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군 문화재자료 11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2호_수덕사유물(거문고)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2호  _ 수덕사유물(거문고) (修德寺遺物(거문고)) 수    량 : 1점지정일 : 1984.05.17소재지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20번지 수덕사에 있는 거문고로 만공스님께서 고종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에게 받은 것이다.이조묵(李祖默)이 새긴 공민왕금(恭愍王琴) 이라는 글씨와 함께 만공 스님의 시가 새겨 있다.수덕사유물(거문고) 표지판 수덕사유물(거문고)  수덕사유물(거문고)  수덕사유물(거문고)  수덕사유물(거문고)  수덕사유물(거문고)  수덕사유물(거문고)  만공 스님의 게송 만공 스님의 게송 표지판 대감식안 이조묵의 찬문 대감식안 이조묵의 찬문 표지판 2023.10.22, 예산 수덕사 근역성보관글 문화재청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19호_강민첨장군묘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19호 _ 강민첨장군묘 (姜民瞻將軍墓) 면 적 : 147,174㎡ 지정일 : 1990.12.31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대술면 이티길 341 (이티리) 고려시대의 무신인 강민첨(∼1021) 장군의 묘이다. 목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현종 3년(1012) 안찰사로서 영일 등지에 쳐들어온 여진을 격퇴하였다. 현종 9년(1018)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강감찬 장군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흥화진에서 격파하였다. 그 공로로 1019년에 응양상장군주국·우산기상시가 되고 추성치리익대공신에 기록되었으며, 이듬해 병부상서가 되었다. 묘소는 예산군 대술면 이치리에 있는데, 반구형의 봉분 아랫부분에 잘 다듬은 둘레석을 둘렀다. 묘의 앞에는 상석·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세우..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7호_이한직가옥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7호 _ 이한직가옥 (李漢稙家屋) 수 량 : 1동 지정일 : 1987.12.30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대흥면 동서길 26-4 (동서리) 심암 조두순이 살았다고 전하는 집이다. 조두순(1796∼1870)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조선 순조 26년(1826)에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그 뒤 여러 자리를 거쳐 영의정까지 이르렀으며, 순조·헌종·철종·고종 등 여러 왕을 섬겼다. 현재 가옥은 각각 ㄱ자형 안채와 행랑채, 대문이 딸린 다른 건물 1동이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정면은 행랑채·대문 건물로 앞면 6칸·옆면 1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안채 지붕도 팔작지붕이며, 건물 중앙에 마루가 있다. 이한직가옥 표지판 이한직가옥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6호_박기성가옥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6호 _ 박기성가옥 (朴基星家屋) 수 량 : 2동 지정일 : 1987.12.30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대흥면 하탄방리 102번지 조선 인조 16년(1638)에 박범성이 세운 가옥이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인 우진각지붕으로 꾸몄다. 왼쪽 1칸은 누각으로 되어 있다 박기성가옥 표지판 박기성가옥 (朴基星家屋) 전경 1638년(인조 16)에 창성부사(昌城府使)를 지낸 박범성(朴範成)이 세운 조선 시대의 전통 가옥이다 사랑채 앞 작은 연못 박기성가옥 대문 박기성가옥 사랑채 이 건물의 특징은 용마루에서 지붕면이 사방으로 다 비탈져있어 박공이 없는 지붕 양식인 우진각 지붕에 겹처마로 된 건물로 후대에 시멘트로 기단을 보강하였으나 초석은 자연초석에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5호_정대영가옥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5호 _ 정대영 가옥 (鄭大泳家屋) 수 량 : 1동 지정일 : 1987.12.30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 225번지 시 대 : 1926년 정대영 씨가 소유하고 있는 한식 기와집이다. ㅡ자형 평면을 갖춘 건물로 앞면 7칸 반·옆면 2칸 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대문에서부터 부엌·방 2칸·마루·건넌방 순서로 되어 있다 정대영 가옥 표지판 정대영 가옥 전경 1926년에 정대영의 조부인 정홍모(鄭弘謨)가 지었다고 전하며, 현재는 정대영 씨가 소유하고 있는 한식 기와집이다. 