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보물

보물 제569-9호_안중근의사 유묵 - 오노봉위필삼상작연지청천일장지사아복중시

기리여원 2024. 10. 31.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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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569-9호 _ 안중근의사 유묵 - 오노봉위필삼상작연지청천일장지사아복중시 (安重根義士 遺墨 - 五老峰爲筆三湘作硯池靑天一丈紙寫我腹中詩)

 

수    량 : 1점

지정일 : 1972.08.16 

소재지 :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94 (상수동,홍익대학교)

시   대 : 1910년

 

「안중근의사유묵-오노봉위필삼상작연지청천일장지사아복중시(安重根義士遺墨-五老峰爲筆三湘作硯池靑天一丈紙寫我腹中詩)」는 안중근(安重根:1879∼1910)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뒤 여순감옥(旅順監獄)에서 1910년 3월 26일 사망하기 전까지 옥중에서 휘호한 유묵을 일괄ㆍ지정한 것 중의 하나이다. 일괄 지정된 이 작품들은 1910년 2월과 3월에 쓴 것으로 글씨 좌측에 “경술이(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안중근서(庚戌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安重根書)”라고 쓴 뒤 손바닥으로 장인(掌印)을 찍었다.

글씨 내용은 「논어(論語)」ㆍ「사기(史記)」 구절 등 교훈적인 것이 많으며, 자신의 심중을 나타낸 것, 세상의 변함을 지적한 것, 일본에 경계하는 것, 이밖에 어떤 사람의 당호(堂號)를 써준 것 등이다.

유묵 대부분은 당시 검찰관, 간수 등 일본인에게 써준 것들이다. 그중 "안중근의사유묵-욕보동양선개정계시과실기추회하"는 러일전쟁 때 종군했다가 전쟁이 끝난 뒤 여순감옥에서 근무했던 사람[오리타타다스(折田督)]이 받은 것으로, 8ㆍ15 광복으로 그의 가족들이 일본으로 귀국할 때 조카[오리타간지(折田幹二)]에게 넘겨주었고, 그것이 1989년 2월 20일 단국대학교에 기증되었다. 또 "안중근의사유묵-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는 안의사 수감 당시 여순감옥에서 경관을 지냈던 이의 손자[야기마사즈미(八木正澄)]가 2002년 10월에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한 것이다. 또 "안중근의사유묵-국가안위노심초사", "안중근의사유묵-위국헌신군인본분"는 앞쪽에 “야스오까 검찰관에게 증여한다(贈安岡檢察官)”라고 적었듯이 당시 관련했던 검찰관에게 써준 것이다.

Ο 오로봉위필삼상작연지청천일장지사아복중시 (五老峯爲筆 三湘作硯池 靑天一丈紙 寫我腹中詩)

-오로봉을 붓으로 삼고, 삼상을 연지(硯池)로 삼고, 푸른 하늘만한 큰 종이에 내 마음속의 시를 쓰리라

안중근의사 유묵 - 오노봉위필삼상작연지청천일장지사아복중시 (安重根義士 遺墨 - 五老峰爲筆三湘作硯池靑天一丈紙寫我腹中詩) 표지판 _ 1910.2, 31.8×138.4cm, 홍익대학교박물관

 

"오로봉*을 붓으로 삼고 삼상의 물로 먹을 갈아 푸른 하늘을 한 장 종이 삼아 내 마음 속에 담긴 시를 쓰련다."

 

*오로봉은 중국 산시성에 있는 산이다.

 

죽음을 앞두고 있음에도 의연했던 안중근 의사의 기개를 느낄 수 있는 글씨이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시를 인용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이 결정되었음에도 굴하지 않고 많은 글씨와 자신의 뜻과 사상을 세상에 남겼다.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15주년 기념 특별전<안중근 書>

전시기간 : 2024.10.24.(목) ~ 2025.03.31.(월)

장 소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

 

2024.10.25, 대한민국역사박물관_안중근 書

글 문화재청, 전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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