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문화재자료

최치원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9호_부성사

기리여원 2023. 10. 20. 06:44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9호 _ 부성사 (富城祠)

 

수    량 : 1동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남 서산시 지곡면 산성내동길 47-17 (산성리)

 

신라 후기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최치원(857∼)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최치원은 경무왕 8년(868) 12세의 어린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하고 18세 때 급제하였으며 2년간 낙양을 유랑하며 시를 짓는데 몰두하였다. 중국에 머물면서 황소의 난 등을 직접 겪으며 귀국한 뒤 의욕을 가지고 이미 무너져가고 있던 신라 사회에 당에서 배운 경륜을 펴보려 하였다. 그러나 진골 중심의 귀족사회에서 6두품 출신이었던 최치원은 신분체계의 한계를 느껴 외직을 지원하였다. 대산군(지금의 전라북도 태인), 천령군(지금의 경상남도 함양), 부성군(지금의 충청남도 서산) 등지의 태수를 지냈으며 당시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려 시무 10조를 진성여왕에게 올리기도 했다. 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의 전환기에 살았던 대표적 지식인이다.

 

조선선조 때 그의 영정을 모시고 그를 추모하는 유림들이 ‘도충사’란 이름으로 사당을 세웠다. 흥선대원군 때 훼손되었다가 순종 1년(1907)에 새단장 하였고, 1913년 당시 서산군수가 태수로 지냈던 곳의 명칭을 따라 ‘부성사’라고 이름을 바꾸고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외삼문, 내삼문, 동재, 서재 등의 부속 건물이 있고 그가 직접 쓴 ‘과선각’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부성사 (富城祠) 표지판

 

 

 부성사 (富城祠) 전경

 

 

 부성사 (富城祠) 외삼문(外三門)

 

 

文昌侯(孤雲崔先生遺墟碑(문창후고운최선생유허비)

 

 

공덕비와 기념비군

 

 

후손이 거주하면서 부성사를 관리하는 관리사

 

 

부성사 (富城祠) 외삼문(外三門)

 

 

부성사(富城祠) 동재(東齋)

 

 

동재에 걸려 있는 세이암(洗耳嵒) 현판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병계천변(屛溪川邊)에 암각(岩刻)된 고운선생(孤雲先生) 친필(親筆) 금석문(金石文)

(한서대학교 오충희교수의 탁본임)

 

부성사(富城祠) 서재(西齋)

 

 

부성사 (富城祠) 내삼문(內三門)

 

 

부성사 (富城祠) 

 

신라 후기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최치원(857∼)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

 

부성사 (富城祠) 현판

 

 

부성사 (富城祠) 좌우측면

 

부성사의 건물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의 목조건축물이다.

 

최치원(崔致遠)선생 의 영정

 

2023.10.16.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 부성사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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