정대영 가옥 전경 정대영 가옥 전경 ㄱ자형 초가지붕인 행랑채 후면 정대영 가옥 대문 대문은 ㄱ자형 초가지붕 행랑채에 붙어 위치하며 오른쪽 끝 부엌 안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0호_덕산온천지구유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0호 _ 덕산온천지구유 (德山溫泉地球乳) 수 량 : 1기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동리 15번지 온천약수가 나온 것을 기념하고 알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자연스러운 돌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앞·뒤·옆면만 평평하게 다듬었고, 앞면에 ‘지구유’라는 글씨를 큼지막하게 새겨 넣었다. 예산군에서는 1918년 덕산 지역에 온천을 개발하면서 그에 따른 부속건물 공사를 하였다. 그후 1947년에도 지하 180m까지 굴착작업을 진행하였는데, 이 때 온천약수가 나오자, 땅에서 나온 것이라는 의미로 약수의 명칭을 ‘지구유’라고 하여 새로이 건물을 짓고 이 비를 세웠다 덕산온천지구유 표지판 덕산온천관광호텔 전경 지구유의 위치는 덕산온천관광호텔 앞 우측에 있습..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86호_이의배신도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86호 _ 이의배신도비 (李義培神道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봉산면 봉명산로 99-43 (봉림리) 시 대 : 조선후기 소유자(소유단체) : 한산이씨아계공파종회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비석에 기록하여 그의 묘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에는 조선시대 중기의 무신인 이의배의 공적을 적고 있다. 이의배(1576∼1637)는 선조 32년(1599)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으며 곧 감찰에 임명되었다. 광해군 때에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다가 인조반정 후 통정으로 승진하여 명천부사가 되었다. 이괄의 난 후에는 전라좌수사가 되었고, 이후 여러 관직을 거치다가 인조 13년(1635) 공청병마절도사로 다시 부임하여 이곳에서 병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2호_이억장군 정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2호 _ 이억장군 정려 (李檍將軍旌閭) 수 량 : 1동 지정일 : 1986.11.19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봉산면 금치리 산110-6번지 남한산성 패전 후 자살한 증병조참의 신암 이억 장군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정려각이다. 건물은 앞면·옆면 모두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정려각 4면에는 화살 모양의 나무(홍살)를 돌려 놓았다 이억장군 정려 표지판 이 표지판에서 좌측으로 200m 가면 이억장군 정려를 만날수 있다. 금치리 마을 풍경 이억장군 정려 (李檍將軍旌閭)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싸우다가 순국한 신암(愼庵) 이억(李檍)장군의 충정(衷情)을 기리기 위해 붉은 문을 세운 정려이다. 이억장군 정려 우측면 이억장군 정려 우측면 이억..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73호_향천사 천불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73호 _ 향천사천불전 (香泉寺千佛殿) 수 량 : 1동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남 예산군 예산읍 향천사로 117-20 (향천리) 시 대 : 조선 후기 추정 향천사는 수덕사에 딸린 절로 백제 승려 의각이 세운 절이다. 절 경내에 있는 극락전에서 7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천불전은 자연석 기단 위에 세운 법당이다. 앞면 4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을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의 앞면에는 모두 여닫이문을 달았고, 주춧돌은 잘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사용하였다. 건물 안쪽에는 현재 1,515기의 불상을 모시고 있는데, 작은 불상은 거의 석고상..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74호_향천사 구층석탑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74호 _ 향천사 구층석탑 (香泉寺 九層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84.05.17 소재지 : 충남 예산군 예산읍 향천사로 117-20 (향천리) 향천사 나한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9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탑신은 몸돌의 모서리에 각각 기둥 모양을 본 떠 새겼다. 탑신의 2층 몸돌은 1층에 비해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며, 4층 부터는 몸돌이 없어진 채 지붕돌만 포개져 있어 옛 탑이 지니고 있었을 아름다움을 많이 잃고 있다. 얇고 넓적한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고 있으며, 처마의 선이 양쪽 가에서 부드럽게 위로 들려 우아한 곡선을 이루는데,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파손된 부분들이 눈에 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