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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충청남도 68

충청남도 기념물 제86호_부여용정리소룡골백제건물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86호 _ 부여용정리소룡골백제건물지 (扶餘龍井里소룡골百濟建物址) 면   적 : 5,838㎡지정일 : 1992.12.08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용정리 405-12번지 4필 부여읍 외곽에 나성 바깥에서 발견된 백제 건물터이다.건물터는 동남쪽을 향해 남북쪽으로 2곳이 배치되어 있었다. 남쪽 건물터는 자연석을 잘 다듬어 2∼3단의 기단을 마련하고 그 앞에는 돌을 납작하게 깔았으며, 북쪽 건물자리는 남쪽과 나란한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두 건물터는 돌을 쌓은 솜씨와 출토된 유물들로 보아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연꽃무늬 수막새를 비롯하여 민무늬기와, 사격자무늬를 새긴 기와조각, 지붕 양 끝에 놓았던 치미조각, 기와조각이 있고 토기로는 자배기, 굽다리..

충청남도 기념물 제41호_부여쌍북리북요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41호 _  부여쌍북리북요지 (扶餘雙北里北窯址) 면   적 : 331㎡지정일 : 1982.12.31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641-5번지 2필 요지란 자기나 기와, 그릇들을 만들어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부여도서관 곁에 있는 쌍북리 가마터는 일찍부터 4각형, 원형의 건물 주춧돌이 드러나 있었고, 연꽃무늬 수막새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절터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백제 토기 또는 기와나 벽돌을 굽던 곳으로 밝혀졌다. 연꽃무늬 와당, ‘대당(大唐)’이라 쓰여진 와당이 출토되었으며 인(寅), 병(丙), 사(斯), 오(午), 지(止)의 도장이 찍혀 있는 기와조각이 많이 출토되었다. 아울러 백제 유물로 추정되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네모난 모양의 주춧돌이 발견되었다.부여쌍북리북요..

충청남도 기념물 제54호_부여 중정리백제건물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54호 _ 부여중정리백제건물지 (扶餘中井里百濟建物址) 면    적 : 6,132㎡지정일 : 1985.07.19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왕중로103번길 27-5 (중정리) 이곳은 백제의 유물이 출토되는 건물터로, 왕포리와 중정리의 경계인 구릉의 능선상에 있다.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도성 남쪽의 언덕이므로 외곽의 방어를 위한 관청이거나 절터가 있었던 자리로 추정된다. 직사각형의 평탄한 대지를 이루고 있으며, 8엽 단판연화문 와당과 서까래끝기와, 주춧돌이 발견된 바 있고 지금도 백제 기와조각과 토기조각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부여중정리백제건물지 (扶餘中井里百濟建物址) 표지판 부여중정리백제건물지 (扶餘中井里百濟建物址) 표지석 부여중정리백제건물지 (扶餘中井里百濟建物址)  부여중정리백제건..

충청남도 기념물 제25호_전득우 묘

충청남도 기념물 제25호 _ 전득우묘 (田得雨墓) 수    량 : 1기지정일 : 1980.10.23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봉정리 산 12-1 고려말 조선초의 부윤(府尹:종 2품의 관직)인 전득우 장군의 묘소이다.세종 9년(1427) 당시 의금부제조에 재직 중이던 아들이 나라에 큰 공을 세워 원종공신이 되었으며, 그 부친에게도 가선대부 한서부윤의 벼슬이 내려졌고 왕이 직접 묘비를 하사하였다.사각으로 다듬은 화강암으로 봉분의 아래쪽을 둘렀으며, 봉분 주위에는 2단의 낮은 돌담을 쌓았다. 앞쪽에 서 있는 묘비에는 원래는 부인의 묘인데 전득우가 늦게 죽었으므로 후에 합장하였다는 내용을 적고 있다. 이 묘비는 왕이 하사한 것으로, 국가에서 공을 세운 신하에게 행하는 준예장(準禮葬)으로서 그 예가 희귀하..

충청남도 기념물 제185호_당진 이의무의 묘 및 신도비

충청남도 기념물 제185호 _ 당진 이의무의 묘 및 신도비 (唐津 李宜茂의 墓 및 神道碑) 면    적 : 7,201㎡지정일 : 2010.12.30소재지 : 충청남도 당진시 능안길 160 (송산면, 제각)소유자(소유단체) : 덕수이씨 종친회   는 묘역은 덕수이씨 가문의 묘역으로 이의무를 비롯하여 약 13기의 묘소가 있으며 이의무 묘는 곡장을 두르고 있으며 매장형태는 단장(單葬), 분묘의 수량은 쌍분(雙墳)이며, 봉분의 외형은 원분(圓墳)임. 이의무 묘 규모는 둘레 약 18m, 높이 2m, 龍尾는 약 3m, 곡장은 약 30m임. 묘역은 계체석이 없이 계절과 배계절로 나뉘었으며 계절에는 상석이 있고, 배계절에는 신비(新碑)와 동자상 1쌍, 신도비와 귀부가 있음.는 우리 도내에 분묘로 곡장을 두른 묘는 매우..

