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의사 유품 3

보물 제568-2호_윤봉길의사 유품

보물 제586-2호_ 윤봉길의사 유품(尹奉吉義士 遺品), 이력서 수 량 : 10종 35점 지정일 : 1972.08.16 소재지 : 충청남도 예산군 시 대 : 1932년 윤봉길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량리에서 태어나, 덕산보통학교와 오치서숙에서 공부하였고 19세 때 고향에 야학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했다. 20세 때 각곡독서회를 조직하고 『농민독본』을 편찬했으며, 22세 때 월진회를 조직, 농촌운동을 정열적으로 전개하였다. 윤봉길의사는 국내에서 독립운동이 어려워지자 23세때 중국으로 망명하여 1931년 김구선생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 그 뒤 항일 투쟁을 계속하다가 1932년 4월 29일 혼자 일본의 상해사변 전승축하회가 열리던 상해의 홍구공원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총사령관 시라가와 등 일본의 군수..

문화재/보물 2021.07.17

보물 제568-3호_윤봉길의사 유품

보물 제568-3호 _ 윤봉길의사 유품 (尹奉吉義士 遺品) 수 량 : 17종 27점 지정일 : 1976.05.21 소재지 : 충남 예산군 시 대 : 1929년 윤봉길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량리에서 태어나, 덕산보통학교와 오치서숙에서 공부하였고 19세 때 고향에 야학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했다. 20세 때 각곡독서회를 조직하고 『농민독본』을 편찬했으며, 22세 때 월진회를 조직, 농촌운동을 정열적으로 전개하였다. 윤봉길의사는 22살 되던 해에 월진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국내에서 독립운동이 어려워지자 23세때 중국으로 망명하여 1931년 김구선생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 그 뒤 항일 투쟁을 계속하다가 1932년 4월 29일 혼자 일본의 상해사변 전승축하회가 열리던 상해의 홍구공원에 폭탄을 던..

문화재/보물 2021.07.17

사적 제229호_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 윤봉길의사 유품

사적 제339호 _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 (禮山 尹奉吉 義士 遺蹟), 충의사(忠義祠) 수 량 : 141,007㎡ 지정일 : 1972.10.14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령리 산40-1번지 윤봉길의사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다. 사적지에는 윤봉길 의사가 태어난 집과 성장한 집이 따로 있는데, 태어난 집은 광현당(光顯堂)이라 하며,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의 집은 한국을 건져내는 집이라는 뜻의 저한당(狙韓堂)이라 한다. 윤봉길 의사는 새로운 문화의 습득에 주력하면서 농촌 계몽과 부흥에 힘썼다. 또한 야학회와 독서회를 조직해서 농촌의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기도 하였으며, 1929년에는 농촌발전을 위하여 월진회를 조직하였다. 1932년 일본 국왕의 생일인 천장절과 상해전투승리 축하식을 겸한 기념식이 있었던 중..

문화재/사적 2021.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