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화비 6

흥선대원군의 척화비(斥和碑)

흥선대원군의 척화비(斥和碑)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 106-1번지, 예산대흥동헌내 척화비는 두 차례의 양요(병인양요-프랑스, 신미양요-미국) 이후 당시 왕이었던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척화 교서를 내려 전국 각지에 세우게 한 비석이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계아만년자손 병인작 신미립) "서양 오랑캐가 침범했을 떄,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의하는 것이오.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내가 이를 자손만대에 경계토록 하기 위해, 병인년에 글을 짓고, 신미년에 비를 세우노라" "병인작 신미립' 이라는 글귀에서 두 차례의 양요가 척화비 건립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음을 알수 있으며 이를 통해 흥선대원군은 서양 세력과의 직접적인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3호_대원군 척화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3호 _ 대원군 척화비 (大院君 斥和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오봉리 시 대 : 1871년 척화비란 쇄국정책을 실시하던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치르면서 더욱 그러한 의지를 굳혀, 서양세력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경계하여야 한다는 의지를 국민에게 심어주고자 서울 및 전국의 중요도로변에 세우도록 한 비이다. 홍성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이 비는 넓적한 자연암석 위에 비몸을 꽂아놓은 모습이다. 비문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였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을 할 수 밖에 없고, 화친을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라는 강한 어투의 경고문구를 적어 놓았다. 고종 8년(1871)에 전국에 일제히 세운 것으로, 1882년 임오..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8호_척화비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8호 _ 척화비(斥和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72.06.26 소재지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 (대연동, 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 시 대 : 조선 1874년 척화비는 병인양요(丙寅洋擾)*와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겪은 흥선대원군이 서양 강대국의 침략에 대한 백성들의 경계심을 드높이고자 고종 8년(1871) 서울과 전국의 주요 지역에 세운 비이다. 비문의 내용은 ‘서양 오랑캐가 침범할 때 싸우지 않는 것은 화친(和親)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 우리 자손만대에 경계한다’라는 강한 경고 형식으로 되어 있다. 고종 19년(1882) 임오군란 때 흥선대원군이 청나라에 납치되고, 조선이 서양 강대국과 국교를 맺게 되면서 척화비는 대부분 철거되..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제6호_연기향교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제6호 _ 연기향교 (燕岐鄕校) 수량/면적 : 3,035㎡(지정 2,579 / 보호 456) 지정일 : 2012.12.31 소 재 지 : 세종특별자치시 교촌3길 교촌3길 13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연기향교의 창건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한 시기를 확인할 수가 없으나, 조선 초 각 지방 군·현에 향교들이 건립될 때인 1407년(태종 7)~1413년(태종 13)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의 연기향교는 1647년(인조 25)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웠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제기고, 전사청, 내삼문, 동협문 등이 있다.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 안에는 공자를 비롯한 4성(聖)과..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제11호_연기 척화비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제11호 _ 연기 척화비 (燕岐 斥和碑) 수 량 : 1기 지정일 : 2016.02.11 소재지 : 세종특별자치시 교촌3길 13 (연기면, 연기향교) 척화비는 조선말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은 직후인 1871년(고종 8) 4월 제국주의 열강의 조선 침략을 배격하고 쇄국을 강화하기 위한 굳은 결의를 나타내고 백성들에게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서울과 전국의 중요한 곳에 세운 비석임. 연기 척화비는 연기향교 서쪽 담장을 따라 조성된 비석군들 사이에 있으며, 너비 80cm, 폭 53cm 크기의 비신받침에 세워져 있으나 비신받침이 땅속에 묻혀있어 전체 모습은 확인되지 않음. 척화비는 잘 보존된 편이나 원수(圓首) 우측 상단이 박락(剝落) 되어 있으며, 척화비의 원래 위치와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66호_남해 척화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66호 _ 남해척화비 (南海斥和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97.12.31 소재지 :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410-18번지 척화비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끈 흥선대원군이 서양사람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국민에게 경고하기 위해 서울 및 전국 각지에 세우도록 한 비로, 이 비도 그 중의 하나이다. 낮은 사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맨 위에 지붕돌을 올려놓아 다른 척화비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는 당시 대원군의 명으로 척화비를 곳곳에 세우자, 이 지역의 관청에서 그것을 본 떠 세우면서 양식을 달리 한 것으로 보인다. 척화비를 일제히 세우던 고종 8년(1871)에 함께 세운 것으로, 대원군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납치된 후 세계 각국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대부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