㎡ 지정일 : 2011.07.20 소재지 : 충청남도 청양군 산당로 459-3 (화성면) 시 대 : 조선후기 청양 평택임씨 재실은 안채, 아래채, 문간채, 헛간채가 모여 ㅁ자형 배치를 보여주는 이 지방 1800년대 전후의 전형적인 재실 건물로 건립년대는 확인되지 않지만 건물에 나타나는 전반적인 의장의 세부수법은 당시 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음. 안채와 부속건물들의 지붕이 누수로 인하여 일부 퇴락되긴 하였지만 원형을 유지하고 있고 안채와 문간채의 부엌상부에는 음식과 祭器를 보관했던 다락공간이 만들어져 재실의 기능을 잘 갖추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음 평택임씨 공적비군 평택임씨 재실인 산천재(山泉齋)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79호_방기옥가옥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79호 _ 방기옥가옥 (方基鈺家屋) 수 량 : 1동 지정일 : 1985.12.31 소재지 : 충남 청양군 남양면 봉암리 150번지 조선시대 조대감이 지었다고 전하는 가옥으로 ‘방기옥가옥’이라는 이름은 현 소유자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건물 형태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가 하나로 연결된 ㄷ자형이다. 안채는 앞면 6칸으로 왼쪽에서부터 부엌·안방·대청·건넌방 순으로 되어 있고 건넌방 앞에는 누마루를 설치하였다. 중앙의 사랑채는 방과 부엌을 두었고, 행랑채는 안채보다 길어 서로 어긋나게 자리잡고 있다. 방기옥가옥 표지판 방기옥가옥 전경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이 620년인 은행나무 방기옥가옥 앞에 위치한 한옥카페 지인 각종 드라마 촬영 장소로 활용된 방기옥 가옥 방기옥가옥 주출입구 방기..

충신 박신용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53호_유의각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53호 _ 유의각 (遺衣閣) 수 량 : 1동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청양군 유의각길 11 (운곡면) 소유자(소유단체) : 죽산박씨 종중 조선 인조(재위 1623∼1649) 때의 충신 박신용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지금도 그의 충의 정신을 길이 빛내기 위하여 관복을 소장하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박신용 장군은 선전관이 되어 군사들을 이끌고, 몸을 던져 싸우다 죽었다. 이 때 조정에서 내린 관복이 있어 후손이 보호 관리하여 오다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 관복을 보관할 건물을 짓고 유의각이라 부르고 제사를 드렸는데, 그 내용을 석비로 만들어 새겨 놓았다. 건물은 사당 형식으로 만들었고, 문은 가운데 칸을 높여 세운 삼문(三門)형식으로 주변은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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