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1724호 _ 박사익 초상(朴師益 肖像)
수 량 : 1점
지정일 : 2011.11.01
소재지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운중동, 한국학중앙연구원)
시 대 : 1726년
박사익(1675~1736)은 조선조 후기 경종,영조 때의 문신이다. 본관은 반남(潘南)이며, 자는 겸지(謙之), 호는 노주(鷺州), 시호는 장익(章翼)이다. 박동량(朴東亮)의 후손이며, 참봉 박필하(朴弼賀)의 아들이다. 1710년(숙종36) 생원이 되고,1712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관으로 발탁, 설서(說書)를 겸하였다. 검열(檢閱), 정언(正言), 수찬(修撰)을 역임하고, 도당록(都堂錄)에 선발되었다. 그 후 1717년 70세에 가까운 노부모의 봉양을 위해 외직을 자청하여 강서현령을 나갔다. 이어 부교리를 거쳐 당시 대리청정하던 왕세자 경종을 위하여 시무에 가장 절실한 상소를 올려 채택되었으며, 이조좌랑에 임명되었다.
경종 즉위 후 전라도관찰사를 거쳐, 노론과 소론의 첨예한 갈등 속에서 신임사화(辛壬士禍)가 일어나자 공신회맹에 불참한 죄로, 태인(泰仁)에 귀양 갔다가 다시 청하로 이배되었다. 영조가 등극하자 귀양에서 풀려 직첩을 돌려받았으며, 이조참의를 거쳐 강화유수에 임명되어 강화의 성곽을 보수하였다.
1727년(영조3) 특지로 병조판서가 되고, 이어 금원군(錦原君)에 봉해졌으며, 대사헌을 거쳐 형조, 공조, 예조판서를 지내고, 좌참찬이 되었다. 1736년(영조 12)에 졸하였다. 글씨에 뛰어나 <우의정민진원비(右議政閔鎭遠碑)>,<예조참판인적비(禮曹參判安積碑)> 등이 전하고 있다.
<박사익 초상>은 화폭의 오른쪽 상단에 ‘금원옹오십이세상(錦原翁五十二歲像)’이라는 표제가 적혀 있는데, 오사모에 녹색 단령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교의좌상이다. 얼굴은 오른쪽으로 살짝 돌린 좌안8분면이며, 손은 공수자세를 하고 있다. 사모의 높이는 제법 높아 영조연간 초기의 모제를 반영하고 있으며, 가슴에는 종이품(從二品) 벼슬아치임을 지시하는 학정금대(鶴頂金帶)와 아울러 쌍학문양(雙鶴文樣)의 흉배가 보인다. 의자에는 호피가 깔려 있으며, 족좌대(足座臺)위에 팔자형(八字形)으로 벌린 양화(兩靴)사이로는 호랑이 얼굴이, 그리고 족좌대 바깥쪽으로는 호피의 양 발이 자연스럽게 놓여 있다. 또한 바닥에는 채전도 돗자리도 깔려 있지 않다.
안면은 전체적으로 밝은 살색을 주조로 하고, 보다 짙은 색선으로 외곽선과 이목구비를 규정하였다. 눈썹은 옅은 먹선으로 중간에서 끊겼다가 다시 시작하는 등 정성스레 묘사하였으며, 양 안두(眼頭)에는 붉은 색을 살짝 삽입하였다. 윗 눈꺼풀과 아래 눈꺼풀은 검은 선으로 묘사하고, 속눈썹은 위에만 그려 넣었다. 산근과 와잠의 아랫면, 그리고 미간과 이마 등에 붉은 색조로 선염처리함으로써,안면에 입체감을 주고자 하였다. 수염은 밑에 니금색을 칠하고 한 올씩 그려 넣었는데, 숱은 적지만 단아한 느낌이다. 미간 사이의 세로 주름 선과 귀밑 점 등 박사익의 개성적 특징을 잘 포착해내었으며, 전체적으로 약간 경직되고 근엄한 표정을 통해 그의 성정이 잘 드러나 있다.
옷주름 선은 선묘를 기조로 하면서도 주름선 주위에 약간 짙은 색으로 선염하여 주름진 부위를 지시하고자 했으며, 당시의 복제대로 넓은 소매통으로 인해 공수한 부분 아래쪽으로 주름진 부위가 늘어져 있어 약간 씰그러진 느낌을 주는데, 이 점은 18세기초 관복본 초상화에 나타나는 한 특징이기도 하다.
박사익 초상 표지판
박사익 초상
2021 장서각 특별전_장서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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