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현판 5

옥당(玉堂) 현판

옥당 현판(玉堂 縣板) _ 김진규 글씨, 조선, 1699년(숙종 25) 옥당이라고도 불렀던 홍문관(弘文館)의 현판이다. 옥당은 '옥과 같이 귀중한 집'이라는 뜻이다. 홍문관은 왕의 각종 자문에 응하고 왕실 서적을 관리했다. 홍문관 관원은 왕과 학문, 국정을 논의했던 자리인 경연(經筵)의 준비를 겸하기도 하며 각별한 관계를 맺었다. 현판 글씨는 홍문관 관원이었던 김진규(金鎭圭, 1658~1716년)가 썼다. 옥당 현판(玉堂 縣板) _ 이정영 글씨, 조선, 1652년(효종 3) 옥당이라고도 불렸던 홍문관의 현판이다. 옥당은 '옥과 같이 귀중한 집'이라는 뜻이다. 홍문관은 왕의 각종 자문에 응하고 왕실 서적을 관리했다. 현판 글씨는 홍문관 관원이었던 이정영(李正英, 1616~1686년)이 썼다. 전해지는 옥당..

문화재/편액 2022.06.02

건구고궁(乾九古宮) 현판

건구고궁 현판(乾九古宮 縣板) _ 영조 어필, 조선, 1730년(영조 6) 영조가 37세 때 초소(草書)로 쓴 현판이다. 힘있고 짜임새 있는 글씨에서 자신감 넘치는 젊은 왕의 풍모를 느낄 수 있다. '건구고궁'은 잠저 시절의 자신을 물속에 숨어있던 용으로, 왕이 된 자신을 날아오르는 용으로 비유한 것이다. 왕뒤에 오르기 전 살던 창의궁(彰義宮)에 걸도록 했는데 막 왕이 왼 영조의 포부와 미래에 대한 야심을 엿볼 수 있다. 건구고궁 현판(乾九古宮 縣板) 2022.05.22, 국립고궁박물관_조선의 이상을 걸다, 궁중현판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문화재/편액 2022.05.31

어전친막(御前親幕) 현판

어전친막 현판(御前親幕 縣板) _ 정조 어필, 조선, 18세기 후반 왕을 호위하는 친위 조직인 별군직(別軍職) 청사에 걸었던 현판이다. 정조가 '왕 가까이에 있는 군막'이라는 뜻인 '어전친막'을 당당한 기상이 느껴지는 행서로 썼다. 정조는 글씨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글씨를 한 사람의 성품을 드러내는 척도로 여겨, 기교적이거나 미적인 글씨보다 기풍(氣風)을 드러낼 수 있는 글씨를 추구했다. 정조는 글씨를 두루 잘 썼으며 특히 행서에 탁월했다. 2022.05.22, 국립고궁박물관_조선의 이상을 걸다, 궁중현판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문화재/편액 2022.05.30

규정각 현판(揆政閣 縣板)

규정각 현판(揆政閣 縣板) _ 영조 어필 추정, 조선 경희궁 규정각에 걸었던 현판이다. 규정(揆政)은 '칠정(七政 : 해와 달을 비롯한 일곱 개 행성)을 헤아린다'는 뜻이다. 규정각은 천문을 관측하는 기궁인 선기옥형(璇璣玉衡 )을 보관하던 곳이다. 글씨는 영조 어필로 추정되며 중국 고대 한자 서체인 전서(篆書)로 썼다. 전서는 석각(石刻)이나 전각(篆刻)에 주로 쓰였는데, 정사각형에 가까우며 글씨 획의 두께가 균일하고 곧은 느낌을 주는 것이특징이다. 2022.05.22, 국립고궁박물관_조선의 이상을 걸다, 궁중현판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문화재/편액 2022.05.26

주필사회제망묘루 현판(走筆寫懷題望廟樓 縣板)

주필사회제망묘루 현판(走筆寫懷題望廟樓 縣板) _ 영조 어제, 김재로 글 · 글씨, 조선 1745년(영조 21), 나무, 64.3×105.1cm 망묘루 제사에 참석하지 못한 심정을 기록한 현판 종묘 망묘루 벽에 걸었던 현판이다. 영조(英祖, 재위 1724~1776년)가 건강이 좋지 못해 제사를 직접 지내지 못한 안타까운 심정을 담은 시가 새겨져 있다. 구름 모양 봉을 갖춘 테두리에 꽃무늬를 장식했다. 검은색 바탕에 글씨는 음각한 후 붉은색으로 칠했다. 현판에 여닫이문을 달아 왕이 지은 시를 보호하고 소중히 보관했다. 주필사회제망묘루 현판(走筆寫懷題望廟樓 縣板) 2022.05.22, 국립고궁박물관_조선의 이상을 걸다, 궁중현판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문화재/편액 2022.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