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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문화재자료 528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0호_나한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0호 _ 나한전 (羅漢殿) 수 량 : 1동 지정일 : 1985.08.14 소재지 :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615번지 선운사의 산내암자인 도솔암에 있는 법당이다. 정면3칸 측면1칸에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건물은 건축수법으로 보아 조선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나한전 내부에는 흙으로 빚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가섭과 아난이 협시하였고, 1910년 용문암에서 옮겨온 16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도솔암은 선운사의 산내암자로서 대웅전 서쪽 150m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원래는 여섯 도솔암이 있었으나 현재는 상하 2개의 도솔암만 남아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조선시대 도솔암 용문굴에 이무기가 살면서 주민들을 괴롭혔는데, 이를 쫓아내기 위해 인도에서 나한상(羅漢像..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82호_암치리 선각석불좌상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82호 _ 암치리 선각석불좌상 (岩峙里 線刻石佛坐像) 수 량 : 1구(軀) 지정일 : 2002.11.15 소재지 : 전북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 산38번지 시 대 : 고려말선초 이 불상은 우림정 뒤의 암벽 아래, 높이 약 3m의 타원형 석판에 선각되어 있는데, 석불의 크기는 높이 250㎝, 폭 110㎝ 정도이다. 석판은 두께가 20㎝ 정도로 아래쪽이 약간 두꺼운데, 윗부분은 보주형(寶珠形)으로 다듬어 몸광배 형태로 만들고, 편평한 앞면에는 원형 머리광배을 지닌 석불좌상 1구를 선각하였다. 얼굴에서부터 신체 아래부분에 이르기까지 선각으로만 처리하여 마치 그림을 그린 듯이 보인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고, 얼굴은 마멸이 되어 확실치 않지만 갸름한 얼굴에 반..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81호_문수사 석조승상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81호 _ 문수사 석조승상 (文殊寺 石造僧像) 수 량 : 1구(軀) 지정일 : 2002.11.15 소재지 : 전북 고창군 고수면 칠성길 135 (은사리) 시 대 : 고려말-조선초 이 석상은 현재 문수사 문수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일명 문수보살상으로 알려져 있다. 규모는 높이 167㎝, 머리높이 53㎝, 머리폭 27㎝, 신체폭 55㎝ 정도이다. 「문수사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승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건너가 청량산에서 기도를 거듭한 끝에 문수보살의 계를 깨닫고 돌아와 우연히 이 곳을 지나다 보니 산세가 당나라의 청량산과 비슷하여 굴속에 들어가 7일 기도를 하자 문수보살이 나타나서 이곳에 문수도량을 개설하였다고 한다. 석상은 돌로 만든 대좌 위에 세워져 있으나 무릎 이하 부분이 절단되었..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21호_영랑사범종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21호 _ 영랑사범종 (影浪寺梵鐘) 수 량 : 1개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남 당진군 고대면 진관로 142-52 (진관리), 영랑사 법당 안에서 예불을 드릴 때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높이 76㎝, 입 지름 52㎝의 조선시대 종이다. 영조 24년(1748)에 주조된 것이라는 명문이 남아있으며, 종 아래쪽에는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이 빙 둘러 기록되어 있다. 이 종은 일본 침략 때 경찰에 빼앗겼던 것을, 그 당시 주지였던 취암스님의 의지로 결국 되돌려 받았다고 전해오고 있다. 영랑사범종 (影浪寺梵鐘) 2023.10.22, 수덕사 근역성보관 글 문화재청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02호_천장사 칠층석탑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02호 _ 천장사 칠층석탑 (天藏寺 七層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시 천장사길 100 (고북면) 천장사 천장사 인법당 앞뜰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기단은 밑돌이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그 위로 지붕 모양의 맨 윗돌을 덮어두고 있는데, 그 폭이 탑신의 1층 몸돌과 거의 같다. 탑신부의 각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으며,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비율이 그리 크지 않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새겨두었다. 4층 지붕돌에서부터 7층 몸돌까지 놓인 돌들은 제자리가 아닌 듯 어색한 모습이며, 꼭대기에 있는 머리장식 또한 아래의 7층 지붕돌..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00호_범어사 영탱(호암 체정 진영)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00호 _ 범어사 영탱 (梵魚寺 影幁), 호암 체정 진영 수 량 : 9점 지정일 : 2018.01.31 소재지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 (청룡동, 범어사) 시 대 : 조선 후기 조선후기(19세기~20세기)에 그려진 고승의 진영 9폭이 일괄로 지정되었다. 전체적으로 19세기 진영의 특징인 벽면과 바닥을 분명하게 구분한 상하 2단 구도로 그려졌으며 앉은 자세, 고승이 손에 든 지물, 가사의 문양과 화문석의 문양 등에서는 세부적으로 차이가 난다. ◌ 범어사 금봉당대사(金峯堂大師) 진영은 금봉당 상문대사가 화문석 위의 의자에 향좌측을 향해 가부좌 자세로 앉아있다. 금봉당 대사의 오른쪽 팔 뒤 경탁 위에는『화엄경』, 『법화경』, 『반야경』이라 적힌 경전이 놓여 있다. 복식은 ..

