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유형문화재 15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9호_안동권씨 유회당종가일원

호조판서를 지낸 유회당 권이진 선생이 터를 잡았던 유회당 종가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9호 _ 안동권씨유회당종가일원 (安東權氏有懷堂宗家一圓) 수 량 : 5동 지정일 : 2001.06.27 소재지 : 대전광역시 중구 운남로 65 (무수동) 시 대 : 1877(고종14) 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유회당 권이진(權以鎭, 1668∼1734) 선생이 처음 터를 잡았던 유회당 종가는,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88년 후손들이 현재의 자리에 옮겨 지은 것이다. 이 가옥은 보문산 남쪽을 배경으로 하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산과 내를 벗하여 생활함으로써 청결하고 참된 선비의 경지를 이루겠다는 생활철학이 담겨진 것이다. 전반적으로 건물의 규모를 작게 하고, 건물간의 사이 공간을 여유롭게..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호_남간정사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호 _ 남간정사 (南澗精舍) 수 량 : 1동 지정일 : 1989.03.18 소재지 : 대전 동구 충정로 53 (가양동) 낮은 야산 기슭 숲이 우거진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남간정사는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지은 것이다. 우암은 소제동에 살 때 서재를 짓고 능인암이라 하여 학문을 연마하였다. 숙종 9년(1683) 능인암 아래에 이 건물을 지었는데, 많은 제자를 기르고 그의 학문을 대성한 유서깊은 곳이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2칸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편은 앞뒤 통칸의 온돌방을 들였다. 오른편 뒷쪽 1칸은 방으로 하고 앞쪽 1칸은 마루보다 높은 누를 만들어 아래에 아궁이를 설..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1호_심광사 목조석가모니불좌상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1호 _ 심광사목조석가모니불좌상 (心侊寺木造釋迦牟尼佛坐像) 수 량 : 1구 지정일 : 2001.06.27 소재지 : 대전 동구 천동 106번지 심광사 시 대 : 17세기 전반 양 어깨를 다 덮은 옷에 오른손을 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한 석가모니불 좌상이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머리를 약간 내민 채 시선을 아래로 둔 굽어보는 듯한 자세이며, 네모지면서도 둥그스름한 얼굴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정수리에 있는 상투 모양의 육계(肉계)가 불분명한 머리에는 정상 계주(계珠)와 중간 계주를 갖추었으며, 귀는 두툼한 귓불에 적당한 크기이고,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안정감 있는 자세에 신체 각 부의 알맞은 비례와 자연스러운 옷주름 표현 등은 매우 사실적이..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2호_고산사 목조석가모니불좌상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2호 _ 고산사목조석가모니불좌상 수 량 : 1구 지정일 : 2005.05.09 소재지 : 대전 동구 대성동 3번지 시 대 : 17세기경 고산사목조석가모니불좌상은 불상의 형식이나 전체적인 특징은17세기에 유행했던 불상의 형식적 특성을 잘 갗추고 있다. 오른쪽 어깨에 살짝 법의를 걸치고 오른쪽 팔꿈치 이하를 완전하게 노출시킨 착의법은 17세기 불상에서 흔히 보이는 특징으로 형식화된 단순한 옷주름 등에서 시대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만 着衣法 중 어깨에는 通肩式으로 표현하면서도 아랫배에 표현된 법의자락이 중간에서 갈라진 모습에서는 마치 오른쪽 팔에 편삼을 입은 조선후기 불상의 또 다른 형식을 따르고 있는 점으로 볼 때 조성시기는 다소 내려갈 수도 있다. 고산사목조석가모니불좌상 ..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1호_복전선원 목조대세지보살좌상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1호 _ 복전선원 목조대세지보살좌상 (福田禪院 木造大勢至菩薩坐像) 수 량 : 1 지정일 : 2013.02.22 소재지 : 대전광역시 중구시 대17세기 중반 전체높이가 53cm인 작은 크기의 불상으로 머리를 약간 숙이고 있으나 안정감이 있고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어깨 폭이 넓지 않고 아담하다. 머리는 보계가 높아 솟아 있으며, 보관은 화연보주와 봉황, 꽃등으로 장엄 되었으며 중간부분엔 대세지보살의 특징인 정병이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턱 부분이 둥글어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두 눈을 지긋이 내리떴으며, 오뚝한 코에 굳게 다문 입가에 엷은 미소가 있다. 목에는 三道가 표현 되었다. 법의는 양 어깨를 다 덮은 통견의 양식이다. 하품중생인의 두손은 곡선적이며 매우 사실적이다. 세련된 ..