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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사마방회도

_ 42.0×29.5cm, 김현진 기증, 충남역사박물관 소장 1634년(인조 12)에 1582년(선조 15) 사마시(생원 · 진사시)에 합격했던 동기 200몀 중 관료가 된 8명이 53년이 지난 1634년 계회(契會)를 갖고 이를 기념하여 제작한 계회도첩(契會圖帖)이다. 과거시험에 함께 합격한 자들은 동방(同榜)이라 불렀고, 이들의 모임은 방회(榜會)라 하였다. 방회는 조선 시대 분사(文士)들의 주요한 교유 형태인 계회로 통용되었고, 방회가 있을 때면 계회도(契會圖)를 제작하여 나누어 갖는 것이 관행처럼 되었다. 당시 참석자는 영의정 윤방(尹昉), 좌우정 오윤검(吳允鎌), 우의정 김상용(金尙容), 병조판서 이홍주(李弘胄), 예조참판 윤흔(尹昕), 용양위사정 김두남, 장악원 첨정 박종현(朴宗賢), 전 참봉..

성삼문의 신주를 옮길 때 사용한 '무안박씨 요여'

_ 길이 242.0 너비 67.7 전체높이 62.0 , 무안박씨 암천공 종중 기탁 무안박씨와 성삼문 성삼문(成三問, 1418~1456)은 조선 세종~세조 대 집현전 부제학,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충청남도 홍성 출신이며, 본관은 창녕, 자는 근보, 호는 매죽헌이다. 세조 때 신숙주, 권남, 한명회 등을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시키고자 공모하였다가 사실이 드러나 죽음을 당했다. 역모였기 떄문에 성삼문의 아버지, 동생, 아들 등 남자는 모두 살해되었고, 아내와 딸은 관비가 되었다. 성삼문 사후 관비가 된 아내 김씨가 성삼문의 제사를 지내다가 죽자, 외손인 박호의 집안에서 제사를 받들면서 무안박씨가 성삼문의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성삼문의 신주는 임진왜란 떄 땅에 묻혔는데, 1672년 신주가 발견되어 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