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문화재자료

천년고찰 기도 영험도량, 서산 부석사

기리여원 2023. 10. 21. 08:09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5호 _ 부석사 (浮石寺)

 

수    량 : 1동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사길 243 (부석면, 부석사)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의상대사가 지었으며 그 뒤 무학대사가 보수하였다고 전한다.

 

경내에는 극락전을 비롯하여 같은 건물로 연결된 심검당, 무량수각 등의 건물이 있으며, 극락전 앞에 안양루가 서해를 향하고 있다.

 

극락전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 고려시대의 건축 양식을 보이고 있는 건축물이다

 

부석사 (浮石寺) 표지판

 

천년고찰 기도 영험도량,  부석사의 유래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부석사는 신라 28대 진덕여왕 4년(서기 650년) 의상대사께서 큰 뜻을 품고 당나라에 들어가 지장사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던 중 아랫마을에 사는 젊고 예쁜 선묘낭자라는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이 낭자는 의상대사를 흠모하게 되었으나 이를 모르는 의상대사는 열심히 공부를 한 후 마침내 문무왕 1년에 신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낭자는 떠나기 전날 의상대사를 찾아와 사랑을 고백하였고 다음날 의상대사는 불도를 다끄는 사람으로서 불가함을 알리자 물러갔다.

 

다음날 의상대사가 배를 타려하자 낭자가 결혼을 못하더라도 스님곁에서 나도 불도를 배우겠다고 말하자 의상대사는 꾸짖어 집으로 돌라갈 것을 권하자, 아무리 애원해도 의상대사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것을 안 낭자는 죽을 것을 결심하고 바다에 뛰어들고 말았다.

 

의상대사는 자기 때문에 죽은 낭자를 생각하며 괴로워하고 있는데 낭자는 용이되어 배를 따라 신라까지 왔으며 의상대사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고 있었다.

 

의상대사는 자기 떄문에 죽은 여인을 생각하고 그 여자의 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절을 세우려고 작정하고 절터를 찾던 중 산수가 수려하고 앞에 바다가 보이는 도비산 중턱에 절을 짓기로 하였다. 그러나 동네사람들은 절을 짓는 것을 반대하였으며 그 반대에도 절짓기를 계속하였다. 절이 다 지어져 갈 무렵 동네사람들은 쇠스랑을 들고와 절을 부수어 버리려 할 때 갑자기 큰 바위가 공중에서 둥둥 떠오더니 큰 소리로 "모두 듣거라 너희들이 계속 방해하면 이 바윗돌로 너희들 머리를 부수겠다. 지금 당장 물러가라" 하고 산이 흔들리도록 큰 소리로 꾸짖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도망가자 바위는 훌쩍 날아가 절이 보이는 바다에 떠있으면서 절짓는 공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돌을 물 위에 떠있다하여 부석(浮石)이라 이름을 지었으며 절이름도 부석사( 浮石寺)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도비산 부석사 (島飛山 浮石寺) 일주문

 

부석사 입구에 들어서면 일주문이 보인다. 일주문 뒷현판은 '삼일수심도량'으로 삼일 간 닦은 마음은 천년 보배가 된다는 뜻으로 마음을 닦는 도량에 들어섬을 나타냅니다

 

도비산 부석사 (島飛山 浮石寺) 와 삼일수심도량(三日修心道場) 현판

 

 

운거루(雲居樓)와 도비산다원

 

 

운거루(雲居樓)

 

 

차를 마실 수 있는 운거루(雲居樓) 

 

 

부석사 산사음악회 및 사찰음식 체함행사

 

 

 금강문 

 

 

송원당 설정 스님이 쓴 금강문 현판

 

도비산다원

 

 

도비산다원 전경

 

 

정진선원

 

 

부석사 장독대

 

 

부석사 칠층석탑

 

 

종무소와 심검당

 

 

부석사 현판

 

만공당 월면 스님이 70세에  쓴 부석사 현판

 

경허당 성우 스님이 쓴 심검당 현판

 

 

종무소와 심검당

 

 

안양루(安養樓)

 

극락전 아래에는 안양루(安養樓)가 있는데, 극락전이 부처님의 궁전이라면 안양루는 극락세계 대중들이 머무는 곳이 되겠습니다. 법회가 있을 때 법당에 공간이 부족하면 안양루에서 법회에 참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극락전(極樂殿)

큰 법당인 극락전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는 목룡장과 심검당은 누워있는 소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검당 아래의 약수는 우유(牛乳)약수라 부르고, 법당 옆의 큰 바위는 소뿔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법당 건너편에는 소가 마실 물이 흐르는 구수통(여물통)이 있는데, 이 구수통에 물이 계속 넘치면 부석사에서는 먹거리 걱정이 없다고 합니다.
마을이 전하는 이야기로는 100여 년 전에 부석사 약수가 끊어져 이상하게 여겨 스님들과 마을사람들이 부석(검은여)에 가보니 누군가 몰래 무덤을 썼기에 주인을 찾아 무덤을 파고나니 다시 약수가 솟았다고 한다. 그래서 부석사와 부석(검은여)간에 신령스러운 기운이 통하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극락전(極樂殿) 좌우측면

 

극락전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 고려시대의 건축 양식을 보이고 있는 건축물이다

 

극락전에 봉안한 아미타삼존불상

 

 

금종각과 화랑

 

 

금종각(金鐘閣)

 

금시조종은 근대 이후 한국종의 원형이 되는 쇠북형태의 신라종에서 벗어나 더 큰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변화된 종의 모습을 모색하였습니다. 한국종의 전통을 무시하지 않는 범위에서 금시조라는 한 마리 새의 모습을 주제로 삼아 종의 형상과 의미를 확대 변화시켰습니다.

 

설법전(說法殿)

 

1층 도서관과 세미나실, 2층 설법전으로 각종 불교 문화연구와 부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포교의 장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설법전(說法殿)

 

 

부석사 표지석

 

 

마애아미타여래석불(磨崖阿彌陀如來石佛) 전경

 

 

마애아미타여래석불(磨崖阿彌陀如來石佛)

서방 정토의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붑법을 설하여 중생을 구제하신다는 아미타여래 부처님을 새긴 곳은 산신각 아래에 위치해 있으며 창건설화에 나오는 검은여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모시게 되어 더욱 더 불자님들의 신심을 북돋아 주고 있습니다.

 

마애아미타여래석불에서 바라본 부석사와 서해풍경

 

 

용왕각(龍王閣), 산신각(山神閣), 선묘각(善妙閣)

 

법당 좌측으로 올라가면 산신각이 있습니다. 산신각에는 중앙에 산신님, 우측에 선묘낭자, 좌측에 용왕님을 모셨습니다. 산신각 뒤편에는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어서 거북바위라 하며 이곳에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중앙에 산신님, 우측에 선묘낭자, 좌측에 용왕님

 

 

산신각에서 바라본 부석사 후경

 

 

만공토굴로 올라가는 돌계단

 

 

만공토굴(滿空土窟)

 

조선 후기의 일제강점기의 선승이며 주로 덕숭산에  머물며 선불교의 진흥을 위해 힘쓰셨던 만공스님께서 수행하신 토굴입니다.

 

향적당(香積堂)

 

 

무르러가는 부석사의 가을 정취 

 

2023.10.16, 서산시 부석면, 부석사

글 문화재청, 팜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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