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호_보문산 마애여래좌상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호 _ 보문산 마애여래좌상 (寶文山磨崖如來坐像) 수 량 : 1구 지정일 : 1990.05.28 소재지 : 대전 중구 석교동 산17-1번지 대전 석교동 복전암에서 보문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1㎞쯤 올라가면 보문산성의 동쪽에 높이 6m, 폭 6m 정도의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의 남쪽에 높이 3.2m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 발바닥을 위로 향한 채 앉아 있는 이 불상은 머리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있으며, 눈을 가늘게 내려뜨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싼 옷에는 옷주름이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 앞에 들고, 왼손은 배 위에 얹었으나 마멸이 심하여 손모양을 분명하게 알 수 없다. 불상 주위의 광배(光背)는 둥근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표현되었는데, 광배의 바깥 윤곽은 선..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6호_ 청자 철화 장수황씨 병형 묘지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6호 _ 청자 철화 장수황씨 병형 묘지(靑磁鐵畵長水黃氏甁形墓誌) 수 량 : 1점 지정일 : 2017.12.27 소재지 : 대전광역시 유성구 도안대로 398 (상대동, 대전시립박물관) 청자 철화 장수황씨 병형 묘지는 15세기 말 공주 학봉리 일원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원통형 항아리 모양의 도자로, 묘지의 주인은 김국광(14151-1480)의 배위인 장수황씨임. 외면 전체를 돌아가며 철화안료로 묘지명을 필사하였는데, 묘지명의 찬자는 무령군 유자광(1439-1512)임. 흔치 않은 묘지의 형태, 묘주의 확인, 제작시기와 제작지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임 청자 철화 장수황씨 병형 묘지 표지판 청자 철화 장수황씨 병형 묘지 2022.03.20. 대전시립박물관 글 문화재청 ▼보시고 유익..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5호_고흥류씨정려각 및 비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5호 _ 고흥류씨정려각및비 (高興柳氏旌閭閣및碑) 수 량 : 1동 1기 지정일 : 1996.03.27 소재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중리동 498-1 시 대 : 1665(현종 6년) 낮은 야산에 남향으로 세워진 유씨 부인(1371∼1452)의 정려각이다. 유씨 부인은 유준의 딸로서 진사 송극기에게 시집갔으나 22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네살난 아들과 함께 회덕의 시댁에 내려왔다.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아들을 잘 보살펴 훌륭히 키워 낸 부인은 조선 효종 4년(1653)에 열녀로서 정려각이 세워졌다. 앞면 1칸·옆면 1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4면에 붉은 살을 두른 내부에 현판이 걸려 있으며, 정려각 오른쪽에 현종 4년(1665)에 세운 ..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_은진송씨정려각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 _ 은진송씨정려각 (恩津宋氏旌閭閣) 수량 : 1동 지정일 : 1993.06.21 소재지 : 대전 대덕구 법2동 205-5번지 송애당 김경여의 어머니 송씨부인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 (재위 1724∼1776) 때 나라에서 내려준 정려기를 보호하기 위한 건물이다. 정려기란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이름이나 관직을 적은 것이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며, 기둥 위에서 지붕을 받치는 공포가 화려하게 장식된 조선 후기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은진송씨정려각 표지판 은진송씨정려각 표지석 은진송씨정려각 전경 은진송씨정려각 전경 은진송씨정려비 (恩津宋氏旌閭碑) 성균진사 증좌찬성김광유지처(成均進士 贈左贊成金光裕之妻) 효녀 정경부인은진..

송애 김경여가 지은 별당건물,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호_송애당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호 _ 송애당 (松崖堂) 수 량 : 1동 지정일 : 1989.03.18 소재지 : 대전 대덕구 계족산로17번길 60 (중리동) 시 대 : 조선시대 후기 조선 인조(재위 1623∼1649) 때 김경여(1597∼1653)가 지은 별당건물로, 고종 26년(1889)에 다시 지었다. 그의 호를 따서 송애당이라 이름지었다. ‘송애(松崖)’는 눈서리를 맞아도 변치않는 소나무의 곧은 절개와 높이 우뚝 선 절벽의 굳센 기상을 간직하겠다는 뜻으로, 김경여의 높은 기개와 충성심을 잘 표현하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구조는 왼쪽 2칸은 대청마루이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꾸몄다. 송애당 표지판 송애당 전경 송애당 전경 송애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