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역사박물관 2

풍양조씨 집안의 <화회문기>, <별급문기>

_ 17세기 후반 조익이 사망한 30년후 후손들이 모여 조익의 재산을 분배했던 일로 재작성한 문서 화회문기(和會文記) 이 화회문기는 조익이 사망한 1655년(효종 6년)으로부터약 30년 이후에 작성되엇다. 경위가 적혀 있을 앞부분이 잘려나가서 정확한 파악은 어렵지만, 어떠한 이유에서 후손들이 다시 모여 조익의 재산을 분배했던 화회문기를 재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재산은 첫째부터 여섯째까지 나누었는데, 제1댁부터 제5댁까지는 아들 5형제인 몽양, 진양, 래양, 현양의 몫이고 제6댁은 사위 이상주(李相주)의 몫이다. 이 문서는 17세기 정승을 지낸 조익의 재산규모 및 분배방식, 재산의 구성, 당대의 가치관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분제기란 토지, 가옥, 노비 등의 재산을 나누어 줄 때 작성한 문서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87호_계갑일록 및 관련문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87호 _ 계갑일록 및 관련문서 (癸甲日錄및 關聯文書) 수 량 : 5점 지정일 : 2003.04.25 소재지 : 경기도 화성시 시 대 : 조선시대 『계갑일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의병장인 추연秋淵 우성전禹性傳(1542~1593)이 기록한 일기이다. 관련 문서로는 우성전 사후에 관직을 추증받은 교지 2점과 시호를 하사받은 교지 1점 그리고 사간원에서 발급한 우성전의 시호서경완의諡號署經完議 1점이 있다. 우성전의 본관은 단양丹陽이고, 자는 경선景善이며, 호는 추연秋淵 또는 연암淵庵이다. 예문관검열과 수찬(修撰) 등을 거쳐 수원현감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고 난민을 구제하였으며 강화도에서 김천일金千鎰(1537~1593)과 합세해 전공을 세웠다. 권율權慄(153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