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허 1892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35호_고창 무장동헌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35호 _ 고창 무장동헌 (高敞 茂長東軒) 수    량 : 1동지정일 : 1973.06.23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무장읍성길 45 (무장면, 무장읍성)시   대 : 조선시대 명종20년(1565) 고창 무장동헌은 관아에서 업무를 처리하던 중심 건물로 당시 현감이 집무하던 곳이다. 조선 명종 20년(1565)에 세웠으며, 한때 무장초등학교 교실로 사용하기도 하여 변형이 된 것을 1989년 원형으로 복원하였다. 앞면 6칸·옆면 4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으로 전체적으로 장중한 느낌을 주는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고창 무장동헌 표지판  무장읍성에서 바라본 무장동헌 전경 고창 무장동헌 삼문 및 담장 고창 무장동헌 고창 무장동헌 * 현재..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34호_고창 무장객사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34호 _ 고창 무장객사 (高敞 茂長客舍) 수    량 : 1동지정일 : 1973.06.23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무장읍성길 45 (무장면, 무장읍성)시   대 : 조선시대 선조14년(1581) 이 건물은 조선시대 무장현의 객사로 쓰이던 것으로 선조 14년(1581)에 건립하였다. 객사는 궐패를 모셔 두고 현의 수령이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배례하는 정청과 왕명으로 지방에 내려오는 벼슬아치들의 숙소로 쓰이는 좌·우현으로 구성된다. 이 객사의 정청은 바로 위까지 내려와 있다. 눈썹은 초승달처럼 갸날프게 처리되어 있고 눈은 반쯤 뜨고 정면 3칸, 측면 3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초석의 석재 하부는 네모지게 상부는 반구형으로 다듬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운 외에 별다른 특..

일호(一濠) 남계우(南啓宇)의 <나비>

<나비(群蝶圖)>_ 일호(一濠) 남계우(南啓宇, 1811~1890) , 조선 19세기, 종이에 색(紙本彩色), 국립중앙박물관 붉은 바탕에 금가루가 화려하게 뿌려진 종이 위에 다양한 나비와 나방이 그려져 있다. 나비 떼가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어 활짝 날개를 펼치거나, 반만 펼치거나, 나비의 다채로운 동작이 담겨 있다. 남계우는 나비를 잡아서 관찰하였는데, 나비 날개 무늬를 특히 섬세하게 그렸다. 그의 나비 그림을 보면, 나비의 종류를 구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컷과 암컷의 발생 계절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나비 실물과 닮았다.<나비(群蝶圖)>_ 일호(一濠) 남계우(南啓宇, 1811~1890) <나비(群蝶圖)>_ 일호(一濠) 남계우(南啓宇, 1811~1890) <나비(群蝶圖)>_ 일호(一濠) 남계우(南啓宇..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_당진 영랑사 대웅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 _  당진 영랑사 대웅전 (唐津 影浪寺 大雄殿) 수    량 : 1동지정일 : 1973.12.26소재지 : 충청남도 당진시 진관로 142-52 (고대면, 영랑사)시   대 : 조선시대 중기 영랑사는 신라 진흥왕 25년(564)에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설과 백제 의자왕 8년(648)에 당나라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두 가지 설이 있으나 모두 신빙성이 없다. 고려 선종 8년(1091) 대각국사 의천이 크게 수리하면서 사찰의 면모가 갖추어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 숙종 4년(1678)에 보수하였고, 일제시대에도 대웅전을 수리하였다.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17호_채운포 석교비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제217호 _ 채운포 석교비 (彩雲浦 石橋碑) 수    량 : 1기지정일 : 1984.05.17소재지 : 충남 당진시 당진읍 채운리 채운포에 돌다리를 놓은 것을 기념하고자 세워 놓은 비로, 받침돌과 머릿돌이 없어진 채 비몸만 남아 있다. 비몸의 꼭대기 가운데 부분이 볼록하고 네모나게 돋아있어 여기에 비의 머릿돌을 얹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비의 윗부분에는 비의 명칭을 새기고, 그 아래에 비문을 새겼는데, 아래의 작은 글자들은 거의 알아볼 수가 없으며, 맨 끝부분에 ‘승정기원후 51년(1688) ’이란 연대를 겨우 알아볼 수 있을뿐이다. 비의 옆면에는 스님들의 이름으로 보이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원래 역천 갯가에 있던 것을, 1960년대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운 것이라 한다.채운..

