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보물

보물 제147호_밀양 영남루

기리여원 2020. 11. 17. 20:23

우리나라의 3대 명루(名樓) 중 하나이며, 풍류와 시정이 넘치는

                                                                                 영남루

 

보물 제147호 _ 밀양 영남루 (密陽 嶺南樓)

 

수   량 : 1동

지정일 : 1963.01.21

소재지 : 경남 밀양시 중앙로 324 (내일동)

시   대 : 조선 헌종 10년(1844)

 

누(樓)란 건물의 사방을 트고 마루를 높여 지은 집으로 일종에 휴식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밀양도호부 객사에 속했던 곳으로 손님을 맞거나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고려 공민왕 14년(1365)에 밀양군수 김주(金湊)가 통일신라 때 있었던 영남사라는 절터에 지은 누로, 절 이름을 빌어 영남루라 불렀다. 그 뒤 여러 차례 고치고 전쟁으로 불탄 것을 다시 세웠는데, 지금 건물은 조선 헌종 10년(1844) 밀양부사 이인재가 새로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기둥은 높이가 높고 기둥과 기둥 사이를 넓게 잡아 매우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건물 서쪽면에서 침류각으로 내려가는 지붕은 높이차를 조정하여 층을 이루고 있는데 그 구성이 특이하다. 또한 건물 안쪽 윗부분에서 용 조각으로 장식한 건축 부재를 볼 수 있고 천장은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이다.

밀양강 절벽의 아름다운 경관과 조선시대 후반기 화려하고 뛰어난 건축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누각이다

 

밀양 영남루 (密陽 嶺南樓) 표지판

 

 

밀양 영남루 (密陽 嶺南樓) 배치도

 

 

보물 제147호 _ 밀양 영남루 (密陽 嶺南樓)

 

밀양 영남루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목조건물 밀양 영남루

 

영남루는 신라 경덕왕 때 이 자리에 있었던 영남사의 부속 누각에서 유래되었으며, 고려 공민왕 때 김주가 밀양 부사로 부임해 새로이 다락을 높게 신축하여 영남루라 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844년 이인재 부사가 중건한 것으로 조선시대 때부터 진주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명루로 일컬어 왔다.

 

본루를 기점으로 좌측에는 능파각을 우측에는 침류각을 익로로 거느리고 있고, 정면 5칸, 측면 4칸의 2층 다락형으로 웅장한 기풍을 지니고 있다.

 

침류각과 본 누각 사이에는 달월 자 형의 층층각이라는 계단형 통로로 연결하여 건물의 배치와 구성에 독특하다.

 

보물 제147호 _ 밀양 영남루 (密陽 嶺南樓)

 

 

보물 제147호 _ 밀양 영남루 (密陽 嶺南樓)

 

 

보물 제147호 _ 밀양 영남루 (密陽 嶺南樓)

 

강좌웅부(江左雄府) : 낙동강 좌측의 아름다운(큰) 고을(귤산 이유원 씀)

영남루(嶺南樓) 현판 _ 송하 조윤형 씀

교남명루(嶠南名樓) _ 문경새재 이남의 이름 높은 누각 (경상남북도를 통털어 교남지방이라 함) 귤산 이유원 씀

 

 

침류각(枕流閣) 

 

 

능파각(凌波閣)

 

 

밀양 영남루 (密陽 嶺南樓) 내부

 

 

강성여화(江城如畵)

 

강과 밀양읍성이 한데 어울려 마치 그림과 같다.

 

영남루에서 침류각으로 내려가는 계단 통로

 

 

밀양 영남루 (密陽 嶺南樓)

 

 

영남루를 오르며

 

2020.11.01, 밀양 영남루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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