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현판 4

경운궁(慶運宮) 현판

경운궁 현판(慶運宮 縣板) _ 고종 어필, 대한제국, 1905년(광무 9) 고종이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환궁 당시 임시 정전으로 사용했던 즉조당(卽祚堂)에 걸었던 현판이다. '경사스러운 운수가 가득한 궁'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구름 모양 봉을 갖춘 테두리에 칠보(七寶) 무늬를 장식한 뒤 바탕은 옻칠로 검게 마감했고 글씨는 금박을 붙였다. 위계가 높은 현판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현판 테두리에 어필을 보호하기 위해 씌웠던 사롱(紗籠)을 고정했던 흔적이 보인다. 2022.05.22, 국립고궁박물관_조선의 이상을 걸다, 궁중현판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문화재/편액 2022.06.20

춘방(春坊) 현판

춘방 현판(春坊 懸板) _ 효명세자 예필, 조선, 1829년(순조 29) 왕세자만을 위한 교육 기관인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곧 춘방에 걸었던 현판이다. 조선은 유교적 도리가 체화된 성군을 기르기 위해 세자를 어려서부터 교육했다. 현판에는 보도계옥(輔導啓沃)이라는 문구도 새겨져 있는데 신하가 충성스러운 의견을 아뢰어 왕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세자를 좋은 말로 잘 보필해 성군이 되도록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춘방 현판(春坊 懸板) 2022.05.22, 국립고궁박물관_조선의 이상을 걸다, 궁중현판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문화재/편액 2022.06.01

어전친막(御前親幕) 현판

어전친막 현판(御前親幕 縣板) _ 정조 어필, 조선, 18세기 후반 왕을 호위하는 친위 조직인 별군직(別軍職) 청사에 걸었던 현판이다. 정조가 '왕 가까이에 있는 군막'이라는 뜻인 '어전친막'을 당당한 기상이 느껴지는 행서로 썼다. 정조는 글씨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글씨를 한 사람의 성품을 드러내는 척도로 여겨, 기교적이거나 미적인 글씨보다 기풍(氣風)을 드러낼 수 있는 글씨를 추구했다. 정조는 글씨를 두루 잘 썼으며 특히 행서에 탁월했다. 2022.05.22, 국립고궁박물관_조선의 이상을 걸다, 궁중현판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문화재/편액 2022.05.30

용흥구궁(龍興舊宮) 현판

용흥구궁 현판(龍興舊宮 縣板) _ 숙종 어제어필, 조선, 1693년(숙종 19), 나무, 54.8×216.5cm 용흥구궁 현판 숙종이 글을 짓고 쓴 현판이다. '용龍(왕)이 발흥한 옛 궁'이라는 뜻인 '용흥구궁'을 해서로 썼다. 숙종의 할아버지 효종(孝宗, 재위 1649~1659년)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어의궁(於義宮)을 용의 궁으로 칭해 효종부터 이어지는 왕실의 정통성을 강조했다. 왕을 상징하는 '용龍'자를 다른 글씨보다 위로 올려 배치하였다. 왼쪽에 숙종의 인장인 '신묵宸墨(왕의 인장)'이 새겨져 있다. 묵 용흥구궁 현판(龍興舊宮 縣板) 2022.05.22, 국립고궁박물관_조선의 이상을 걸다, 궁중현판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문화재/편액 2022.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