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 장승업 4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의 <묵국도>

먹으로 그린 국화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1843~1897) 특유의 빠르고 거친 필치로 그려진 이다. 자유분망한 붓의 놀림으로 그려진 잎사귀로 인해 마치 바람에 휘날리는 국화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화면 좌측의 두 인장은 모두 장승업의 것이다.한편 화면 왼쪽 국화를 그린 먹보다 더 진한 먹으로 쓰여 있는 글은 정대유(丁大有, 1852~1927)의 것이다. 정대유는 서화가 정학교(丁學敎, 1832~1914)의 아들이다. 정학교는 장승업의 그림에 제발을 가장 많이 쓴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장승업은 글에 능하지 못하여 대게 다른 서예가들이 그림에 글을 남겼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버지 정학교의 영향을 받은 정대유도 장승업의 국화도에 제시를 남긴 것으로 생각된다.  2023.02.08, 서울대학교박물관전시..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의 <산수도>

_ 전(傳)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1843~1897), 조선 19세기 후반, 비단에 엷은 색, 2018년 손창근 기증 산세는 몽글몽글하게, 바위와 언덕 표면 그리고 나뭇잎은 가로로 긴 선으로 표현한 산수화다. 이러한 표현 방식을 이해하는 데 그림 오른쪽 위에 적힌 "원나라 화가 왕몽이 남송의 미불의 필의를 본받아 그린 그림을 다시 본받았다"는 글이 도움이 된다. 미불은 안개 낀 산수를 붓을 뉘어 찍어서 표현했고, 왕몽은 빽빽하게 채운 산수를 그렸는데 두 화가의 특징이 그림에 잘 섞여 있다. 그림오른쪽 아래에 '장승업인(張承業印', '오원(吾園)'인장이 찍혀 있는데, 장승업의 그림이 중국 회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_ 전(傳) 오원(吾園) 장승업(張..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의 <송하녹선>

_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1843~1897), 지본담채, 126.8×64.1cm, 간송미술관 소장 소나무 아래 사슴 신선 늙은 소나무 아래에 늙은 신선이 사슴에 기대서 있고 동자는 그에게 큼지막한 복숭아 하나를 바치는 정경을 그린 그림이다. 담묵과 담채를 써서 경쾌하게 처리한 그림으로 감필의 자유로움이 마음껏 발휘되어 신선의 탈속한 풍취가 옷깃으로부터 일어나는 듯하다. 나무의 묘사도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간략하게 표현하여 속진을 떨어낸 듯하다. 담청(淡靑)을 주로 선염법 역시 담묵의 아름다움과 함께 마치 현대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청결감을 자아낸다. 필치와 관서로 보아 만년기 작품으로 추전된다. _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1843~1897) 간송미술관_보화수보(간송의 보물 다시 만나다) 전시자..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의 태평항해도(太平航海島)

태평항해도(太平航海島) _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1843 ~ 1897), 조선 19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태평항해도(太平航海島)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한가운데 배 한척이 떠 있고, 화면 오른쪽에는 '태평항해도(太平航海島)'라는 화제와 함께 '운미대인의 명으로 그렸다(云楣大人命書)'는 제발(題跋)과 화가 '장승업(張承業, 1843 ~ 1897)'의 이름이 적혀있다. 제발을 통해 명성왕후의 친정 조카인 운미(云楣) 민영익(閔泳翊, 1860~1914)이 장승업에게 주문한 그림임을 알 수 있다. 민영익은 1880년대 개화정책의 핵심 인물로, 서양 국가와의 첫 수교였던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의 체결 후 외교사절단 보빙사(報聘使)의 전권대신으로 임명되어 미국 대통령에게 국서를 전달하였다. 마치 먼 바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