회안대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52호_서산 숭덕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52호 _ 서산 숭덕사 (瑞山 崇德祠) 수 량 : 1동 지정일 : 1996.11.30 소재지 : 충남 서산시 부석면 숭덕사1길 49 (강당리) 서산 숭덕사는 조선 태조 넷째 아들인 회안대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회안대군은 조선 전기의 왕자로 이름은 방간이다. 조선왕조가 시작된 태조 1년(1392)에 회안군으로 봉해졌으며 태종 1년(1401)에 회안대군이 되었다. 제1차 왕자의 난에 정안군 방원을 도왔으며, 그 이듬해 제2차 왕자의 난이 실패하자 토산으로 유배되었다. 세종 1년(1419) 천명을 누리다가 홍주에서 죽었으며 시호는 양희(良僖)이다. 처음에는 회안대군의 위패를 부인 밀양 황씨의 묘 옆에 모셨으나 선조 40년(1607)에 왕명으로 부석면 강당리에 건물을 지어 모시고 숭..

천년고찰 기도 영험도량, 서산 부석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5호 _ 부석사 (浮石寺) 수 량 : 1동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사길 243 (부석면, 부석사)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의상대사가 지었으며 그 뒤 무학대사가 보수하였다고 전한다. 경내에는 극락전을 비롯하여 같은 건물로 연결된 심검당, 무량수각 등의 건물이 있으며, 극락전 앞에 안양루가 서해를 향하고 있다. 극락전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 고려시대의 건축 양식을 보이고 있는 건축물이다 부석사 (浮石寺) 표지판 천년고찰 기도 영험도량, 부석사의 유래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부석..

최치원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9호_부성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9호 _ 부성사 (富城祠) 수 량 : 1동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남 서산시 지곡면 산성내동길 47-17 (산성리) 신라 후기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최치원(857∼)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최치원은 경무왕 8년(868) 12세의 어린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하고 18세 때 급제하였으며 2년간 낙양을 유랑하며 시를 짓는데 몰두하였다. 중국에 머물면서 황소의 난 등을 직접 겪으며 귀국한 뒤 의욕을 가지고 이미 무너져가고 있던 신라 사회에 당에서 배운 경륜을 펴보려 하였다. 그러나 진골 중심의 귀족사회에서 6두품 출신이었던 최치원은 신분체계의 한계를 느껴 외직을 지원하였다. 대산군(지금의 전라북도 태인), 천령군(지금의 경상남도 함양), 부성군(지금..

충청남도 기념물 제132호_정산 향교

충청남도 기념물 제132호 _ 정산향교 (定山鄕校) 면 적 : 7,071㎡ 지정일 : 1997.12.23 소재지 : 충남 청양군 정산면 서정리 516-2번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정산향교를 세운 시기는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기록에 따르면 조선 전기부터 있던 것으로 보인다. 배우는 공간으로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였던 동재와 서재를 비롯하여 강학루와 전사청이 있고, 제사 공간으로 위패를 모시고 있는 대성전이 있다. 대성전 안쪽에는 공자와 그의 제자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학생을 많이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교육 기능은 사라지고 봄·가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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