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유형문화재 11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4호_전등사 약사전 후불탱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4호 _ 전등사 약사전 후불탱 (傳燈寺 藥師殿 後佛幀) 수 량 : 1폭 지정일 : 2002.12.23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전등사로 37-41 (길상면, 전등사) 시 대 : 조선 고종 21년(1884) 전등사 약사전(보물 제179호)에 보존되어 있는 후불탱인데,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려 액자나 족자 형태로 만들어지는 불화를 말한다. 조선 고종 21년(1884)에 제작된 그림으로 정사각에 가까운 화폭 중앙에 약사여래좌상과 좌우협시인 일광·월광보살을 배치하고 상하 좌우에는 사천왕을, 약사불 뒤에는 가섭과 아난을 그린 병렬식 구도를 보이고 있으며, 색채는 18세기 후반의 색 배합을 계승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전통적인 도상을 계승하고 안정된 화면 구성, 꼼꼼한 필력을 갖..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7호_전등사 약사전 석불좌상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7호 _ 전등사 약사전 석불좌상 (傳燈寺 藥師殿 石佛坐像) 수 량 : 1구 지정일 : 2004.04.06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전등사로 37-41 (길상면, 전등사) 시 대 : 고려말∼조선초 이 석불좌상은 고려 말 조선 초에 제작된 것으로 신체비례로 보아 갸름한 체구에 단아한 얼굴형을 하고 있어 고려 불상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전방을 향한 얼굴에 눈을 약간 아래로 내려 뜬 단아한 얼굴과 목은 정확한 삼도가 있어 길어 보이고, 벌어진 어깨선은 자연스러워 보이며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선정인을 하였다. 그리고 약합을 들고 있어 전형적인 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다. 통견의 두꺼운 가사는 길상좌를 취한 무릎 아래까지 자연스럽게 내려졌으며 옷 주름은 훤칠한 자세에 비해 약간은 형..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5호_삼암돈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5호 _ 삼암돈대 (三岩墩臺) 수량/면적 : 1기(5,044.1㎡) 지정일 : 1999.03.29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산 223-4 돈대란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영토 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해두는 초소이다. 대개 평지가 높은 곳에 마련해두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둔다. 강화도 외포리 마을에 축조된 이 돈대는 다른 것과는 달리 둥글게 쌓여 있으며, 대포를 올려놓는 받침대가 4곳 설치되었다. 성위로 낮게 쌓은 담이 55개 있었다 하나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그 흔적만 남아있다. 조선 숙종 5년(1679) 강화유수 윤이제가 병조판서 김석주의 명을 받아 쌓은 것으로, 경상도 군위어..

공자상을 모신 최초의 향교,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8호_교동향교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8호 _ 교동향교 (喬桐鄕校) 수량/면적 : 9동 / 3,835㎡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남로 229-49 (교동면) 교동향교 향교는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 백성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서 국가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고려 인종 5년(1127)에 화개산 북쪽에 지었으나, 조선 영조 17년(1741)에 조호신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1966년에 수리하였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에 안향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자상을 들여와 모셨다고 전하며, 이후 서울의 각 읍에 조상이나 성현의 위패를 모시는 문묘를 설치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교육공간인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있고, 제사공간을 형성하는 대성전과 ..

