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문화재자료 7

고려시대의 사찰인 원층사 터로 추정,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9호_원층사지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9호 _ 원층사지 (原層寺址) 수량/면적 : 일원/7,339㎡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 강화군 하점면 이강리 산177번지 별립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이 절터를 마을 사람들이 아직도 원층골이라 부르고 있는 사실로 보아 강도지에 언급된 원층사터임을 알 수 있다. 사찰의 규모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석재유물로 미루어 꽤 큰 사찰로 생각된다. 불상은 보이지 않지만 큼직한 연꽃무늬 대좌가 남아 있어서 석불상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석탑 부재들도 꽤 많이 남아 있는데 특히 석탑 옥개석은 모두 남아 있으며, 3단의 옥개받침이나 독특한 수법은 고려시대의 작품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강도지』의 기록대로 고려 조정이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던 시기의 사찰로..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1호_전등사 대웅보전 후불탱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1호 _ 전등사 대웅보전 후불탱 (傳燈寺 大雄寶殿 後佛幀) 수 량 : 1폭 지정일 : 2002.12.23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온수리) 시 대 : 1916년 전등사 대웅보전 목조삼존불좌상의 후불탱으로,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려 액자나 족자 형태로 만들어지는 불화를 말한다. 1916년에 제작된 그림으로 한 폭에 석가와 약사, 아미타를 그린 일폭삼세불화(一幅三世佛畵)이다. 전체적으로 황토색과 진한 녹색, 밝은 벽돌색의 색 배합을 보이고 있으며, 얼굴이나 의습에는 20세기 초기에 경기도 일대에서 유행했던 서양화식 음영법이 가해진 그림이다 전등사 대웅보전 후불탱 고산(古山) 축연(竺演) 스님이 그린 전등사 대웅보전 후불탱 강화 전등사 대웅보전 글 ..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0호_선수돈대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0호 _ 선수돈대 (船首墩臺) 수량/면적 : 1기 (3,187㎡) 지정(등록)일 : 1995.03.02 소 재 지 : 인천 강화군 화도면 내리 1831번지 외 1필지 돈대란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영토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해 두는 초소이다. 보통 높은 평지에 쌓아두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둔다. 특히 강화도에 있는 돈대들은 조선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 강화도가 함락되자, 이에 놀란 조정에서 해안 경비를 튼튼히 하기 곳곳에 쌓아두도록 한 것이다. 이 돈대는 당시 병조판서를 지내던 김석주의 명을 받아 쌓은 49돈대 중 하나로, ‘검암돈대’라고도 불리운다. 일부는 둥글게, 일부는 각이..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8호_무태돈대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8호 _ 무태돈대 (無殆墩臺) 수량/면적 : 1곽/1,191.1㎡ 지정일 : 1999.03.29 소재지 : 인천 강화군 화도면 창후리 산151-2번지 돈대란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영토 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해 두는 초소이다. 보통 높은 평지에 쌓아 두는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 둔다. 특히 강화도에 있는 돈대들은 조선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 강화도가 함락되자, 이에 놀란 조정에서 해안 경비를 튼튼히 하기 곳곳에 쌓아두도록 한 것이다. 창후리 선착장에서 북쪽으로 난 비포장길을 따라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 이 돈대는 해안을 따라 직사각형으로 길게 쌓았다. 강화유수..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1호_망월돈대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 11호 _ 망월돈대 (望月墩臺) 면 적 : 1,583.1㎡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 강화군 하점면 망월리 2107번지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쌓은 소규모 관측·방어시설이다. 병사들이 돈대 안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외적의 척후 활동을 비롯한 각종 수상한 정황을 살피고 대처한다. 적이 침략할 때는 돈대 안에 비치된 무기로 방어전을 펼친다. 망월리에 있는 이 돈대는 40∼120㎝의 돌을 직사각형으로 쌓아 올린 것으로, 성곽 위로는 흙벽돌로 낮게 쌓은 담장이 둘러져 있었으나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망월돈대는 1679년(숙종 5)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진무영에서 직접 관할하는 영문 소속 돈대였다. 방형구조로 둘레 124m, 석벽의 높이는 180~3..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7호_화도돈대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7호 _ 화도돈대 (花島墩臺) 수량/면적 : 1곽/1,263㎡ 지정일 : 1999.03.29 소재지 : 인천 강화군 선원면 연리 54번지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쌓은 소규모 관측·방어시설이다. 병사들이 돈대 안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외적의 척후 활동을 비롯한 각종 수상한 정황을 살피고 대처한다. 적이 침략할 때는 돈대 안에 비치된 무기로 방어전을 펼친다. 1679년(숙종 5) 5월에 완성된 48돈대에 이후 5개 돈대가 추가로 지어졌다. 48돈대는 황해도·강원도·함경도 승군 8,900명과 어영청 소속 어영군 4,262명이 80일 정도 걸려서 쌓았다. 돈대 축조를 기획하고 감독한 이는 병조판서 김석주였고 실무 총괄은 강화유수 윤이제였다. 화도돈대는 1679년(숙종 5)에 쌓은 4..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5호_김취려 묘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5호 _ 김취려 묘 (金就礪 墓) 수량/면적 : 1기(11,107㎡) 지정일 : 2010.12.06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하일리 산 71 고려 후기의 장군 김취려의 묘이다. 그는 고려 후기 예부시랑을 지낸 김부(金富)의 아들로 본관은 언양이며, 음서(蔭敍)를 통해서 정위(正尉)에 임명되었다. 1216년 거란군이 청천강 북쪽을 약탈하자 장군은 앞장서서 싸웠다. 1217년 5월 거란군이 한강 이남을 공격하자 박달재에서 크게 무찔렀다. 1218년 7월에도 거란군의 침략을 막았고, 이듬해 2월에는 마침내 강동성(江東城)을 함락하고, 거란군을 완전히 무찔렀다. 1232년에는 벼슬이 최고관직인 문하시중(門下侍中)까지 올랐으며, 위열공(威烈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사람됨이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