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일까 사랑일까 28

유영국(劉永國)의 <무제>

_ 유영국(劉永國, 1916~2002, 경북 울진), 1960, 캔버스에 유채, 130×160cm, 서울미술관 유영국(劉永國, 1916~2002, 경북 울진) 191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유영국은 1935년 동경 문화학원(文化學院)에 진학하여 당시 일본에서 가장 전위적인 미술운동이었던 추상미술을 수용했다. 1947년 김환기(金煥基, 1913~1974), 이규상(李揆祥, 1918~1967) 등과 함께 한국 최초의 추상미술그룹이었던 '신사실파(新寫實派)'를 창립했고, 이후에도 모던아트협회, 신상회 등 한국의 전위적인 미술 단체를 이끌며 한국 모더니즘 미술 정착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일본에서 그림을 배우던 시기까지만 해도 서구 모더니즘 미술의 형식을 실험적으로 모방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지만, 해방 이후 ..

문학진(文學晉)의 <소녀와 바이올린>

_ 문학진(文學晉, 1924~2019, 서울), 1957, 캔버스에 유채, 100.5×80.2cm, 서울미술관 문학진(文學晉, 1924~2019, 서울)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1회로 입학한 문학진은 초기 작업에서는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1882~1963)의 입체주의 화풍을 바탕으로 한 순수추상을 주로 했으나, 1970년대 후반부터는 기록화 제작에 힘 쏟으며 (1978)와 같은 공식 기록화를 남기기도 했다. 문학진은 주로 정물과 인물을 즐겨 그렸는데, 그는 색체의 통일과 조화에 중점을 두어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적 공간을 제시했다. 안정된 구도와 차분한 색감에 의한 정적인 분위기는 문학진 작품의 주요 특징으로, 그는 인물과 정물을 주요 소재로 하되 형태..

유영국(劉永國)의 <움직이는 산>

_ 유영국(劉永國, 1916~2002, 경북 울진), 1980, 캔버스에 유채, 91×116.8cm, 서울미술관 유영국(劉永國, 1916~2002, 경북 울진) 191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유영국은 1935년 동경 문화학원(文化學院)에 진학하여 당시 일본에서 가장 전위적인 미술운동이었던 추상미술을 수용했다. 1947년 김환기(金煥基, 1913~1974), 이규상(李揆祥, 1918~1967) 등과 함께 한국 최초의 추상미술그룹이었던 '신사실파(新寫實派)'를 창립했고, 이후에도 모던아트협회, 신상회 등 한국의 전위적인 미술 단체를 이끌며 한국 모더니즘 미술 정착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일본에서 그림을 배우던 시기까지만 해도 서구 모더니즘 미술의 형식을 실험적으로 모방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지만, 해방 이후..

한묵(韓默)의 <푸른 나선>

_ 한묵(韓默, 1914~2016, 서울출생), 1975, 캔버스에 아크릴, 198×153cm, 서울미술관 한묵(韓默, 1914~2016, 서울출생) 1914년 서울에서 출생한 한묵은 1940년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川端畵學校)를 졸업하고,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가 서구의 모더니즘 미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102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파리에서 활동한 한묵은 유화, 수채화, 판화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고, 특히 프랑스 앵포르멜 경향의 추상회화의 콜라주 기법을 이용한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선보였다. 한묵의 작품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평면구상'시기와 '공간 다이나미즘'시기로 양분된다. 전기가 2차원적인 평면성에 대한 탐구였다면, 후기의 작품은 1969년 인간의 달 착륙에 영감을 받아 시공간의 ..

천경자(千鏡子)의 <청혼>

_ 천경자(千鏡子, 1924~2015, 전남 고흥), 1989, 종이에 채색, 40×31cm, 서울 미술관 천경자(千鏡子, 1924~2015) '한(恨)의 화가' 혹은 '꽃의 화가'라 불리는 천경자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의 정서를 여인과 뱀, 꽃에 투영한 채색화를 선보였다. 일본 유학길에 오른 후 천옥자(千玉子)에서 '경자(鏡子)'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부르고, 1942~1943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연이어 입선하며 본격적으로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수묵화 중심의 동양화단에서 채색화는 일본색이 짙다는 이유로 배척받았으나, 천경자는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실험하고 작품에 문학적인 성격을 부여하며 한국 채색화 분야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작품에 자신의 이야기를 줄곧 투영해왔던 천경자는 1970년대..

고암(顧菴) 이응노(李應魯)의 <문자추상>

_ 고암(顧菴) 이응노(李應魯, 1904~1989, 홍성), 1964, 종이에 채색, 138.5×70cm, 서울미술관 고암(顧菴) 이응노(李應魯, 1904~1989, 홍성 출생) 1904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난 이응노는 동양의 서화 전통을 활용하여 현대적인 추상화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다. 전통 사군자 작가로 미술에 입문했던 그는 1937년 일본 유학을 통해 서구의 새로운 화풍을 습득한 뒤, 서화의 필묵법을 응용하되 서구의 원근법과 명암법을 도입하여 자연의 이미지를 주관적으로 해석한 반추상 작품을 선보였다. 이후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가면서 본격적으로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콜라주 추상작품을 제작했다. 이응노는 1960년대 중반부터 문자를 활용한 새로운 추상 작업에 몰두했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익..

고암(顧菴) 이응노(李應魯)의 <구성>

_ 고암(顧菴) 이응노(李應魯, 1904~1989, 홍성), 1976, 한지에 채색, 37d, 서울미술관 고암(顧菴) 이응노(李應魯, 1904~1989, 홍성 출생) 1904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난 이응노는 동양의 서화 전통을 활용하여 현대적인 추상화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다. 전통 사군자 작가로 미술에 입문했던 그는 1937년 일본 유학을 통해 서구의 새로운 화풍을 습득한 뒤, 서화의 필묵법을 응용하되 서구의 원근법과 명암법을 도입하여 자연의 이미지를 주관적으로 해석한 반추상 작품을 선보였다. 이후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가면서 본격적으로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콜라주 추상작품을 제작했다. 이응노는 1960년대 중반부터 문자를 활용한 새로운 추상 작업에 몰두했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익힌 서예를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