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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전북특별자치도 13

동아일보 창시자, 인촌선생생가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39호 _ 인촌선생생가 (仁村先生生家) 수량/면적 : 일원지정일 : 1977.12.31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인촌안길 32-1 (부안면, 인촌선생 생가)시   대 : 1880년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이었던 인촌 김성수(1891∼1955)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또한 인촌의 동생이자 민족자본 육성의 대표자인 수당 김연수 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김성수는 경성방직주식회사와 동아일보를 세웠고,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세웠다.큰댁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작은댁 안채는 두 분의 조부인 김요협 옹이 세웠고, 큰댁 사랑채의 문간채는 고종 30년(1893) 인촌 선생의 양부인 김기중 옹이 지었다. 작은댁 사랑채는 1903년 두 분의 아버지 김경중 옹이 지은 것이다. 190..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49호_고창 상금리 지석묘군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49호 _ 고창 상금리 지석묘군 (高敞 上金里 支石墓群) 지정일 : 2021.09.10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상금리시   대 : 청동기시대 고창 상금리 지석묘군은 가릿재부터 상금리 입구까지 2.7㎞ 구간에 열상으로 9개 군집이 확인되며, 이 중 이번 지정대상인 상금리 일원의 3개 군집에는 87기가 분포하여 지석묘의 밀집도가 높고 유적의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고인돌의 구조는 기반식(基盤式)이 다수를 차지하고 개석식(蓋石式)도 확인되며, 덮개돌[上石]은 방형, 장방형, 제형, 타원형 등 다양한 형태이다. 고임돌[支石]은 지상석곽형, 주형, 괴석형, 위석형 등 다양하며, 특히 지상 석곽과 주형 지석 등 기반식을 중심으로 하는 고창 고인돌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지정대..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46호_고창 전봉준 생가터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46호 _ 고창 전봉준 생가터 (高敞 全琫準 生家址) 수량/면적 : 1필지 2,813㎡지정일 : 2021.04.09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63시   대 : 조선후기 전봉준 생가터는 천안전씨 족보인 『병술보』에 대한 학술 고증을 통해 전봉준(全琫準, 1855∼1895) 장군이 1855년 12월 3일 죽림리 당촌 마을에서 태어나 13세까지 살았던 곳으로 확인되며, 촌로들의 증언 내용과 일치하고 있는 장소이다. 한국 역사상 최대의 혁명적 사건인 동학농민혁명을 도모하고 이끈 최고 지도자가 태어나고 유년기를 보낸 상징적인 장소이다.고창 전봉준 생가터 표지판 고창 전봉준 생가터 고(故)신영복 교수가 쓴 ‘새야새야 파랑새야’가 새겨진 돌비석 고창 전봉준 생가터 고창 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65호_고창 부곡리 고인돌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65호 _ 고창 부곡리 고인돌 수량/면적 : 1기, 30㎡지정일 : 2020.10.23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부곡리 429시   대 : 청동기시대 고창 부곡리 고인돌은 강촌마을 서쪽 고수천변의 하안단구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고인돌이 위치한 곳은 해발 45m내외의 독립된 구릉으로 주변을 조망하기에 탁월한 지역이다. 강촌고인돌의 남쪽으로 약 1.5m 떨어진 곳에 부곡리 고인돌군이 위치하고 있다. 부곡리 강촌 고인돌은 1984년 학계에 처음 보고된 이래, 2018년 고수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묘역시설 을 갖춘 탁자식 고인돌로 확인되었다. 부곡리 강촌고인돌은 탁자식고인돌이면서 묘역(제단)을 갖추고 있어 특이한 사례이다. 이 고인돌은 ..

