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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06호_정충신사당(진충사)

기리여원 2023. 10. 12. 15:32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06호 _ 정충신사당(진충사) (鄭忠信祠堂(振忠祠))

 

수    량 : 1동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시 진충사길 103 (지곡면, 진충사)

 

조선 전기 무신인 정충신 장군(1576∼1636)의 영정과 유품을 보관하고 있는 사당이다.

장군은 임진왜란(1592) 때 17세의 나이로 권율 장군을 도와 싸웠으며, 인조 2년(1624)에는 이괄의 난을 평정하고 정묘호란 때는 팔도부원사(八道副元師)로 참전하였다. 그 뒤 포도대장, 병마절도사 등을 지냈다.

이곳은 인조 14년(1636) 왕명으로 세운 이후 영조 13년(1737) 고쳐 지었다. 정조 24년(1800)에는 당시 곡성 현감으로 있던 그의 5대 손인 정세환과 9대 손인 정재칠이 각각 정미면 신시리와 현 13세손 정종열 가옥 옆으로 옮겼고, 1970년대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이곳에는 중요민속자료 36호로 지정된 유품 5점을 비롯한 그의 유품들을 전시관에 보관하고 있으며, 해마다 양력 4월 25일 유림들과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정충신사당(진충사) 표지판

 

 

진충사 주차장 좌측에 쭈욱 뻗은 메타세쿼이아가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 몇일 지나면 단픙이 들어 더 아름답겠습니다

 

 

금남군 충무공 정충신사적비(錦南君 忠武公 鄭忠信史蹟碑)

 

 

진충사 홍살문

 

 

진충사 재실

 

 

친충사 외삼문(外三門)

 

 

진충사의 동재,서재

 

 

진충사 내삼문(內三門)

 

 

진충사 (振忠祠)

 

사당인 진충사는  충무공 정충신(鄭忠信)의 영정(影幀)을 모신 곳이다.

 

충무공(忠武公) 정충신( 鄭忠信, 1576~1636)

 

정충신(鄭忠信)[1576~1636]1592(선조 25) 17세의 어린 나이로 임진왜란 중에 광주목사 권율(權慄)의 휘하에서 종군하였다. 이때 권율이 장계를 행재소에 전달할 사람을 모집했으나 응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17세의 어린 정충신이 가기를 자청하고는 왜군으로 가득한 길을 단신으로 뚫고 행재소에 도착하였다. 이해 가을에 행재소에서 실시하는 무과에 합격하였다.

 

1623(인조 1) 안주목사로 방어사를 겸하고, 1624년 이괄(李适)의 난 때에는 도원수 장만(張晩)의 휘하에서 전부대장(前部大將)으로 활약해 진무공신(振武功臣) 1등으로 금남군(錦南君)에 봉하여졌다. 이괄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서산 일대의 토지를 사패지로 받게 되어 그 후손이 서산으로 입향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부원수를 지냈고, 1633년 조정에서 청나라와 절교(絶交)할 것을 결정하자, 청나라와의 소통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이를 재고할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당진에 유배되었고, 다시 장연으로 이배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난 이듬해 포도대장·경상도병마절도사를 지냈으며 1636년에 세상을 떠났다

 

향토문화전자대전

 

진충사 (振忠祠)

 

건물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 겹처마의 양식의 목조건축물이다.

 

진충사 좌우측면

 

 

진충사 (振忠祠) 정면

 

 

진충사(桭忠祠) 현판

 

이 현판은 국무총리였던 부여 출신 김종필(金鍾泌, 1926~1918) 의 글씨임.

 

진충사 현판뒤에 정충신의 시조 현판

 

 

진충사 우측상단에 걸려있는 진충사건립기(振忠祠建立記) 현판

 

 

진충사(振忠祠) 정면

 

2023.10.11.서산시 지곡면, 진충사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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