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비지정문화재

강수영정(强首影幀)

기리여원 2023. 1. 1. 19:05

강수영정(强首影幀) _ 제작 작가 동강(東江) 권오창(權五昌)

 

신라시대 유학자 · 문장가. 초명은 두(頭). 내마(奈麻) 석체(昔諦)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유학에 뜻을 두어 《효경(孝經) 》 《곡례(曲禮) 》 《이아(爾雅) 》 《문선(文選) 》 등을 수학, 벼슬길에 오른 후 문장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654년 (태종무열왕 1) 당나라에서 온 난해한 국서(國書)를 쉽게 해석하고 그 답서(答書)도 유창하게 지어 왕의 신임을 얻었다. 재물에 뜻이 없어 집안이 가난한 사실이 왕에게 알려져 세사미(歲賜米) 100석을 하사받았으며, 문무왕 때는 외교문서를 능숙하게 다루어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웠다하여 세조(歲祖) 200석을 받고 사찬(沙湌) 벼슬에 올랐다. 신문왕 때에 처음으로 국학(國學)을 설치하여 여러 박사(博士)를 두었는데, 그 때 설총(薛聰)과 함께 제자들을 가르쳤다.

 

강수영정(强首影幀)

 

우두(牛頭)  강수(强首)

 

초명은 우두(牛頭). 중원소경(中原小京 : 지금의 충청북도 충주)의 사량(沙梁) 출신. 육두품(六頭品)으로 보이는 내마(奈麻)석체(昔諦)의 아들이다. 신라사회에서 육두품 이하의 신분으로 유학·문장학을 가지고 진출한 지식층이며, 신흥 유교관료적 성격의 사람으로, 현존하는 기록상 최초의 본격적인 유교적 문인이다.

 

2022.12.29, 충주박물관

전시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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