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관광 5

양평의병 전투지, 양평 사나사

사나사에 있는 지정문화재 1.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2호 _ 사나사원증국사탑 2.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3호 _ 사나사원증국사석종비 3.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1호 _ 양평 용천리 삼층석탑 사나사(舍那寺) 대적광전(大寂光殿) 사나사 위치 및 연혁 사나사(舍那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의 말사이다. 사나사(舍那寺)란 이름은 노사나 부처님의 약칭으로, 불교의 삼신불(三身佛 :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중의 한 분이다. 노사나불은 연화장세계의 교주로 자비와 지혜를 구족한 부처님이다. 사나(舍那)란 어원은 산스크리트어(梵語)인데, 원만 구족 성취(圓滿 具足 成就)의 뜻을 담고 있다. 경기 제1의 명산으로 불려지고 있는 용문산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맑은 물이 ..

문화재/사찰 2021.09.09

양평 향토유적 제10호_이제신 선생 신도비

양평 향토유적 제10호_이제신 선생 신도비(李濟臣 先生 神道碑)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수암리 산41-21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함경북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이제신(李濟臣) 선생의 신도비이다. 신도비는 북쪽을 정면으로 하고 있는데, 비의 형태는 이수와 장방형의 비좌를 갖추고 있으며, 비신은 대리석이다. 이수는 서로 마주보는 용문과 괴운문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비는 광해군 13년(1621) 건립되었으며 마모가 심하다. 현재 정면 1칸 측면 1칸의 비각이 건립되어 있다. 비문은 신흡(申欽)이 글을 지었다. 이제신 선생 신도비 표지판 이제신 선생 신도비입구 이제신 선생 신도비명 병서 역문 (李濟臣 先生 神道碑名 拜書 譯文) 이제신 선생 신도비로 오르는 돌계단 이제신 선생 신도비각 이제신 선생 신..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5호_이향로선생 생가, 화서기념관, 벽계사당, 노산사지, 이향로 묘소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5호 _ 이항로선생 생가 (李恒老先生 生家) 수량/면적 : 2동 59㎡ 지정일 : 1980.06.02 소재지 : 경기 양평군 서종면 화서1로 239(노문리) 조선 말기 성리학자였던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1792~1868)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이 집이 위치해 있는 벽계마을은 벽진 이씨의 동성촌으로 이항로선생 생가 외에도 노산사(蘆山祠)가 있어 선생의 높은 학식과 유학을 전승하고 있다. 이항로의 고조 대에 벽계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으며, 이항로의 부친이 생가의 안채를 약 200여 년 전에 건립한 것으로 전한다. 현재 가옥의 배치는 ‘ㄱ’자형의 안채와 ㄷ자형의 사랑채가 가운데 담을 두고 가로로 긴 ‘ㅁ’자형을 취하고 있다. 사랑채는 1994년에 새로 건립한 것이며,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3호_사나사 원종국사석종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3호 _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 (舍那寺 圓證國師 石鐘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78.10.10 소재지 : 경기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304번지 시 대 : 고려 우왕 12년(1386) 양평 사나사는 용문산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 고려 초기 크게 활약했던 대경(大鏡) 대사가 제자였던 융천(融闡) 등과 함께 창건한 것으로 전한다. 사나사는 보우가 중창하였는데, 조선 시대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었다가 다시 중건되었다. 사나사 경내의 동편에 있는 비각 안에 원증국사 석종비가 있고, 나란히 석종이 건립되어 있다. 석종비는 규모가 작은 편으로 비좌-비신-개석을 결구하여 세웠다. 비좌는 상면이 고른 자연석을 활용한 것으로 보이며, 그 위에 올린 비신은 좌우에 별도의 보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2호_사나사 원증국사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2호 _ 사나사 원증국사탑 (舍那寺 圓證國師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78.10.10 소재지 : 경기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304번지 시 대 : 고려시대 우왕 9년(1383년) ‘사나사 원증 국사 탑’은 태고화상 보우(太古和尙普愚, 1330~1382)의 사리탑이다. 보우의 본관은 홍주(洪州), 속성은 홍씨(洪氏), 첫 법명은 보허(普虛), 호는 태고(太古)로 홍주(현재 홍성) 출신이다. 보우는 13세에 출가해 회암사 광지(廣智)의 제자가 되었고, 가지산(迦智山)에서 수행했다. 공민왕 5년(1356) 왕의 청으로 봉은사에서 설법하였고, 같은 해 4월 왕사로 책봉되어 광명사에 머물렀다. 1371년 공민왕은 스님을 국사로 봉한 뒤 영원사(營原寺)에 머물기를 청하였으나 사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