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경상북도 129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31호_무이서당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31호 _ 무이서당 (武夷書堂) 수 량 : 2동 지정일 : 1987.05.13 소재지 : 경북 예천군 용궁면 무이리 423-1번지 소유자(소유단체) : 여주이씨참의공파종중 조선 숙종 36년(1710)에 여주 이씨 시조인 태사공 이인덕의 20대손 이지섬과 21대손 이식이 후손들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서당이다. 이 서당은 앞면 4칸·옆면 2칸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앞면 4칸 중 가운데 2칸은 우물 정(井)자 모양의 마루를 깐 대청이고, 양 끝칸은 온돌방이다. 서당 뒤편에는 16대손인 이윤수(1545∼1594) 선생을 제사지내는 사당이 있다. 무이서당 표지판 무이서당 표지석 무이서당 전경 무이서당 무이서당은 조선 숙종 36년(1710) 여주이씨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_예천 간방리 삼층석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 _ 예천 간방리 삼층석탑 (醴泉 澗芳里 三層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84.12.29 소재지 : 경북 예천군 보문면 간방리 290번지 이 석탑은 이중(二重) 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올려 세웠다. 기단부의 구성, 지붕돌의 조성수법으로 신라 하대의 양식을 보여 주는 매우 세련된 탑으로서, 이 지방의 신라 석탑을 대표할 만한 것이다. 이 마을에서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이 곳에 큰절과 3기의 탑이 있었다고 하나 확인할 문헌이 없다. 다만 이 석탑이 서 있는 주변에는 석탑의 부재와 기와조각을 볼 수 있고 이 밖에 순금불상, 청동불상 등이 발견되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현존 탑 이 외에도 석탑이 더 있었던 절터임을 짐작할 수 있다 예천 간방리 삼층석탑 표지판 예천 간방리 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81호_퇴계선생 수묵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81호 _ 퇴계선생수묵 (退溪先生手墨) 수 량 : 1점 지정일 : 2022.09.05 소재지 : 경상북도 예천군 죽림길 43 (용문면, 예천권씨종택종가별당) (예천박물관 보관) 시 대 : 조선시대 ‘퇴계선생수묵(退溪先生手墨)’은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이 초간 권문해(權文海, 1534-1591)에게 필사하여 준 것으로, 송나라 남당(南塘) 진백(陳柏)이 지은 ‘숙흥야매잠’을 직접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책의 표지명은 묵서(墨書)로 ‘퇴계선생수묵’이라 제첨(題簽)되어 있으며, 권수제는 ‘숙흥야매잠’이다. 권말 발문을 통해, 임란 이후 권문해의 증손 죽헌공(竹軒公)이 글을 찾아내어 1차 선장(繕粧)을 하였고, 권문해의 8대손인 권현상(權顯相, 1782-1840)이 발문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1호_희령군 어사금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1호 _ 희령군 어사금 (熙寧君 御賜琴) 수 량 : 1대 지정일 : 1989.05.29 소재지 : 경북 예천군 용문면 구계리 243번지 조선 태종이 보관해오던 거문고를 그의 여섯째 아들인 희녕대군에게 주었다고 하여 ‘어사금’이란 이름이 붙은 거문고로, 현재는 전주이씨 희녕군파의 가보로 내려오고 있다. 길이 120.3㎝, 너비 15.9㎝, 두께 12㎝로 작은 편이며, 오동나무와 밤나무로 만들었고, 부재료로 명주실과 소가죽이 사용되었다. 명주실을 꼬아 만든 6줄의 현을 술대로 쳐서 소리를 내도록 하였다. 이 거문고에는 섬세한 솜씨로 조각한 문양이 있고, 전체적인 모양새가 매우 아름답다 희령군 어사금 (熙寧君 御賜琴) 희령군 어사금 (熙寧君 御賜琴)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1호로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_예천 흔효리 석조여래입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_ 예천 흔효리 석조여래입상 (醴泉 欣孝里 石造如來立像) 수 량 : 1구 지정일 : 1979.01.25 소재지 : 경북 예천군 풍양면 흔효리 49-4번지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흥천사 옛 절터에 석등(石燈)의 재료와 함께 놓여 있는 전체 높이 1.78m의 불상이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커다란 머리묶음이 있으며 얼굴은 풍만하다. 어깨는 둥글며 가슴은 부피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내리고 왼손은 가슴에 든 채 온화하게 서 있는 자세에서 뛰어난 조각성이 나타난다. 신라 불상의 전통이 짙게 남아 있는 작품으로, 당대의 지방양식 불상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예로 평가된다. 