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보물

보물 제569-22호_안중근의사유묵-국가안위노심초사

기리여원 2019. 3. 13. 10:07


보물 제569-22호 _ 안중근의사유묵-국가안위노심초사 (安重根義士遺墨-國家安危勞心焦思)


지정일 : 1993.01.15

시   대 : 대한제국

소재지 : 서울종로구, 안중근의사숭모회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는 안중근(1879∼1910) 의사가 남긴 유묵(遺墨)이다.

안중근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16세가 되던 1894년 아버지가 감사의 요청으로 산포군을 조직하여 동학군을 진압하려고 나서자 이에 참가하였다. 1906년 삼흥학교를 설립하고, 돈의학교를 인수하여 학교경영에 전념하기도 했다. 항일무장투쟁을 시작한 후 일본군 정찰대를 공격, 격파했으며,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열차가 하얼빈에 도착하여 그가 러시아 장교단을 사열하고 군중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권총을 쏴 3발을 명중시켰다. 여순감옥에 수감된 후 1910년 3월 26일 형장에서 순국하였다.

여기에는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국가의 안위를 마음으로 애쓰고 속을 태움) 8자를 중앙에 행서체로 쓰고, 왼쪽 위편에 “증안강검찰관(贈安岡檢察官)”, 오른쪽 아래편에 “경술삼월(庚戌三月)에 여순옥중(旅順獄中)에서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 삼가 경의를 표하다(安重根謹拜)”라 쓰여 있으며, 그 밑에 안중근 의사의 장인(掌印:손바닥으로 찍은 도장)이 먹물로 찍혀 있다.

이것의 크기는 가로 38.2㎝, 세로 149㎝이다. 이 유묵은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여순 옥중에서 자신을 취조한 당시 여순 검찰청 야스오카 세이시로<안강정사랑 (安岡靜四郞)> 검찰관에게 써준 것으로 야스오카는 죽기 직전 그의 장녀에게 물려주었으며, 그 후 1976년 2월 11일에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한 것이다.

안중근 개인사 및 독립운동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글 문화재청





보물 제569-22호 _ 안중근의사유묵-국가안위노심초사 (安重根義士遺墨-國家安危勞心焦思)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_ 3·1독립운동·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100주년 서화미술특별전_자화상