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기념물 15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5호_삼거리 고인돌군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5호 _ 삼거리 고인돌군 (三巨里 고인돌群) 수량/면적 : 9기 / 177,577㎡ 지정일 : 1999.04.26 소재지 : 인천 강화군 하점면 삼거리 산120번지 일원 시 대 : 청동시대 삼거리 진촌마을 앞산인 고려산 서쪽 능선 상에 북방식 고인돌무덤 9기가 일렬로 분포되어 있다. 어떤 고인돌무덤은 덮개돌 위에 작은 구멍이 여러 개 패여 있는데 이러한 모양을 남한에서는 성혈이라고 하고 북한에서는 별자리와 연관 짓고 있다. 작은 구멍이 고인돌무덤의 크기는 굄돌을 높이 2.80m, 너비 0.90m, 두께 0.38m이다. 고인돌무덤 가까이에는 돌을 떼낸 흔적이 남아 있는 채석장이 있다 삼거리 고인돌군 표지판 이 곳에서 삼거리 고인돌군까지는 700m입니다. 이 곳에 주차를 하고 삼거리 고..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7호_강화 인산리 석실분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7호 _ 강화 인산리 석실분 (江華 仁山里 石室墳) 수량/면적 : 1기 / 402.6㎡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인산리 산 71 고려시대의 석실분으로, 혈구산 서쪽 퇴모산 남쪽 8부 능선에 있다. 이 무덤은 구릉의 경사진 면에 반지하식으로 축조된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돌과 깬 돌을 이용하여 직사각형의 네모상자 형태로 돌방(석실)을 만들고 그 앞에는 경사면을 따라 3단의 축대를 쌓아 묘역을 구성했을 것으로 짐작되나 현재는 축대가 모두 붕괴되어 묘역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석실을 중심으로 넓은 지역에 돌무지가 형성되어 이곳이 인산리 석실분의 묘역이었음을 짐작할 따름이다. 천장은 크고 납작한 판돌을 덮은 납작천장(평천장..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7호_오상리 고인돌군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7호 _ 오상리 고인돌군 (鰲上里 고인돌群) 수량/면적 : 12기 / 44,622㎡ 지정일 : 1999.04.26 소재지 : 인천 강화군 내가면 오상리 산125번지 일원 시 대 : 청동시대 오상리 고인돌은 1972년에 1기가 알려져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나 그 이후에 자세한 보고는 없다가 1990년대 초에 『강화도 고인돌무덤(지석묘)조사연구』를 통해 이 고인돌이 있는 오상리 산125번지 일대를 자세하게 조사하여 잡목과 잡초가 우거진 사이에서 10기에 가까운 고인돌을 더 찾아냈다. 이 지역의 고인돌은 덮개돌은 부분적으로 손질한 흔적이 있고, 평면 형태는 모두 판돌형(板石形)이다. 덮개돌의 크기는 기념물로 지정된 내가 고인돌이 길이 335㎝로 가장 크고 나머지는 길이가 130∼260..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0호_미루지 돈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0호 _ 미루지 돈대 (彌樓只 墩臺) 수량/면적 : 1곽 / 39,836㎡ 지정일 : 1999.03.29 소재지 : 인천 강화군 화도면 여차리 170-2번지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영토 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한 초소이다. 대개 높은 평지에 쌓아두는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 두는 시설물이다. 이 돈대는 높이 2.2m, 둘레 128m의 규모로, 성곽은 돌을 이용해 직사각형으로 쌓고, 해안쪽을 향해 4개소의 포좌(포놓는 자리)를 설치해 놓았다. 성곽 위에는 몸을 숨길 수 있도록 낮게 쌓았던 담의 흔적만 남아 있다. 출입구는 윗부분이 무지개 모양을 이루고 있어 다른 돈대와는 다른 독특한 모습이다. ..

카테고리 없음 2022.02.11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8호_건평돈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8호 _ 건평 돈대 (乾坪 墩臺) 수량/면적 : 1곽 / 2,600㎡ 지정일 : 1999.03.29 소재지 : 인천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 산39번지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토내 접경지역 이나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해 두는 초소이다. 대개 높은 평지에 쌓아두는데, 밖은 성곽을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 두는 시설물이다. 이 돈대는 정포보 소속의 돈대로서, 6조(六朝)에 올리는 조운의 감시소 역할과 국토방위의 임무를 겸하였다고 한다. 조선 숙종 5년(1679) 윤이제가 강화유수로 있을 때, 병조판서 김석주의 명을 받아 이 돈대를 설치하였다고 전한다 건평 돈대 표지판 이 곳 주변에 주차를 하고 직진하면 건평돈대를 볼 수 있습니다. ..

