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강원도 81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5호_화천 성불사지 석불입상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5호 _ 화천 성불사지 석불입상 (華川 成佛寺址 石佛立像) 수 량 : 1구 지정일 : 1996.02.27 소재지 : 강원 화천군 간동면 유촌리 산20-2번지 시 대 : 고려시대 초기 추정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성불사 절터에 있는 불상으로, 현재 머리와 목 부분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상체와 하체는 딴 돌로 만들어져 분리될 수 있다. 상체는 떡 벌어진 어깨와 발달된 가슴으로 당당한 모습이다. 얇은 옷을 몸에 밀착시켜서 잘록한 허리가 더욱 강조되었다. 양 어깨에 두른 옷에는 U자형의 옷주름이 새겨져 있다. 도식적인 옷주름 처리로 사실성이 결여되고 조각수법의 미숙으로 생동감이 떨어지고 있다. 오른쪽 어깨와 손목 부분이 깨졌는데, 다소 부자연스럽게 표현된 두 손은 정확한 모양을 알 수 없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6호_서상리 삼층석탑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8호 _ 서상리 삼층석탑 (西上里 三層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71.12.16 소재지 : 강원 춘천시 서면 서상리 247번지 시 대 : 통일신라 후기 양화사터에 남아 있는 3층 석탑이다. 주변에 절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탑만이 홀로 남아 옛 터를 지키고 있다.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이 올려진 모습이다. 현재 기단은 아랫부분이 땅속에 묻혀 정확한 형태를 알기 어려우나, 2층 기단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윗부분만 드러나 있는 아래층 기단 위에 위층 기단이 놓여 있는데 네 모서리에 새긴 기둥표현과 맨윗돌의 비스듬한 경사면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탑신은 1층에서 높다가 2층부터 급격히 줄어들었다. 2층 이상의 탑신이 너무 급하게 줄어들어 다소 균형을 잃은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0호_위라리 칠층석탑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0호 _ 위라리 칠층석탑 (位羅里 七層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71.12.16 소재지 : 강원 화천군 하남면 춘화로 3370 (위라리) 시 대 : 고려시대 추정 고려시대의 옛 절터에 남아 있는 7층 석탑이다. 기단부재, 탑몸돌, 지붕돌 등이 사방에 흩어져 있던 것을 수습하여 다시 세운 것으로, 지붕돌과 탑신의 1 ·2 ·3층의 몸돌은 원래의 것이고 4층 이상의 몸돌은 1975년 복원할 때 보충한 것이다. 탑의 형태는 커다란 바닥돌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탑신의 몸돌은 각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겨놓았고, 2층에서 1층에 비해 큰 폭으로 높이가 줄어들다가 그 이후부터는 아주 조금씩 줄어들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7호_삼척 천은사 목조아미타삼존불상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7호 _ 삼척 천은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三陟 天恩寺 木造阿彌陀三尊佛坐像) 수 량 : 3구 지정일 : 2007.01.19 소재지 :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 천은사 천은사 극락보전에 모셔진 아미타 삼존불 좌상은 사람 크기의 불상 3구로 이루어져 있다. 앉아있는 모양으로 나무를 조각하여 짜 맞춘 아미타불(阿彌陀佛)과 관음보살상(觀音菩薩像),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이다. 전체적으로 표정, 복식, 수인(手印)이 비슷하게 만들어졌는데, 단정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긴다. 조각 기법과 표현 양식, 특히 불상 안에서 발견된 유물을 통해 조선 시대(15세기 중반~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운데에 있는 아미타불은 본존불(本尊佛)로서 높이가 101cm로 가장 크다. 그 왼쪽에 있는 관음..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8호_삼척척주동해비 및 평수토찬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8호 _ 삼척 척주동해비 및 평수토찬비 (三陟陟州東海碑 및 平水土讚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71.12.16 소재지 : 강원도 삼척시 허목길 13-9 (정상동) 외 조선 현종 2년(1661) 때 삼척 부사를 지낸 허목(1595∼1682) 선생과 관련이 있는 2기의 비이다. 허목 선생은 성리학을 발전시켰으며 제자백가와 경서연구에 전념하였고 특히 예학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한다. 