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사 5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_충렬사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 _ 충렬사 (忠烈祠) 수 량 : 5동 지정일 : 1972.06.26 소재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 345 (안락동, 충렬사) 충렬사는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 때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한 부산지방의 순국선열이나 공을 세운 선열을 모신 곳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전쟁이 끝난 뒤인 1605년(선조 38)에 동래부사 윤훤(尹暄)이 동래읍성 남문 안에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의 위패를 모신 송공사(宋公祠)를 지어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이 그 시초이다. 그 후 1624년(인조 2) 선위사(宣慰使) 이민구(李敏求)의 청으로 ‘충렬사’라는 사액(賜額)이 내려짐에 따라 송공사는 충렬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1652년(효종 32) 동래부사 윤문거(尹文擧)가 사당이 좁고 성문 가까이에 있어 ..

충신 황선신 정려문

황성신 정려문(黃善身 旌閭門) 소재지 : 강화군 강화읍 대산리 산126-1, 2 황선신(1570~1637)은 평해 황씨로 무과에 급제하여 군수(郡守)와 훈정(訓正)을 역임했다. 1637년 병자호란 당시 강화성이 함락될 때 중군(中軍)으로 패잔병을 이끌고 갑곶진을 수비하다가 전사하였다. 당시 봉림대군이 그 죽음을 목격하고 효종으로 즉위하자 특지로 병조합의를 제수하여 정려하고 배향하게 하였다 사당 제실의 상면에 걸려있는 정려문에는 충신 어모장군 훈련원정이자. 자현대부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 훈련원사로 추증된 문(忠臣禦侮將軍訓鍊院正贈資憲大夫兵曺判書兼知義禁訓鍊院事之門)이라고 쓰여있다. 황성신 정려문(黃善身 旌閭門) 표지판 이 표지판에서 좌측으로 150m가면 볼 수 있습니다. 황성신 정려문(黃善身 旌閭門) 전경 황..

사적 제233호_남해 충렬사

사적 제233호 _ 남해 충렬사 (南海 忠烈祠) 면 적 : 12,582㎡ 지정일 : 1973.06.11 소재지 :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350번지 시 대 : 조선시대 순국 후 이순신 장군의 시신이 모셔졌던 곳에 세워진 사당으로 묘비와 가묘가 있다. 남해 충렬사는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원진 사당이다. 통영의 충렬사와 함께 '충렬'이란 현판을 처음부터 같이 사용해 왔으며 인조 때 지어졌다. 충무공이 전사한 후 그의 시신이 한 때 이곳에 모셔졌는데 1633년(인조 11) 김여빈, 고승후 등 유림들이 옛터에 초옥 1칸을 짓고 제사를 지냈던 것이 최초의 사당이다. 충무공이 순직한 지 60년이 되던 1658년(효종 9)에 어사 민정중(閔鼎重)이..

문화재/사적 2021.06.05

선원 김상용과 공조판서 이상길 외 26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사당!,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_충렬사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 _ 충렬사 (忠烈祠) 지정일 : 1995.03.02 시 대 : 조선시대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충렬사로 232 (선원면) 선원 김상용과 공조판서 이상길 외 26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사당이다. 김상용은 조선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인천이 청나라 군사에게 함락되자 순절한 충신이다. 인조 19년(1641)에 지어 현충사라 불렀으나, 효종 9년(1658)에 나라에서 충렬사라는 이름을 다시 받았다. 1977년 보수하여 현재에 이른다. 교육공간인 명륜당과 동·서재는 없어지고, 사당과 책을 보관하는 전사청· 출입문인 외삼문 등이 남아있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 _ 충렬사 (忠烈祠)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선행리에 위치한 충렬사는 김상용 선생을 비롯한 ..

문화재/서원 2018.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