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탕평평 11

을사친정계병(乙巳親政契屛)

_ 작가 모름(作家未詳), 1785년(정조 9), 비단에 색과 먹 왕이 중심인 인사행정 산봉우리 다섯 개가 그려진 오봉병풍 앞 왕의 의자가 있습니다. 왕의 자리 가까이에 내시와 사관이, 다음에 승지와 규장각 관원이 있습니다. 반면 인사행정 담당인 이조와 병조 관원들은 툇마루와 전각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규장각 관원은 정조의 친위세력입니다. 친위세력을 바탕으로 왕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의지가 돋보입니다. 1폭에는 정조의 어제시와 신하들의 화답시가 담겨 있습니다. 정조는 창덕궁 중화당에서 인사행정을 행하는 것이 상서롭다는 내용의 시를 내렸는데, 병풍 제2 · 3폭에 구름 사이로 소나무와 복숭아나무, 학 두마리가 있어 상서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중희당 전각 안 오봉병 앞에 임금의 자리가 있습니다. 이 앞에 ..

규장각 사호헌 수교 현판

_ 글 정조(正祖) 1781년(정조 5), 나무에 색 규장각 관원을 보호하고 위상을 세워주는 글귀 규장각 관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은 규장각 2층 건물보다 더 깊숙한 곳에 있어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정조는 사무실인 이문원을 인정전 서쪽으로 옮기도록 했습니다. 규장각 실무 당담자인 서리(書吏)들의 공간에 '사호헌'이라 이름을 지어주면서, '비록 상급 관청 서리라 해도 출입할 수 없게 하라 (雖上司吏胥母得出入)"고 명을 내렸습니다. 규장각 위상을 세우기 위한 정조의 세심한 노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3.12.15, 국립중앙박물관_탕탕평평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문화재/편액 2024.01.22

전(傳) 김홍도(金弘道)의 <규장각도(奎章閣圖)>

_ 전(傳)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이후), 1776년(경종 즉위)년 추정, 비단에 색 정조의 정책과 학문 연구 기관 설립 정조는 영조에 이어 군주가 정치와 학문을 이끌어 나가는 군사(君師)가 되고자 했습니다. 신하보다 학문적으로 우위에 서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바로 규장각을 건립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규장가에서 젊은 관리들을 교육시켰고, 규장각 관원들은 정조의 탕평 정책을 뒷받침했습니다. 규장각의 위상에 어울리게 이 그림에서 규장각 2층 건물이 다른 건물들보다 더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_ 전(傳)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이후) 2023.12.15, 국립중앙박물관_탕탕평평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오달제(吳達濟)의 <묵매도>

두 임금이 글로 병자호란 충신을 기리다.오달제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화의를 끝까지 반대하다 1637년 29세에 청나라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1705년 그의 꼿꼿한 기개와 어울리는 매화 그림 위에 그의 충심을 기리는 숙종의 글이 덧붙여졌습니다. 영조도 병자호란 발발 120년이 되는 해 오달제를 추모하는 글을 지었습니다. 오달제 그림에 두 임금님의 글이 더해지면서 그림의 가치와 그의 충성심이 더 높아졌습니다  2023.12.15, 국립중앙박물관_탕탕평평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장주묘암도(漳州茆庵圖)

_ 그림 작가모름(作家未詳), 글 영조(英祖), 글씨 윤급(尹汲, 1697~1770), 1746년(영조22), 종이에 색, 개인소장 영조가 꿈꾼 탕평의 이상을 그리다. 1746년 영조의 명으로 그려진 이 작품에는 그의 꿈이 담겨 있습니다. 중국 남송의 주희(1130~1200)가 푸젠성 장저우 지사로 있을 때 그 후원의 모습을 상상한 그림입니다. 영조는 이 그림을 인간의 욕심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공정함에 힘쓰는 뜻을 함께하고자 그렸다고 적었습니다. 묘암 창문에 그려진 태괘와 복괘는 소통과 부흥을 뜻합니다. 2023.12.15.국립중앙박물관_탕탕평평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보물 제1189-2호_박문수 초상(분무공신 반신상)

보물 제1189-2호 _ 박문수 초상(2006) (朴文秀 肖像(2006)), 분무공신 반신상 수 량 : 제기 및 초상 1점 지정일 : 2006.12.29 소재지 : 부산광역시 동구 시 대 : 18세기 중반 흔히 조선시대 御使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靈城君 朴文秀(1691-1756)의 초상화이다. 박문수는 38세인 1728년의 奮武功臣 錄勳 때 奮武功臣像을 하사받았으며, 이때 功臣像으로 그려진 全身像과 半身像이 天安의 후손가에 전해져 1994년 2점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박문수 반신상은 천안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는 1728년의 鶴頂金帶를 착용하고 얼굴도 젊은 奮武功臣像과 달리, 1品官이 착용하는 犀帶를 착용하고 얼굴도 노년의 모습이다. 따라서 이 초상화는 1728년의 奮武功臣像보다 후대에 다른 맥락에..