지극한 효행에 감동하여 생긴 효감천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3호 _ 효감천 (孝感泉) 수    량 : 1정지정일 : 1980.03.08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 산 39시    대 : 조선시대 이 샘은 조선 성종 4년(1473) 효행이 지극했던 오준(1444~1494)공의 지성에 하늘이 감동하여 생긴 것이라 전한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모친이 병으로 위독하자 손가락을 베어서 입에 주혈하여 연명하게 하고, 종기로 신음하자 입으로 빨아 내어 낫게 하였으며 상을 당하자 취령산 아래에 장사 지내고 여막을 지어, 시묘살이를 하는데 효성에 감동하여 저녘마다 호랑이가 사슴을 물어와 제전을 도왔고, 근처에 샘이 없어 들을 건너 수산에서 물을 길러와 제수로 사용하던 어느날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하늘이 갑자기 천둥과 벼락이 치더니 여..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3호_간재선생 유지, 계양서원 향사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3호 _ 간재선생 유지 (艮齋先生 遺址) 수량/면적 : 일원 지정일 : 1974.09.27 소재지 : 전북 부안군 계화면 계화리 8번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전우(1841∼1922)선생이 학문을 연구하던 곳이다. 선생은 임헌회 문하에서 20년간 학문을 배웠으며, 고종 19년(1882) 벼슬에 올랐으나 곧 사임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1910년 국권이 일제에 강탈되자 선생은 통분해하며 스스로 귀향하여 도학으로 국권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의병을 일으키지 않고 도학만을 이야기한다고 하여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1922년까지 이곳에서 도학을 가르치며 항일정신을 고취하여 민족정기를 진작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전우 선생의 성리학적 연구 업적은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유..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2호_선운사 백파율사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2호 _ 선운사 백파율사비 (禪雲寺 白坡律師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86.09.09 소재지 :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 (삼인리) 시 대 : 조선시대 철종9(1858 백파율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이 비석은 선운사 입구로 들어서서 오른쪽 숲 속의 부도 밭에 세워져 있다. 조선 철종 9년(1858)에 건립한 것으로 비명(碑銘)은 조선시대의 대명필가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필적이다. 조선조의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오랜 침체기를 헤치며 조선후기 불교의 참신한 종풍(宗風)을 일으킨 화엄종주(華嚴宗主) 백파율사의 업적이 적혀 있는 이 비석은, 네모난 받침 위에 몸통을 세우고 지붕돌을 씌운 모습으로 되어 있다. 선운사 백파율사비 표지판 선운사 백파율사비..

전라북도 기념물 제117호_고창 하고리 왕버들나무숲

전라북도 기념물 제117호 _ 고창 하고리 왕버들나무숲 (高敞 하고리 왕버들나무숲) 수량/면적 : 88주(53,314㎡) 지정일 : 2002.08.02 소재지 : 전북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 123번지 외 37필지 성송면 하고리 삼태마을 앞 천변 양옆으로 하천뚝을 따라 수령2~3백년이 됨직한 귀목나무와 은행나무, 소나무, 벚나무, 왕버들 나무등 12종에 90여 그루의 나무숲이 있다. 마을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앞산에 올라가 마을 형국을 보니 마을이 배 형상인데 마을앞에 거친 대산천이 흐르고 있어 배를 단단히 매 놓지 않으면 냇물에 떠 내려갈 형국이라서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이 배를 매어둘 말뚝으로 사용할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라 한다. 마을사람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을앞 하천 뚝에 심어져 잇는 나무..

전라북도 기념물 제111호_산수리 지석묘

전라북도 기념물 제111호 _ 산수리지석묘 (山水里支石墓) 수 량 : 1기 지정일 : 2001.09.21 소재지 : 전북 고창군 성송면 산수리 544번지 시 대 : 청동기시대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는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산수리 지석묘는 고창군 산수리 방축마을 도로 건너 동쪽 100여m 지점 밭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네모난 모양의 넓고 큰 덮개돌을 5개의 굄돌로 받치고 있는 형태이다. 남북 방향으로 된 화강암의 덮개돌을 받치는 굄돌은 북쪽에 3개, 남쪽에 2개가 있는데, 땅에서 70∼1..

전라북도 기념물 제83호_타루비

전라북도 기념물 제83호 _ 타루비 (墮淚碑) 수량/면적 : 일원 지정일 : 1993.08.31 소 재 지 : 전북 장수군 천천면 장판리 46번지 장척 마을의 산 기슭 도로가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현감을 따라 순절한 통인(通引:관아에 딸려 잔심부름을 하던 벼슬아치)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조선시대 숙종 4년(1678) 당시 장수현감을 지내던 조종면은 민정시찰을 나섰다가 이곳 산비탈길을 지나게 되었다. 요란한 말발굽 소리에 놀라 숲 속에 있던 꿩이 소리치며 날아오르고, 이로인해 현감의 말이 덩달아 놀라 한쪽 발을 잘못 디디게 되어 결국 벼랑 밑으로 떨어져 말과 함께 현감도 목숨을 잃고 말았다. 현감을 뒤따르던 통인이 이 광경을 보고는 자신의 잘못으로 현감이 죽게 되었다고 통곡하며 손가락을 깨물어 벼랑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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