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문화재 5

사적 제233호_남해 충렬사

사적 제233호 _ 남해 충렬사 (南海 忠烈祠) 면 적 : 12,582㎡ 지정일 : 1973.06.11 소재지 :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350번지 시 대 : 조선시대 순국 후 이순신 장군의 시신이 모셔졌던 곳에 세워진 사당으로 묘비와 가묘가 있다. 남해 충렬사는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원진 사당이다. 통영의 충렬사와 함께 '충렬'이란 현판을 처음부터 같이 사용해 왔으며 인조 때 지어졌다. 충무공이 전사한 후 그의 시신이 한 때 이곳에 모셔졌는데 1633년(인조 11) 김여빈, 고승후 등 유림들이 옛터에 초옥 1칸을 짓고 제사를 지냈던 것이 최초의 사당이다. 충무공이 순직한 지 60년이 되던 1658년(효종 9)에 어사 민정중(閔鼎重)이..

문화재/사적 2021.06.05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18호_남해 운대암 아미타후불탱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18호 _ 남해 운대암 아미타후불탱 (南海雲坮庵阿彌陀後佛幀) 수 량 : 1점 지정일 : 2006.11.02 소재지 :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옥천리 1024 남해 운대암 아미타후불탱은 주색바탕 화면에 아미타좌상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관음과 대세지, 가섭과 아난존자를 배치한 아미타오존 홍정이라 할 수 있다. 본존인 아미타불은 복견의와 대의를 갖춘 변형통견식 착의에 녹색 두광과 적갈색 신광을 갖추고 연화좌 위에 앉아 있다. 수인은 아미타구품인 가운데 상품인을 취한 모습으로 보인다. 본존 좌우에는 관음과 대세지가 각각 정병과 경책을 들고 정면을 향해 시립하고 있으며, 본존과 보살상 사이로 보이는 뒤쪽에는 가섭과 아난존자가 합장 자세로 역시 정면을 향해 서있다. 남해 운대암 아미타후불탱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17호_남해 운대암 지장시왕탱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17호 _ 남해 운대암 지장시왕탱 (南海雲坮庵地藏十王幀) 수 량 : 1점 지정일 : 2006.11.02 소재지 :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옥천리 1024 본 작품은 화면 가운데 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원형두광을 갖춘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비롯하여 시왕, 판관, 사자, 동자 등의 권속들이 좌우대칭으로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높은 단 위의 백색 연화좌에 결가좌한 지장은 먹선으로 묘사한 투명한 두건을 쓰고, 가슴 위로 올린 오른손에는 보주를 들고 왼손은 무릎 위에 얹고 있다. 대좌 앞쪽에 놓인 석장은 지장의 왼쪽 어깨에 비스듬히 기댄 상태이다. 지장의 협시인 도명과 무독귀왕은 합장한 채로 서있고, 명부시왕은 각각 관을 쓰고 홀을 들거나 혹은 합장, 두루마리를 들고 지장을 향해 ..

국가등록문화재 제234호_남해 덕신리 하천재

국가등록문화재 제234호 _ 남해 덕신리 하천재 (南海 德申里 荷泉齋) 수량/면적 : 4동(1층), 각 연면적 하천재69.3㎡, 경모헌42.9㎡, 세심헌29.7㎡, 옥산문16.5㎡ 지정일 : 2006.03.02 소재지 : 경남 남해군 설천면 창남로72번길 70-19 (덕신리) 시 대 : 1938년 이곳은 퇴계 이황의 뒤를 이어 양관 대제학을 지낸 박충원의 14세손인 하천공 박병집과 그의 아들 만암 박채규가 선친의 유적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재실이다. 하천재를 중심으로 경모헌과 세심헌이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평면 중앙부에 선조의 위패를 봉안하는 사당을 구성하여 강당과 사당을 한 건물에 결합한 근대기 재실 건축의 새로운 경향을 잘 보여 준다. 지금은 다도를 교육하고 전파하기 위하여 ‘하천다숙’으로 쓰..

경상남도 기념물 제20호_남해 임진성

경상남도 기념물 제20호 _ 남해 임진성 (壬辰城) 수량/면적 : 일괄 지정일 : 1974.12.28 소재지 : 경남 남해군 남면 상가리 291번지 시 대 : 고려시대 임진성은 민보성(民堡城)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하여 군, 관, 민이 힘을 합쳐 쌓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해도의 평산포 북쪽에 뻗은 낮은 구릉에 돌을 이용하여 둘레 286m의 작은 규모로 쌓은 산성으로, 동쪽과 서쪽에 문을 내었는데, 현재는 동문터만 남아 있다. 성 안에는 우물터가 있으며, 성벽의 바깥으로는 주변에 물길을 돌린(해자) 흔적이 있고, 옛날에는 성루, 훈병사, 감시사, 망대, 서당들도 있었다고 전해온다. 조선 초기에는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어 관리를 파견하여 지켰던 곳이었으나, 16세기중엽 이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