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박물관 문화재 12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1호_류성룡 필 진시무차 초고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1호 _ 류성룡 필 진시무차 초고 (柳成龍 筆 陳時務箚 草稿) 수 량 : 1점 지정일 : 2012.05.17 소재지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 (대연동, 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 시 대 : 조선 1592년 이 작품은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11월 평안도 정주(定州)에 있으면서, 국가의 시무(時務)에 대하여 올린 차자(箚子)의 초안이다. 1633년(인조 11)에 간행된 『서애집(西厓集, 서애선생문집)』 권5, 차(箚), 「진시무차(陳時務箚) 임진 11월 재정주(壬辰十一月 在定州)」의 초고에 해당하는 문서이다. 이 차자는 세로로 116행의 초서(반초서)로 쓰여 있으며, 가로로 9장의 한지를 이은 두루마리 형태로, 첫째 장은 앞부분이 잘렸고, 아홉째 장은 끝..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4호_이덕성가 문적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4호 _ 이덕성가 문적 (李德成家 文籍) 수 량 : 고문서 67매, 고서 10종 13책 지정일 : 2008.04.02 소재지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 (대연동, 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 이덕성가는 정치적으로는 소론, 학문적으로는 양명학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조선후기에는 강화학파를 형성하여 조선 중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조 사회에 정치적, 학술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집안으로, 세상에서 말하는 육진팔광(六眞八匡)을 배출하였다. 아울러 대대로 명필을 많이 배출하여 이광사의 필체는‘원교체’라 하여 추사 김정희와 쌍벽을 이루었다. 이 고문서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인 17~18세기의 것들이다. 이들 문적들이 시기적으로는 300~400년 남짓하지만 보물 제1501호로 지정된 ..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1호_동래남문비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1호 _ 동래남문비 (東萊南門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72.06.26 소재지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 (대연동, 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 임진왜란 때 순절한 분들의 충렬(忠烈)을 기리어 당시의 격전지인 동래읍성의 남문 밖 농주산에 세웠던 비로, ‘동래충렬비’라고도 부른다. 현재 비는 받침돌 위에 크게 훼손된 비몸을 세운 모습이다. 그 위에 얹었던 머릿돌을 옆에 따로 놓여 있다. 비문에는 선조 25년(1592) 4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나 다음날 싸움에서 부산진첨사 정발이 용감히 싸우다 전사한 일, 병사 이각의 비겁한 도망, 동래부사 송상현의 의연한 죽음과 비장 송봉수·김희수·향리 송백·교수 노개방·유생 문덕겸·양통한의 순절, 양산군수 조영규의 절의 등 왜병들과의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4호_곤여전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4호 _ 곤여전도 (坤輿全圖) 수 량 : 1점(8폭) 지정일 : 2012.05.17 소재지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 (대연동, 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 부산박물관 소장 곤여전도는 1674년에 제작된 를 필사로 모사한 지도이다. 곤여전도는 북경판(1674년), 광동판(1858년)과 조선에서 제작한 해동판(1860년)이 있는데, 북경판은 국내에 서울대 도서관, 숭실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해동판은 비교적 많은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지도는 북경판을 바탕으로 채색을 하여 완성한 지도로 제작 장소와 시기는 알 수 없다. 장황을 근거로 볼 때 조선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좀 더 정확한 고증이 필요하다. 2010년 보존 처리와 장황도 새로 하여 보존상태는 양호..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2호_사처석교비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2호 _ 사처석교비 (四處石橋碑) 수 량 : 1기 지정일 : 2001.10.17 소재지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 (대연동, 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 시 대 : 조선 정조 5년(1781) 동래부사 이문원의 기부금과 동래부 유지들의 모금을 바탕으로 동래부의 남문 밖에 있던 네 곳의 나무다리를 돌다리(石橋)로 바꾼 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다. 원래 동래고등학교 앞 길가에 있던 것을 도로확장공사로 인하여 금강공원 안의 임진동래의총 입구에 옮겼다가 그후 지금의 자리로 다시 옮긴 것이다. 