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경상북도 129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4호_천성사 삼층석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4호 _ 천성사 삼층석탑 (千聖寺 三層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79.01.25 소재지 : 경상북도 봉화군 꿀덩이길 93 (봉성면) 천성사 입구의 길 왼쪽에 놓여 있던 것을 절 안으로 옮겨 세운 것으로, 원래는 쌍탑이 나란히 서 있었으나, 나머지 하나는 봉성초등학교로 옮겨 놓았다. 탑은 전체의 무게를 받쳐주는 기단(基壇)을 1층으로 쌓고, 그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이 비록 1층이지만, 높게 마련해 두어 안정감을 잃지 않았다. 기단의 네 면과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가느다란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얇아 보이는 지붕돌은 처마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으며, 밑면의 받침은 1, 2층은 4단으로 각이 지게 마련..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4호_봉화 오전리 석조아미타여래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4호 _ 봉화 오전리 석조아미타여래좌상 (奉化 梧田里 石造阿彌陀如來坐像) 수 량 : 1구 지정일 : 1982.02.24 소재지 :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1144-1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에 있는 석불좌상으로 머리만 없어졌을 뿐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다. 당당한 어깨에 가슴은 건장하며 허리는 잘록한 모습이다. 손은 왼손은 무릎 위에 올리고 오른손 끝을 아래로 향하고 있다. 왼쪽 어깨만 걸친 얇은 옷은 몸에 밀착되어 사실감을 더해주고 있으며, 옷주름은 평행계단식으로 묘사하였다.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상대·중대·하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대와 하대에는 화려한 연꽃잎을 새겼다. 8각형의 중대는 각 면에 사천왕 입상을 돋을새김하였다. 신라말의 전형적인 석불상으로 부석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91호_봉화 청량사 건칠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91호 _ 봉화 청량사 건칠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수량 : 1구 및 복장일괄 지정일 : 2015.12.28 소재지 : 경상북도 봉화군 얼굴, 신체, 착의법 등을 통해 12~13세기에 영남지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像으로서 고려시대 불상 연구에 매우 귀중한 사례라고 판단된다. 이 불상은 옻을 입힌 삼베를 여러 겹 붙여 제작한 건칠상으로서 손은 칠포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보관, 배면 등에 보수와 손상이 있으며 도금 상태도 양호하지 않지만 전체적인 외양은 잘 유지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제작 사례가 많지 않은 건칠ㆍ칠포상이며, 嵌入기법이 사용된 눈을 가지고 있는 등 희귀성이 돋보이는 불상이다. 2015.12.26. 봉화 청량사 유리보전 글 문화재청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28호_봉정사 소장 유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28호 _ 봉정사소장유물 (鳳停寺所藏遺物), 아미타극락회상도 수량/면적 : 일괄 지정일 : 2001.11.01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태장리) 시 대 : 조선 영조 45년(1759) 봉정사 소장 유물 중 책판, 탱화, 고승진영이 지정되었다. 천등산 기슭에 있는 봉정사는 신라 신문왕 2년(682)에 의상대사가 세운 절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도력으로 만든 종이 봉황을 부석사에서 날리자 이 곳에 내려 앉아 봉정사라 불렀다고 한다. 봉정사에는 다양한 서적의 판목이 있는데 대개 조선 영조 45년(1759)경에 10여종을 판각한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 후기이긴 하지만 지방의 사찰에서 판각한 목판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판각도 정교하고 목판의 상태도 양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94호_안동 광흥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94호 _ 안동 광흥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安東 廣興寺 冥府殿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 수 량 : 21구 지정일 : 2016.04.28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자품리 813 소유자(소유단체) : 광흥사 안동 광흥사의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등은 총 21구의 불상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의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삼존을 이루고, 좌우로 시왕, 판관, 사자, 귀왕, 인왕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 불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의하면, 수조각승 단응(端應)을 비롯한 15명의 조각승들에 의해 1692년(강희 31)에 완성된 것으로 확인되며 동자상을 제외한 완결된 구성을 보여 준다. 