예천 흔효리 석조여래입상 표지판 예천 흔효리 석조여래입상 표지석 대흥저수지 아래에 위치해 있습니다. 예..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6호_보문사 삼층석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6호 _ 보문사 삼층석탑 (普門寺 三層石塔) 수 량: 1기 지정일 : 1984.12.29 소재지 : 경북 예천군 보문면 보문사길 243 (수계리) 시 대 ; 고려시대 추정 보문사 극락보전 오른쪽에 서 있는 3층 석탑으로, 고려 명종 15년(1185) 승려 지눌이 절을 새단장하면서 나한전의 본존불인 석가여래상을 증명하기 위해, 당시 경내의 운계암 뜰에 이 탑을 세웠다 한다. 땅 위에 커다란 자연석 암반을 두어 바닥돌을 삼고 그 위에 2층 기단(基壇)과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독특한 모습이다. 위·아래층 기단과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에서 위로 들려 있다. 형식적으로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08호_봉화 경체정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08호 _ 봉화 경체정(奉化 景棣亭) 수 량 : 1동 지정일 : 2017.05.15 소재지 : 경상북도 봉화군 경체정길 10 (법전면) 경체정은 예조좌랑과 승지를 지낸 강윤과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강완, 그리고 가의대부를 지낸 강한 3형제의 우애와 덕행을 기리기 위해 강윤의 증손자인 강태중이 철종 9년(1858)에 지은 정자이다. 정자는 앞면 2칸·옆면 2칸 규모의 정사각형 건물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썼다. 봉화 경체정 표지판 양대(兩代) 참판(參判) 표지판 양대(兩代) 참판(參判) 영남지방에서 참판은 귀해서 한양의 정승과 같은데, 영남에서는 2가문 만이 양대(兩代) 참판(參判)을 배출하였다. 안동권씨 닭실마을..

송림에 둘러싸여 운치있는 안동 삼귀정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3호 _ 삼귀정 (三龜亭) 수 량 : 1동 지정일 : 1985.12.30 소재지 : 경북 안동시 풍산읍 지풍로 1975-1 (소산리) 사헌부 장령을 지낸 김영수(1446∼1502)가 88세의 늙은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리고자, 조선 연산군 2년(1496)에 지은 정자이다.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고 1947년에 다시 지음으로써 오늘에 이른다. 삼귀정이라는 이름은 십장생 중의 하나인 거북이와 같이 생긴 세 개의 바위가 정자 마당에 있어서 붙여진 것인데, 어머니의 장수를 기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4면이 모두 개방된 형태로 주변 경치와 어울려 경관을 더해준다. 삼귀정 (三龜亭) 표지판 표지판과 표지석..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5호_안동 광흥사 응진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5호 _ 안동 광흥사 응진전 (安東 廣興寺 應眞殿) 수 량 : 1동 지정일 : 2012.10.22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광흥사길 105 (서후면) 광흥사는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전하는 절로 안동에서 가장 큰 절 가운데 하나였으나,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이 거의 없어 부속 건물이었던 응진전을 중심 법당으로 쓰고 있다.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다. 안동 광흥사 응진전 표지판 안동 광흥사 응진전 표지석 안동 광흥사 응진전 학가산(鶴駕山) 남쪽 기슭에 위치한 광흥사는 신라시대 때 의상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0호_안동 임하동 오층석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0호 _ 안동 임하동 오층석탑 (安東臨下洞五層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84.12.29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656번지 시 대 : 고려시대 추정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5층 석탑으로, 기단부가 완전히 땅 속에 파묻힌 채, 탑 전체가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하여 세운 것이다. 위층 기단과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고, 특히 탑신의 1층 몸돌에는 문모양을 새겨두었다. 두툼한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는 통일신라의 석탑과는 달리 탑신의 몸돌이 단조롭고 불안정하게 줄어들었으며, 지붕돌이 두툼해지고 받침이 4단으로 줄어드는 등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