카테고리 없음 2022.02.10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7호_망양돈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7호 _ 망양 돈대 (望洋 墩臺) 수량/면적 : 1곽 / 2,026.0㎡ 지정일 : 1999.03.29 소재지 : 인천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680번지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쌓은 소규모 관측·방어시설이다. 병사들이 돈대 안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외적의 척후 활동을 비롯한 각종 수상한 정황을 살피고 대처한다. 적이 침략할 때는 돈대 안에 비치된 무기로 방어전을 펼친다. 1679년(숙종 5) 5월에 완성된 48돈대에 이후 5개 돈대가 추가로 지어졌다. 48돈대는 황해도·강원도·함경도 승군 8,900명과 어영청 소속 어영군 4,262명이 80일 정도 걸려서 쌓았다. 돈대 축조를 기획하고 감독한 이는 병조판서 김석주였고 실무 총괄은 강화유수 윤이제였다. 망양돈대는 1679년(숙종 5)..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9호_장곶돈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9호 _ 장곶돈대 (長串墩臺) 수량/면적 : 1곽 / 1,328.6㎡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 113번지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토 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해 두는 초소이다. 대개 높은 평지에 쌓아두는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 둔다. 이 돈대는 자연적인 지형을 이용하여 그 위에 작은 요새를 만든 것이다. 장곶돈대는 1679년(숙종 5)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긴곶돈대’라고도 불린다. 해안으로 돌출된 지형에 자리 잡아서 관측과 방어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내부 지름이 31m인 원형 구조로 둘레가 128m, 석벽 높이 210㎝~350㎝이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1호_북일곶 돈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1호 _ 북일곶 돈대 (北一串 墩臺) 수량/면적 : 1곽 / 986㎡ 지정일 : 1999.03.29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 산 361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토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한 초소이다. 대개 높은 평지에 쌓아두는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 두는 시설물이다. 장곶보의 관리하에 있었던 이 돈대는 높이 2.5m, 둘레 120m 의 규모를 지닌 직사각형으로, 포좌(포를 놓는 자리) 4곳과, 치첩 32개소를 두었다. 성곽 위에는 몸을 숨길수 있도록 낮게 쌓았던 담의 흔적만 남아 있다. 조선 숙종 5년(1679) 윤이제가 강화유수로 있을 때 설치한 것으로, 함경도·황해도·강..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2호_용진진, 좌강돈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2호 _ 용진진 (龍津鎭) 수량/면적 : 1곽 / 5,503.2㎡ 지정일 : 1999.03.29 소재지 : 인천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215번지 진이란 군인이 머물러 있던 무장 성곽도시를 이른다. 용진진은 조선시대 각 진에 배치되었던 병마만호의 관리하에 있었던 곳으로, 101명의 병력이 주둔해 있었다 한다. 포좌(포를 놓는 자리) 4개소, 총좌(총을 놓는 자리) 26개소의 시설물이 있었으나 석축 대부분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윗부분이 무지개 모양을 이루고 있는 출입문 2곳만이 남아 있었는데, 1999년 그 위로 누각을 새로이 복원해 놓았다. 조선 효종 7년(1656)에 축조되었으며, 가리산돈대·좌강돈대·용당돈대 등 3개의 돈대를 관리하였다고 한다. 용진진 표지판 용진진 용진진 용진..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0호_강화전성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0호 _ 강화전성 (江華塼城) 수량/면적 : 약 270m(7,176.4㎡)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 강화군 불은면 오두리 563번지 강화전성은 고려 고종이 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한 뒤 해안 방어를 위해 적북돈대로부터 초지진까지 약 23km에 걸쳐 쌓은 강화 외성의 일부 구간을 조선 영조 때 벽돌로 쌓은 성이다. 강화외성은 조선 광해군 때부터 숙종 대에 이르기 까지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특히 영조 때에는 강화유수 김시혁(金始爀)의 건의에 의해 1742년(영조 18)부터 1744년(영조 20)까지 오두돈대 주변의 외성을 개축하면서 벽돌을 이용하여 쌓았다. 이 성을 강화전성이라 한다. 현재 오두돈대 주변에는 당시 쌓은 전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