나무다리는 1∼2년마다 다시 고쳐 쌓게 되는데 그때마다 백성에게 그 비용을 거두었으므로 백성들의 고통이 심하였다. 이에 강위성이 지역 주민의 부담을 덜기 위하여 돌다리를 만들자는 의견을 내놓고 박도유..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9호_동래향교 고왕록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9호 _ 동래향교 고왕록 (東萊鄕校 考往錄) 수 량 : 1책(76장 152쪽) 지정일 : 2008.12.16 소재지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 (대연동, 부산박물관) 동래향교고왕록에는 1782~1900년 사이의 동래향교 관련 문서 95건이 초록되어 있다. 동래향교와 관련된 각종 영건사적(營建事蹟), 통문(通文), 추록(追錄), 등본(謄本), 보장(報狀), 품목(稟目), 축문(祝文), 상량문(上樑文), 별록(別錄), 서목(書目), 상서(上書), 감결(甘結), 고목(告目), 절목(節目) 등이 수록되어 있다. 향교에 보내온 사림의 각종 통문, 향교 이건 관련 문건, 특정 개인 집안의 문서를 고왕록에 등재해 주기를 청하여 추록된 문서, 동래향교 재정 규정, 향교 교임(校任)의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8호_동래향청 고왕록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8호 _ 동래향청 고왕록 (東萊鄕廳 考往錄) 수 량 : 1책 지정일 : 2008.12.16 소재지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 (대연동, 부산박물관) 동래향청고왕록은 1605년부터 1805년까지의 동래향청 소장 자료 101건의 목록과 1681년에서 1903년까지의 향청 관계 60건의 주요문서가 초록되어 있으며, 동래향청과 관련된 각종 완의(完議), 서목(書目), 품목(稟目), 절목(節目), 목록(目錄), 정식(定式), 상소(上疏), 윤음(綸音), 보장(報狀), 관문(關文), 사통(私通)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자료는 발굴 공개된 이후, 조선후기 동래지역의 향반 연구, 대일 수출 공작미 연구의 기본 사료로 이용되었고, 동래 향반사회의 성격을 무청 조직과 비교 검토한 연구가..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0호_목조여래좌상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0호 _ 목조여래좌상 (木造如來坐像) 수 량 : 1구 지정일 : 2015.07.15 소재지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 (대연동, 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 시 대 : 조선시대 후기(18세기 후반) 이 불상은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양손을 다리 위에서 살짝 들어 아미타인을 하고 있다. 양감이 있는 방형의 얼굴은 오뚝한 코가 큼직하며, 수평으로 그은 작은 눈, 미소를 띠는 입술 표현 등으로 온화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두꺼운 측면의 신체, 큼직한 코와 온화한 인상의 얼굴, 오른쪽 어깨에 보이는 물방울 같은 옷자락, 그리고 대좌와 일체로 조각된 하반신의 옷자락이 대좌를 덮은 裳懸座 형식 등은 주목할 만한 특징으로 18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조각승인 상정(尙淨)의 작품들과..

보물 제1518-2호_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보물 제1518-2호 _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수 량 : 2권 1책 지정일 : 2015.04.22 소재지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 (대연동, 부산박물관)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은 크고(大) 방정하고(方) 광대한(廣) 원각(圓覺)을 설명하는 것이 모든 수다라(修多羅) 중에서 으뜸의 경전이라는 뜻으로 흔히 ‘원각경(圓覺經)’이라 약칭하기도 한다. 이 판본은 고려 우왕 6년(1380) 4월에 독자적으로 판하본을 마련하여 간행한 목판본이다. 고려의 대장경에 편입된 『원각경』을 제외한다면, 현재까지 공개된 『원각경』 판본으로는 가장 앞선 시기의 것이다. 보물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권1과 동일한 판본으로, 상호 보완되는 고려의 고간본이라는 점에서 문화재로..

문화재/보물 2022.06.08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9호_김홍도 필 산수인물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9호 _ 김홍도 필 산수인물도 (金弘道 筆 山水人物圖) 수 량 : 1점 지정일 : 2012.05.17 소재지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 (대연동, 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 이 그림은 김홍도가 1800년 무렵에 그린 산수인물도이다. 중앙에 접혀진 자국이 있으 나 유물 상태는 양호하다. 중앙에 접혀진 자국이 남아 있어 어느 화첩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그림은 1800년 무렵, 혹은 그 이후에 제작된 김홍도의 만년작 중 한 점으로 생각된다. 화면 중앙에 좌측 상단으로 비스듬히 솟은 바위 절벽이 있으며, 아래에는 강이 흐르고 그 위에는 두 척의 배가 떠 있다. 배 위에는 2명씩 모두 4명의 어부가 앉아 있고, 이들 뒤로는 폭포수 한 줄기가 힘차게 내리고 있다. 절벽 상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