척주동해비는 정상리 육향산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정라진앞 만리도에 세워 놓았던 것을 비가 파손되자 숙종 36년(1710)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당시 이 지방은 파도가 심하여 바닷물이 마을까지 올라오고 홍수가 지면 주민의 피해가 극심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허목이 신비한 뜻이 담긴 글을 손수 짓고..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1호_삼척 교수당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1호 _ 삼척 교수당 (三陟 敎授堂) 수 량 : 1동 지정일 : 1979.05.30 소재지 : 강원 삼척시 근덕면 하맹방리 531번지 고려시대의 문신인 홍준이 고려가 앞으로 혼란해질 것이라 예감하고, 삼척에 내려와 살면서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고려 우왕 14년(1388)에 처음 지었으며,현재의 건물은 최근에 다시 지어졌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건물이다. 좌우 1칸에서만 출입이 가능하며,나머지 부분은 모두 난간으로 처리되었다. 건물 안에는 선생의 스승이었던 목은 이색의 시가 새겨진 판목이 보관되어 있다. 삼척 교수당 표지판 삼척 교수당 전경 삼척 교수당 삼척 교수당 정문 삼척 교수당 담장에 활짝 핀 배롱나무 삼척 교..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7호_삼척 영은사 팔상전

강원도 유형문화재 77호 _ 삼척 영은사 팔상전 (三陟靈隱寺八相殿) 수 량 : 1동 지정일 : 1982.11.03 소재지 : 강원 삼척시 근덕면 궁촌길 1162 (궁촌리) 영은사는 통일신라말에 범일조사가 지은 절이다. 절에 남아있는 기록에 의하면 팔상전은 조선 인조 19년(1641)에 지었다고 하는데, 건축양식으로 보면 조선 후기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집이다. 앞쪽은 겹처마이고 뒤쪽은 홑처마로 되어 있는데, 뒤쪽의 덧서까래를 앞쪽보다 길게 하여 건물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또 지붕 옆면에 방풍판을 달았는데, 모서리를 서로 다르게 하여 균형을 이루고 있어 특이하다. 내부에는 영조 36년(1760)에 그린 탱화 8점이 모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6호_삼척 영은사 대웅보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6호 _ 삼척 영은사 대웅보전 (三陟靈隱寺大雄寶殿) 수 량 : 1동 지정일 : 1982.11.03 소재지 : 강원 삼척시 근덕면 궁촌길 1162 (궁촌리) 영은사는 통일신라 진성여왕 6년(892)에 범일조사가 처음 지은 절로, 이때에는 운망사라 하였다. 조선 선조 18년(1585)에 사명대사가 지금의 자리로 다시 옮겨지으면서 영은사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그 뒤 산불로 절이 모두 불탄 것을 순조 5년(1805)에 다시 지었다고 전한다. 영은사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옆에서 보았을 때 지붕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집이다.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다포식 건물은 보통 팔작지붕이나 우진각지붕집인데..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7호_원주 흥양리 마애불좌상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7호 _ 원주 흥양리 마애불좌상 (原州興陽里磨崖佛坐像) 수 량 : 1좌 지정일 : 1998.09.05 소재지 : 강원 원주시 소초면 흥양리 산1번지 시 대 ; 고려 초기 추정 강원도 원주시 치악산에 있는 입석사의 큰 길로부터 서북 방향으로 30m 떨어진 암벽에 조각되어 있다. 불상의 얼굴은 매우 도드라지게 새겼으며, 몸체는 낮게 새겨져 있다. 불상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균열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고, 얼굴은 풍만한 모습이며 전체적으로 눈·코·입의 비례가 좋다. 양 어깨에 걸친 옷자락은 다소 두꺼운 편인데, 옷주름은 간략화되어 있다.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고 있고, 왼손은 배 앞부분에 놓고 손바닥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1호_평창향교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1호 _ 평창향교 (平昌鄕校) 수 량 : 1동 지정일 : 1985.01.17 소 재 지 : 강원 평창군 평창읍 향교길 148 (하리)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최창민과 유생들이 효종 9년(1658)에 세운 이곳은 숙종 45년(1719) 영조 5년(1729)에 수리하였으며, 그 후에도 여러 차례 고쳤다. 또한 한국전쟁으로 인해 건물의 일부가 파손된 것을 1953년에 고쳤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2층 누각인 풍화루와 학생들이 공부하던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내삼문과 공자를 비롯하여 여러 성현들을 모시고 있는 대성전이 있다. 이 외에도 홍살문과 부속건물 3동이 있다. 앞쪽에는 배움의 공간이 있고, 뒤쪽에는 제사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