마곡사(麻谷寺)

_ 1703년(조선 숙종 29), 마곡사 성보박물관 「마곡사 」는 「순치12년을미시월일공주목입안(順治十二年乙未十月日公州牧立案) 」, 「공주화산마곡사주지승경열등 등정(公州華山麻谷寺住持僧敬悅等 登程) 」, 「화산마곡사사실|(華山麻谷寺事案) 」로 구성된다. 이중  「화산마곡사사실 」에는 창건기록이 소략하게 적힌 대신 성화(成化, 1465~1487) 연간 세조(재위 : 1455~1468)의 마곡사 행차가 새로 추가 되었다. 양 난후 중창과 관련하여, 공주목사 이태영 외에 주지 각순(覺淳)과 박야외(朴野外) 거사, '묘수장사(妙手匠師 : 빼어난 승려 장인)'로 불리던 운혜(雲惠)스님의 중수 내용 등을 비롯하여 사찰 내부 인물들을 자세하게 기록하였고, 종이를 만드는 지소를 복구하였다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화산마곡..

문화재/고문서 2024.05.12

취화(醉華)의 <장자와 나비>

_ 취화(醉華, 19세기 추정),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紙本淡彩), 국립중앙박물관장자의 나비 꿈 고사와 관련된 그림이다. 그림 속 장자는 풀밭 위 나비를 잡고 싶은 듯 손을 뻗고 있다. 나비 형상을 먹을 번지게 하여 표현하고, 더듬이와 다리는 가는 먹선으로 간략하게 그렸다. 오른쪽 위에는 '취화(醉華)'라는 관서가 있고, 아래는 '장무상망(長母相忘)' 인장이 찍혀 있는데, 인장 내용은 "서로 오래도록 잊지 말자"는 뜻이다. 취화(醉華)인문(印文) : 「장무상망(長母相忘)  나비 그림 속 의미 : 장자의 꿈속 나비 중국 고대 철학가인 장자(莊子)는 어느 날 나비가 된 꿈을 꾸었습니다. 조선에서 장자의 나비 꿈 고사가 너무도 유명해 문인들은 그림 속 나비를 보면서 나비가 된 장자가 아닐까 생각하기..

마곡사적(麻谷寺蹟)

_ 1670년(조선 현종 11) 전후 추정, 마곡사 성보박물관 사적기(寺蹟記)는 창건부터 중수까지 사찰이 거쳐온 시간을 담은 문헌기록으로, 사찰 연혁 연구의 기초자료가 된다.『마곡사적 』은 마곡사에 전해오는 가장 오래된 사적기이다. 「화산마곡사적(華山 麻谷寺蹟) 」과 「불일보조국사행적비명병서(佛日普照國師行蹟碑銘幷序) 」가 게재되어 있다. 「화산마곡사적」은 자장율사의 마곡사 창건과 보조국사 지눌이 폐찰이던 마곡사를 중건한 내용을 자세하게 전하고 있으며, 임진, 병자의 난으로 사적의 기록과 불사리 2매를 잃고 전각과 당우들이 무너져 황폐해진 마곡사를 1649년(조선 인조 27) 공주목사 이태연(李泰淵,1615~1669)의 시주로 재건한 사실, 재상(宰相) 이귀(李貴, 1557~1633)의 아들형제인 이시백(..

문화재/고문서 2024.05.11

마곡사 금강역사상 복장물

_ 조선전기로 추정, 마곡사 성보박물관  속세를 벗어나 불교세계로 들어가 해탈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의미를 지닌 마곡사 첫 관문인 해탈문(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6호) 내부에 안치된 금강역사상에서 발견된 복장품이다.    2023.11.05, 마곡사 성보박물관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