기록이 남아 있을 뿐만..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89호_안동 봉황사 목조삼전패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89호 _ 안동 봉황사 목조삼전패 (安東 鳳凰寺 木造三殿牌) 수 량 : 3점 지정일 : 2015.12.28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봉황사길 152 (임동면) 시 대 : 조선 1692~1694 추정 안동 봉황사 목조삼전패는 봉황사 대웅전 불단 위에 봉안되어 있는 「主上殿下壽萬歲」, 「王妃殿下壽齊年」, 「世子邸下壽千秋」 등이 적힌 3점의 목전패이다. 이들 전패는 모두 패좌와 패신 두 장의 목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음양각 등의 조식은 거의 없는 단순한 모양이다. 「主上殿下壽萬歲」전패의 배면에 조성기가 墨書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1692년이라는 제작연대와 봉안처, 조각가 등을 알 수 있다. 봉황사 삼전패는 조성연대와 조성자 琢璘을 알 수 있어 대다수 연대를 알 수 없는 불교 목공예..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58호_의성 수정사 지장시왕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58호 _ 의성 수정사 지장시왕도(義城 水淨寺 地藏十王圖) 수 량 : 1폭 지정일 : 2021.03.22 소재지 : 경북 의성군 금성면 수정사길 420 시 대 : 조선시대 불화 양쪽 아래에 적힌 화기畵記(불화에 쓰여진 기록)를 통해, 도광(道光) 원년인 조선 순조 21년1821에 사불산화파四佛山畵波*의 대표적 화승인 퇴운당退雲堂 신겸(信謙)(1790∼1830년경 활동)이 수화승首畵僧으로서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둥근 모양의 두광(頭光)에 타원형 신광(身光)을 구비한 본존인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존격尊格들을 위아래 4단으로 층을 나누어 구성하였다.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 및 십대왕상을 비롯한 총 34명의 인물들을 중앙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이 같게 배치한 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27호_의성 대곡사 삼화상·조사진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27호 _ 의성 대곡사 삼화상 · 조사진영 (義城 大谷寺 三和尙 · 祖師 眞影) 수 량 : 4폭 지정일 : 2010.11.11 소재지 : 다인면 봉정리 894 시 대 : 1793년 三和尙 眞影」과 「淸虛堂 休靜 眞影」, 「泗溟堂 惟政 眞影」, 「抱虛堂 曇秀 眞影」 등 4폭의 眞影은 현재 의성 대곡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삼화상 진영, 청허당 진영, 사명당 진영 등은 1782년에 같은 畵員에 의해 동 시기에 제작 되었고 특징적인 도상의 畵風이 비슷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특히, 나옹·무학·지공의 삼화상은 한 폭에 그린 도상으로는 현존 진영 중 가장 이른 예에 속한다. 의성 대곡사 삼화상 · 조사진영 표지판 _ 조선 1782년, 비단에 채색, 의성 대곡사(불교중앙박물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13호_안동 광흥사장금자사경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13호 _ 안동 광흥사장금자사경 수 량 : 1점 지정일 : 1999.12.30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서후면 광흥사길 105 (자품리) 소유자(소유단체) : 광흥사 사경은 공덕 수행을 위한 신앙의 차원에서 정성들여 경문을 쓰고 불경을 요약한 변상(變相)을 그려 장엄하게 꾸민 것을 총칭한다. 후진(後秦)의 구마라습이 번역한 금자경은 불상의 몸에 넣기 위해 처음에는 전체길이 7m의 종이를 이어 붙여 두루마리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가로 7.4㎝, 세로 16.5㎝크기로 병풍처럼 접은 첩모양이다. 간행기록이 없어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지만 나옹화상의 어록과 발원문(發願文:책을 만드는 이유와 만든 사람들에 대해 적은 글)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나옹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나옹화상(132..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7호_분황사 화쟁국사비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7호 _ 분황사 화쟁국사비부 (芬皇寺 和諍國師碑趺) 수 량 : 1기 지정일 : 1979.01.25 소재지 : 경북 경주시 구황동 313번지 분황사 내의 우물 옆에 놓여 있는 것으로, 원효대사를 기리는 비의 받침돌이다. 낮은 직육면체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네 모서리가 떨어져 나가 많이 훼손되었다. 윗면에는 비를 꽂아두기 위한 홈이 파 놓았고, 옆면에는 옅은 안상(眼象)을 새겼다. 고려 명종대(1170∼1197) 한문준이 건립한 화쟁국사비의 대석이 남아있는데, 원효대사를 위한 비석이나 시호(諡號 : 죽은 이의 덕을 기리어 붙여주는 호)가 없음을 애석하게 여긴 왕이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석을 세우도록 하였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오다가 김정희가 절 근처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