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전북특별자치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00호_김기서 강학당

기리여원 2024. 6. 18. 12:08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00호 _ 김기서 강학당 (金麒瑞 講學堂)


수    량 : 1동
지정일 : 1981.04.01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사동길 40-160 (고수면, 김기서강학당)
시    대 : 조선시대 명종3년(1548)


강학당은 조선 명종(1548)에 세워진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김기서가 후진을 양성하던 곳이다.

김기서는 광산인으로 자는 시견 호는 돈목재이다. 그는 정암 조광조의 문인으로 중종 14년(517)에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 등 신진사람들이 대거 숙청 당하자 이곳에서 두문불출하고 후진양성에 온갖 정열을 다하였다.

이 건물은 전면 길이 12.2m, 측면길이 4.7m, 기둥높이가 2.37m로서 대청의 중당 2칸과 좌협실 2칸, 우협실 1칸으로 되어 있으며 조선 초기의소박한 건물로 알려져 있으며 한편으로 이 강학당은 전불사 불당지라고 전해져 오기도 한다

김기서 강학당 표지판 

 

김기서 강학당 표지석

 

김기서 강학당 전경

 

김기서 강학당 외삼문인 경앙문(景仰門)

 

김기서 강학당 (金麒瑞 講學堂)

 

'강학당'은 학문이나 교리를 가르치던 사학의 교육 시설이다. 김기서 강학당은 조선 명종 때인 1548년에 김기서가 '전불사'라는 절 터에다 세운 강학당이다.

 

김기서 (金麒瑞)

 

김기서는 광산인으로, 자는 시견, 호는 돈목재이다. 성균관 직강으로 통정대부까지 오른 매산 김석원의 조카로, 효성이 지극하여 1508년 중종으로부터 광릉 참봉에 제수되고 장려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조광조 문하에 들어가 매형 양팽손 등과 강론하다 1519(중종 14)의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조광조와 신진사림들이 대거 숙청당하자 상평리에 은거하면서 두문불출하였다. 조광조의 학문에 심취하여 후진 양성에 전념하고자 김기서 강학당을 세웠다

 

- 대한미국구석구석 -

김기서 강학당 (金麒瑞 講學堂) 현판

 

강학당 중앙 

 

김기서 강학당 좌 · 우측면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단층 팔작기와지붕이고, 내부는 베갯마루 대청의 중당 2칸, 좌협실 2칸, 우협실 1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조선 초기의 소박한 공청(公廳)건물이다. 광산김씨(光山金氏)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김기서 강학당 후면

 

김기서의 재실로 사용하고 있는 돈목재(敦睦齋)

 

돈목재의 건물규모는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건축물이다.

돈목재(敦睦齋) 현판

 

돈목재(敦睦齋) 좌 · 우측면

 

노산사(盧山祠) 전경

 

노산사(盧山祠) 내삼문(內三門)

 

우) 고창현전동사유허비(高敞縣典洞祠遺墟碑)

좌) 노산사묘정비(盧山祠廟庭碑)

 

제사공간인 노산사(盧山祠)

 

2024.06.03, 고창군 고수면, 김기서 강학당

글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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