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공산성 문화재 4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7호_공북루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7호 _ 공북루 (拱北樓) 수 량 : 1동 지정일 : 1976.01.08 소재지 : 충남 공주시 금성동 165번지 시 대 : 36년(1603) 공산성의 북문으로 강남과 강북을 오가는 남북통로의 길이다. 조선 선조 36년(1603)에 관찰사 유근이 쌍수산성을 고쳐 세우면서, 이 자리에 있었던 망북루를 다시 지어 공북루로 고쳐 부르고, 그 옆에 월파당을 지었다고 한다. 현종 4년(1663) 관찰사 오정위가 낡은 것을 다시 지었으며 기록은 송시열이 하였다. 월파당은 효종 5년(1654)에 붕괴되어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앞면 5칸·옆면 2칸으로 규모가 큰 누각 건축이어서, 윗층에는 누마루를 깔았고 아랫층은 통행로로 쓰고 있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고, ‘공북루..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0호_공산성 광복루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0호 _ 공산성 광복루 (公山城 光復樓) 수 량 : 1동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남 공주시 금성동 2번지 공산성 안에서 군사가 주둔하던 중군영(中軍營)의 문이었으나 광복 이후 8·15해방을 기리는 뜻으로 광복루라 불렀다. 광복루는 원래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 옆에 있던 것을 현 위치로 옮기고 웅심각이라 불렀는데, 1946년에 백범 김구와 성재 이시영이 이곳에 와서 나라를 다시 찾았다는 뜻을 기리고자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으로 모든 면이 개방되어 있으며, 왼쪽에는 오르내릴 수 있도록 층계를 만들어 두었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공산성 광복루 표지판 공산성 광복루 건물 규모는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9호_공산성 쌍수정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9호 _ 공산성 쌍수정 (公山城 雙樹亭) 수 량 : 1동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남 공주시 금성동 14-4번지 공산성 진남루 북서쪽에 있으며, 조선 영조 10년(1734)에 처음 세운 정자이다. 인조가 이괄이 일으킨 반란(1624)을 피하여 공주로 잠시 피난 왔을 때, 이곳에 머물렀던 일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후 여러 차례 보수되어 오다 1970년에 전체적으로 해체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공산성 쌍수정 표지판 공산성 쌍수정 공산성 쌍수정 공산성 쌍수정 현판 공산성 쌍수정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6호_명국심장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6호 _ 명국삼장비 (明國三將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769.01.08 소재지 : 충남 공주시 금성동 10-2번지 시 대 : 32년(1599) 공산성 공북루 아래에 자리한 한채의 비각안에 3기의 비가 나란히 서 있다. 이 비들은 정유재란 이듬해인 선조 31년(1598) 공주에 주둔해 있으면서 주민들을 왜군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 준 명나라 세장수 이공, 임제, 남방위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원래 선조 32년(1599) 금강변에 처음 세웠다가 홍수로 매몰되어 숙종 때에 다시 세워둔 것이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인들에 의해 ‘왜구(倭寇)’등의 글자가 훼손되었고, 공주읍사무소 뒤뜰에 아무렇게나 매몰되었던 것 명국삼장비 표지판 명국삼장비 표지석 명국삼장비 명국삼장비 명국삼장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