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보물

보물 제482호_윤선도 종가 문적(2015.08.04.화요일)

기리여원 2019. 6. 26. 13:22


보물 제482호 _ 윤선도 종가 문적 (尹善道 宗家 文籍), 금쇄동집고(金鎖東集古)


수   량 : 일괄

지정일 : 1968.12.19

소재지 : 저나남도 해남군, 고산 윤선도 전시관

시   대 : 조선시대


윤선도 종가 문적(尹善道 宗家 文籍)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조작가인 고산 윤선도(1587∼1671) 선생이 직접 손으로 쓰거나, 엮어 펴낸 수적들과 선생과 관계된 여러 문헌들이다.

윤선도는 8살되던 해에 큰아버지에게 입양되어 해남으로 내려가 살았다. 20세에 승보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1616년 성균관유생으로서 집권세력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함경도로 유배되었다. 벼슬을 버리고 내려온 후에는 조상이 물려준 엄청난 재산으로 정치와는 관계없이 보길도의 부용동과 새로 찾은 금쇄동에 여러 정자와 각을 지어놓고 풍류를 즐기며 살았다.

『금쇄동집고』는 윤선도 선생이 금쇄동에서 지내면서 중국의 여러 시인들의 시구를 모아 손수 쓴 것과, 그가 쓴 한시, 그리고 우리말로 된 단가를 모아 한 첩으로 묶은 것이다.『금쇄동기』역시 금쇄동에 지내면서 지은 한시를 묶은 것이며,『산중신곡』은 선생이 보길도와 금쇄동에서 있을 때 그의 힘든 생활을 풍자섞인 내용을 담아 지은 단가를 모아놓은 것이다.

선생과 관계된 문서 가운데『은사첩』2권은 인조와 봉림대군(후의 효종)이 선생의 집에 여러 곡식을 내린 것을 기록한 송장을 모아 엮어 첩으로 만든 것이며,『예조입안』은 윤유심의 둘째 아들인 윤선도를 윤유심의 형인 윤유기의 양자로 들이는 것을 예조에서 허가하는 문서이다.

이 책과 문서들은 고산 윤선도의 개인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보물 제482_1호 _ 금쇄동집고(金鎖東集古)






보물 제482_1호 _ 금쇄동집고(金鎖東集古)



보물 제482_1호 _ 금쇄동집고(金鎖東集古)




▼ 여기서부터는 보물 제482_2호  금쇄동집고(金鎖東集古)입니다.


보물 제482_2호 _ 금쇄동집고(金鎖東集古)






보물 제482_2호 _ 금쇄동집고(金鎖東集古)



보물 제482_2호 _ 금쇄동집고(金鎖東集古)



보물 제482_2호 _ 금쇄동집고(金鎖東集古)




▼ 여기서부터는 보물 제482-3호 산중신곡(山中新曲)입니다.


보물 제482-3호 _ 산중신곡(山中新曲)






보물 제482-3호 _ 산중신곡(山中新曲)



보물 제482-3호 _ 산중신곡(山中新曲)



보물 제482-3호 _ 산중신곡(山中新曲)





▼ 여기서부터는  보불 제482_4호  은사첩(恩賜帖)입니다.


보불 제482_4호 _ 은사첩(恩賜帖)






보불 제482_4호 _ 은사첩(恩賜帖)




▼ 보물 제482_5호 _ 고산양자예조입안문서(孤山養子禮曺立案文書)입니다.


보물 제482_5호 _ 고산양자예조입안문서(孤山養子禮曺立案文書)







보불 제482_5호 _ 고산양자예조입안문서(孤山養子禮曺立案文書)


고산 윤선도전시관, 글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