시야가 넓은 초승달 모양 돈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6호_분오리돈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6호 _ 분오리돈대 (分五里墩臺) 수량/면적 : 1기 / 11,728㎡ 지정일 : 1999.03.29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산 185-1 돈대란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영토 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해두는 초소이다. 대개 높은 평지에 쌓아두는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둔다. 강화도의 가장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이 돈대는 조망할 수 있는 시야가 매우 넓으며, 자연의 지형을 이용하여 쌓았기 때문에 평면이 반달모양을 이루고 있다. 4곳에 문을 설치한 외곽 포대로, 관아에서 돈장을 따로 두어 관리하게 할 정도로 그 중요성을 띠었다 한다. 조선 숙종 5년(1679)에 축조한 것으로, 당시..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9호_보문사 마애석불좌상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9호 _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普門寺 磨崖石佛坐像) 수 량 : 1구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남로828번길 44 (삼산면) 보문사 금강산 표훈사의 주지인 이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1928년 낙가산 중턱 일명 눈썹바위 암벽에 조각한 석불좌상으로, 높이 9.2m, 폭 3.3m이다. 머리에는 커다란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네모진 모습이다. 얼굴에 비해 코는 넓고 높으며, 귀는 투박하고 목은 매우 짧게 표현되었다. 옷은 각이 진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가슴에는 큼직한 卍자무늬가 새겨져 있다. 손에는 깨끗한 물을 담은 병을 들고 연꽃무늬 대좌(臺座) 위에 앉아 있으며, 불신 뒤에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가 ..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2호_강화 온수리 성공회 성당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2호 _ 강화 온수리 성공회성당 (江華 溫水里 聖公會聖堂) 수량/면적 : 1동 / 618㎡ 지정일 : 2003.11.10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온수길38번길 14 (길상면) 강화 온수리 성공회성당 시 대 : 1906년 이 교회는 1906년 영국인 주교 조마가(Mark N. Trollope)가 지은 성당 건물로 우리나라의 초기 서양 기독교 교회양식의 건물이다. 성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중앙 1칸을 2층 종루로 삼은 문루와 정면 9칸 측면 3칸의 본당으로 이루어진 건물인데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기법을 활용하여 종교적인 성당건축 방법과 공간 구성을 확립한 동서 절충식 강당형의 목조건물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고, 용마루 양끝에는 연꽃 모양으로 된 곡선미를 살린 돌..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3호_후애돈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3호 _ 후애돈대 (後崖墩臺) 수량/면적 : 1기 / 1,064㎡ 지정일 : 1995.11.15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954 돈대란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영토 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해두는 초소로, 밖은 성곽으로 높게 쌓고 그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 둔다. 강화 53돈대 중의 하나인 이 돈대는 화강암을 이용해 정사각 모양으로 쌓아올렸으며, 대포를 올려놓는 받침대를 4개 설치하였는데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성 위로 낮게 쌓은 담의 일부가 유일하게 남아있어, 1998년에 완전 복원해 놓았다. 인근 마을에는 이 돈대를 훼손하면 재앙이 온다는 전설이 내려오는데, 이 때문에 돈대를 제단처럼 여기고 보호하..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1호_강화 온수리 성공회 사제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1호 _ 강화 온수리 성공회 사제관 (江華 溫水里 聖公會 司祭館) 수량/면적 : 1동 /314.9㎡ 지정일 : 2002.02.04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505-11 강화 온수리 성공회 사제관은 우리나라에 성공회가 처음으로 전파되기 시작할 때, 초대 선교사 고요한 주교와 함께 영국으로부터 내한한 조마가 신부가 1896년 강화에 부임하여 선교를 하면서 2년 후인 1898년에 건축한 건물이다. 이후 사제관이 퇴락하자 1933년 원형 그대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사제관은 영국 성공회가 선교를 시작하면서 영국인 신부가 한국전통 주거문화 속에 어떻게 적응하고 왔는가를 짐작하게 할 수 있는 주거공간으로, 또 건축수법이나 치목형식에서 완전히 한국적인 것만이 아..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0호_강화 석수문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0호 _ 강화 석수문 (江華 石水門) 수량/면적 : 1기 / 77.5㎡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883-1 강화읍의 중심부를 흐르는 동락천 위에 설치하였던 수문이다. 조선 숙종 37년(1711)에 강화산성의 내성을 쌓을 때 연결하여 처음 설치하였으나, 광무 4년(1900)에 갑곶 나루터의 통로로 삼기 위하여 개천 어구에 옮겼다. 그 뒤 1977년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길이는 18.2m이고 높이는 2.7m, 너비는 4.7m이다. 무지개 모양의 수문이 3개이며, 화강암을 다듬어 쌓았다. 강화 석수문 표지판 강화 석수문 강화 석수문 강화 석수문 강화 석수문 강화 석수문 천정 강화 석수문 강화 석수문 강화 석수문 강화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