문화재/보물 2023.12.16

보물 제590호_강세황 초상

보물 제590호 _ 강세황 초상 (姜世晃 肖像) 수 량 : 2폭 지정일 : 1975.05.16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 : 조선 정조 6, 7년 은 조선 후기 대표적 문인 서화가인 강세황이 직접 자신을 그린 자화상과 이명기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강세황의 초상화 등 2폭의 영정이다. 자화상의 크기는 가로 51㎝ 세로 88.7㎝이고, 다른 초상화는 가로 94㎝ 세로 145.5㎝ 크기이며, 모두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다. 강세황(1713∼1791)은 시, 글씨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뛰어나 그의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하였다. 자화상은 검은색 관모에 진한 옥빛의 도포차림의 모습이고 이명기가 그린 초상화는 관복에 관모를 착용하였다. 두 그림 모두 똑같은 얼굴의 각도..

문화재/보물 2023.12.16

보물 제1632-2호_정조어필-제문상정사

보물 제1632-2호 _ 정조어필 - 제문상정사 (正祖御筆 - 題汶上精舍) 수 량 : 1축 지정일 : 2010.01.04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 : 1798년(정조 22) 「정조어필-제문상정사(正祖御筆-題汶上精舍)」는 1798년 9월에 정조가 정와(靜窩) 정민시(鄭民始, 1745-1800)의 문상정사(汶上精舍)에 대하여 지은 어제어필 칠언시이다. 옅은 분홍 종이에 금니로 운룡문(雲龍紋)을 그린 화려한 바탕에 행서로 쓴 것이다. 머리와 말미에 각각 [규장지보(奎章之寶)]와 [홍재(弘齋)]·[만기지가(萬幾之暇)]라는 정조의 어용인(御用印)이 찍혀 있다. 현존하는 정조어필 가운데 크기가 가장 크며 보존상태도 매우 좋다. 또한 연청색과 상아색 비단으로 ..

문화재/보물 2023.12.16

보물 제1509호_허목 초상

보물 제1509호 _ 허목 초상 (許穆 肖像) 수 량 : 1점 지정일 : 2007.02.27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 : 1794 조선중기 대표적 학자이자 문신인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5-1682)의 초상으로 오사모에 담홍색의 시복(時服)을 입고 서대(犀帶)를 착용한 좌안7분면의 복부까지 오는 반신상이다. 화폭 상부의 제발문에 따르면 1794년(정조18) 정조가 허목의 인물됨에 크게 감동하여 그 七分小眞을 얻고자 채제공으로 하여금 사람들과 의논하도록 하였으며 이에 은거당(恩居堂, 1678년 숙종이 하사한 집)에서 선생의 82세진을 모셔다가 이명기가 모사한 것이라고 한다. 영정의 오른 쪽에는 채제공이 당시에 쓴 표제가 붙어 있다. 이 은 생시..

문화재/보물 2023.12.16

보물 제715호_김중만 초상

보물 제715호 _ 김중만 초상 (金重萬 肖像), 김중만 분무공신 반신상 수 량 : 3폭 지정일 : 1981.03.18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로 6 (상갈동, 경기도박물관) 시 대 : 조선 영조 4년(1728) 은 조선 중기의 무신 김중만의 초상화 3점이다. 김중만은 조선 숙종 38년(1712)에 무과에 합격한 후 이인좌의 난(1728)을 평정했으며, 후에 충청도수군절도사를 지낸 인물이다. 초상화는 비교적 크기가 큰 것 1폭과 작은 2폭이 있는데, 크기는 큰 것이 가로 103㎝, 세로 170㎝이고 작은 것 2폭은 가로 29㎝, 세로 42.5㎝ 등이다. 크기가 비교적 큰 초상화는 오른쪽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두 손은 소매 안에서 마주 잡고 있다. 보통 직무를 볼 때 쓰는 관모와 짙..

문화재/보물 2023.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