심훈선생 고택, 당진 필경사

충청남도 기념물 제170호 _ 당진 필경사 (唐津 筆耕舍) 수   량 : 1동지정일 : 1997.12.23소재지 : 충청남도 당진시 상록수길 97 (송악읍, 당진필경사, 심훈기념관) 일제시대 문인인 심훈이 1934년 직접 설계하여 지은 집이다.심훈은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그의 작품은 민족주의와 저항의식을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1935년 농촌계몽소설로 유명한 대표작인 ‘상록수’를 썼다.필경사는 한때 교회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그의 장조카인 고 심재영 옹이 다시 사서 관리하다가 당진군에 기증하였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당진 필경사 표지판 심훈선생고택(沈熏先生故宅) 표지석 심훈기념관 월요일 휴관임.1930년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 '  필경사..

충청남도 기념물 제52호_남이흥장군묘일원. 충장사

충청남도 기념물 제52호 _ 남이흥장군묘일원 (南以興將軍墓一圓) 면    적 : 3,776㎡지정일 : 1984.07.26소재지 : 충청남도 당진시 충장1길 53-24 (대호지면) 도이리374-2소유자(소유단체) : 의령남씨 종친회  조선 중기 무신 성은(城隱) 남이흥(1567∼1627) 장군의 묘이다. 장군과 부인 하동 정씨, 장군의 아버지 남유의 묘가 한 자리에 모셔져 있다.남이흥은 선조 31년(1598) 정유재란 때 아버지가 왜적에게 총을 맞고 죽자, 학업을 포기하고 활쏘기와 말타기에 전념하여 선조 35년(1602)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그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인조 5년(1627) 정묘호란 때 평안도 안주에서 청나라 군대와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자 자결하였다. 죽은 후에 충절의 인물로 여겨져 벼슬이 ..

충청남도 기념물 제126호_석성향교

충청남도 기념물 제126호 _ 석성향교 (石城鄕校) 면    적 : 3,260㎡지정일 : 1997.12.23소재지 : 충남 부여군 석성면 석성리 646-2번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석성향교를 처음 지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조선 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인조 1년(1623)에 다시 세웠고 이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건물은 공부하는 공간인 명륜당을 앞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뒤쪽에 둔 전학후묘의 배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안쪽에는 공자와 제자들,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외의 건물로 학생들의 기숙사로 쓰인 동재를 비롯하여 내삼문, 외삼문, 수직사 등이 있다...

느티나무와 공존하는 예산 대흥향교 은행나무

충청남도 기념물 제160호 _ 예산 대흥향교 은행나무 (禮山 大興鄕校 은행나무) 수량/면적 : 1주(3,463㎡)지정일 : 2002.08.10소재지 : 충남 예산군 대흥면 교촌향교길 88 (교촌리) 예산 대흥향교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수령 약 600여년의 은행나무로서 원줄기의 중앙 분지 위에 느티나무가 뿌리를 내려 성장, 공생하고 있는 특이한 경우이다. 수형이 장엄하며, 약 300여년 전부터 성황제를 거행하여 오는 등 민속적인 측면과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보존가치가 크다. 지상에서 3m지점에서 4개의 가지가 분지되었고, 수형이 평정형을 이루며 웅장하고 장엄하다. 분지된 곳의 중앙에 수령 약 100년 정도의 느티나무(직경 30㎝)가 뿌리를 내려 공생하고 있어 마치 한 그루처럼 보이는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

충청남도 기념물 제160호_예산 대흥향교 은행나무

충청남도 기념물 제160호 _ 예산 대흥향교 은행나무 (禮山 大興鄕校 은행나무) 수량/면적 : 1주(3,463㎡) 지정일 : 2002.08.10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대흥면 교촌향교길 88 (교촌리) 예산 대흥향교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수령 약 600여년의 은행나무로서 원줄기의 중앙 분지 위에 느티나무가 뿌리를 내려 성장, 공생하고 있는 특이한 경우이다. 수형이 장엄하며, 약 300여년 전부터 성황제를 거행하여 오는 등 민속적인 측면과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보존가치가 크다. 지상에서 3m지점에서 4개의 가지가 분지되었고, 수형이 평정형을 이루며 웅장하고 장엄하다. 분지된 곳의 중앙에 수령 약 100년 정도의 느티나무(직경 30㎝)가 뿌리를 내려 공생하고 있어 마치 한 그루처럼 보이는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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